[2023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4] JSA 평화 순례

10월 26-29일 한국과 일본에서 진행한 ‘2023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일정이 첫날 콘퍼런스에 이어 둘째 날 JSA 평화 순례로 이어졌다.

평화를 위한 상상력

평화 순례를 떠나기에 앞선 강의에서 김성경 교수(북한대학교대학원)는 한국전쟁 전 해방된 한반도 내 이미 존재했던 사회적, 이념적, 경제적 갈등과 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존재가 남과 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했다. 또 여전히 전쟁, 전쟁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남한 사회가 어떤 갈등을 겪고 있는지 말하고, 평화를 위한 문화적 상상력이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해방 공간부터 이미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등 이념적 갈등, 지주와 소작농,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갈등, 친일, 친미 세력과 독립운동가들 사이의 갈등이 오히려 일제강점기보다 힘든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면서, 이런 내부 갈등과 냉전이라는 외부 갈등이 얽힌 것이 한국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전쟁 과정의 극심한 인적, 경제적 피해와 함께 1950년 9월 참전한 미국과 유엔군이 남한에 구원자였뎐 것과는 달리, 미군의 대규모 공습과 폭격을 겪은 북한이 미국을 적대시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남북의 안보에 대한 결정적 태도의 차이를 빚었다.

김 교수는 2년여 지난한 과정 끝에 1953년 7월 27일 마무리된 ‘정전협정’에서 평화 협정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정전협정 당사국에서 남한은 빠져 있었고, 절대적으로 미국의 영향 아래에 있게 됐다고 설명하면서, “(남한이 빠진) 정전협정은 한반도의 평화를 만들어 가는 데, 남한이 독자적으로 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전협정 이후 현재까지 남한은 전쟁을 기반으로 한 사회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면서, 대표적으로 징집제에 따른 남녀 갈등,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불완전한 주권과 안보, 경제와 이념에 따른 갈등과 “편 가르기”, 극심한 확증편향 등을 들었다.

JSA 안보박물관. ⓒ정현진 기자
JSA 안보박물관. ⓒ정현진 기자

김성경 교수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한 2000년 당시, 영화 내용으로 북한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며, 이는 정치권에도 반영됐다는 예를 들면서, “문화적으로 사회적 공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상력이 있을 때, 정치인들과 함께 움직일 수 있다. 반면 현재 남북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면 문화적 상상력도 적대적일 수밖에 없고, 악순환이 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마지막 한국 일정으로 JSA(공동경비구역)로 평화 순례를 떠났다.

대한민국 주소로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 북한 개성시 판문구역 판문점리와 마주하고 있다. 종전협정 뒤 유엔군과 중국군, 북한군의 회의 진행을 위해 1953년 10월 설치한 구역이다. 정전 상태 관리와 회의 및 협상의 공간으로 이용됐고, 1971년 남북적십자예비회담부터 남북 간 접촉과 회담, 왕래를 위한 통과 지점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만남과 교류, 협상 외에도 이 구역에서는 군사적 도발과 같은 비극적 사건도 발생해, 여전히 전쟁 중인 남북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역사를 지니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JSA 시설과 박물관 등을 돌아본 뒤, JSA 성당에서 한미일 주교단, 사제단과 함께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JSA성당에서 봉헌한 미사. ⓒ정현진 기자
JSA성당에서 봉헌한 미사. ⓒ정현진 기자

모든 전쟁은 적대감과 욕망의 산물

이 미사에서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는 강론에서 JSA, 판문점은 정전협정으로 형성된, 대한민국 역사 안에서 슬프고도 기구한 역사의 현장이며, 최근에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희망을 부풀게 했던 남북 두 정상과 북미 정상이 회담했던 곳이기도 하다며, “그 모든 과정 안에서 많은 사람은 평화의 여정이, 참으로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주교는 “한반도 평화를 가로 막는 것은 남북 간 이해 충돌이나 대화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문제를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주변 강대국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역사 안에서 경험했다”면서, “한반도 평화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 모든 나라가 해야 할 일은 이 적대감을 없애는 일이다. 적대감으로 생긴 분열은 오랫동안 우리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 국민의 사고까지 제압해 왔다”고 말했다.

“(이산가족으로서) 신학생으로 평양교구를 선택하고,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것은 저의 소명이기도 했습니다. 신학교 들어갈 때만 해도 신부가 될 때면 통일이 되어 평양교구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되어 40년이 다 되어 가고 이제 곧 은퇴하는데도, 통일은커녕, 그 희망은 점점 더 옅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기헌 주교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의 비참한 전쟁으로 전 세계가 온통 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면서, “모든 전쟁의 근원은 적대감과 욕망에 있다.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이 시기에 평화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신앙의 눈으로 평화를 생각하자. 평화를 이루는 과정에 발을 내밀고, 손을 잡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이 세상에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전쟁이 사라질 날이 오기를 바라며 간구하자”고 요청했다.

순례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일본 일정을 위해 히로시마로 향했다.

이날 미사 중에는 청년들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기원하며 접은 종이학을 봉헌했다. 일본에서 종이학은 반전, 평화를 상징한다. ⓒ정현진 기자
이날 미사 중에는 청년들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기원하며 접은 종이학을 봉헌했다. 일본에서 종이학은 반전, 평화를 상징한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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