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학연구소, 파키스탄에서 ‘이동학교’ 개최

아침 7시 30분이면 어김없이 힘찬 성가 소리와 함께 파키스탄 평신도 30여 명이 기도실에 모여 아침 전례를 진행한다. 선생이라는 뜻의 펀잡어 ‘바부지’(Babuji)라 불리는 평신도 교리교사가 독서, 복음, 설교를 포함한 말씀 전례를 시작으로 그날의 ‘이동학교’를 연다.

“하이데라바드교구에는 전업 교리교사 24명이 있고 저희 본당(성당)에는 2명이 있습니다. 월급으로 받는 2만 5000루피(약 12만 원)로는 생활하기가 어려워 다들 밤이나 주말에 다른 일을 합니다. 평신도 연구소에서 이동학교 같은 프로그램들을 할 때 제가 전례를 담당하면 연구소 측에서 수고비를 줍니다. 너무나 감사하죠.”

교리교사 11년 차인 꾸람 샤자드(Khurram Shahzad, 36)는 주중 밤 시간과 주말에 옷수선공으로 일한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소수종교인 그리스도교인으로 받는 파키스탄 이슬람 사회의 압력이나 차별뿐만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으로 살아가기가 더 고달프다.

(왼쪽부터) 평신도 연구소 협력자  리아즈 다비드(Riaz David)와 교리교사 꾸람 샤자드(Khurram Shahzad). ©황경훈<br>
(왼쪽부터) 평신도 연구소 협력자 리아즈 다비드(Riaz David)와 교리교사 꾸람 샤자드(Khurram Shahzad).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가 주도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아시아평신도지도자 포럼은 11월 5-10일 파키스탄 라호르의 평신도 신학연구소(TIL)와 공동 주최로 이동학교를 열었다. 평신도 연구소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라호르 대교구를 비롯해 카라치, 이슬라마바드, 하이데라바드 교구에서 온 파키스탄 청장년 35여 명이 참가해 ‘공동협의적 교회(synodal church)와 공공선, 종교문화 간 대화와 협력, 생태지속성과 평화’ 등의 주제를 다뤘다. 이번 이동학교는 2018년에 처음으로 개최된 뒤 5년 만에 두 번째로 열렸다.

20여 년 전부터 평신도 신학연구소에서 자원 활동해 온 ‘협력자’(coordinator) 리아즈 다비드(Riaz David, 50)는 꾸람 같은 교리교사들 덕택에 본당 사제는 이들에게 오지의 신자들에게 설교를 포함하는 말씀 전례와 봉성체를 대신 맡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곳은 3시간씩 걸려 찾아가는데 오토바이 기름값도 성당에서 따로 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방문하는 곳에서 신자들이 십시일반 걷어서 기름값을 충당하기도 한다.”

성 미카엘 미르뿌르카스(St. Michael Mirpurkhas) 성당의 전 사목회장인 리아즈는 평신도들이 겪는 어려움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예외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평신도 연구소는 평신도들에게 ‘요람’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2023년 11월 5-10일에 파키스탄 평신도연구소(TIL)에서 열린 ‘이동학교’에 참가한 참가자들. (사진 출처 = 황경훈)<br>
2023년 11월 5-10일에 파키스탄 평신도연구소(TIL)에서 열린 ‘이동학교’에 참가한 참가자들. (사진 출처 = 황경훈)

리아즈처럼 연구소에서 협력자 활동을 해 온 아띠아 플로리스트(Attia Florist)는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인이 사회적 차별 등으로 억압을 받고 있는데,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학교 교사인 아띠아는 “그리스도인은 교장이 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반 교사도 나처럼 동료 무슬림 교사나 직원들에게 따돌림 당하기 쉽다”면서 “참고 넘기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아띠아에 따르면, 특히 그리스도인 여성이 겪는 어려움이 큰데, 평신도 연구소가 있어서 필요한 여성들에게 소개하고 모임도 이끌어 나가는 협력 활동을 해 오고 있다. 그녀는 이동학교에 참가하기 위해 5일간 휴가를 냈다면서, “그리스도교 여성들이 만나서 어려움을 토로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그 자체로 큰 위안”이라고 했다.

참가자들은 11월 5일 워크숍에 앞서 현장 체험을 하고 라호르 시 인근의 종교문화 간 영성 및 교류를 촉진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하스토 네스트’(Hast-o-Nest) 전통 문화예술 연구소와 시크교 사원 ‘구르드와라 로리 사힙’(Gurdwara Rori Sahib), 그리고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로욜라 영성연구 센터 등을 탐방했다.

문화예술 연구소장 때무르 깐 뭄따즈(Taimoor Khan Mumtaz)는 하스토 네스트는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설의 뜻으로 힌두 철학이나 그리스도교 및 이슬람 신비주의에서도 드물지 않게 만나는 사상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13세기 위대한 이슬람 신비주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이븐 알아라비(Ibn al-ʿArabī)의 시에는 자주 신을 ‘사랑’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의 신관과 비슷하다.

때무르 깐 뭄따즈(Taimoor Khan Mumtaz) 소장이 이슬람 신비주의 철학자 이븐 알아라비(Ibn al-ʿArabī)의 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황경훈)<br>
때무르 깐 뭄따즈(Taimoor Khan Mumtaz) 소장이 이슬람 신비주의 철학자 이븐 알아라비(Ibn al-ʿArabī)의 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황경훈)

참가자들은 이번 이동학교에서 ‘파키스탄의 여성 인권 현실’, ‘그리스도교-이슬람의 대화와 인권’, ‘파키스탄의 정치 경제 상황과 종교의 역할’, ‘2023년 주교시노드 결과와 공동협의적 교회의 전망’, ‘온전한 인간 발전과 생태 위기’ 강의와 영화 ‘레디컬 그레이스’을 보고 들은 뒤 그룹 토론 등의 워크숍으로 행사를 이어 나갔다.

평신도 연구소장 알리시바 자베드(Alishbah Javed)에 따르면 평신도 연구소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슬람, 힌두, 시크교 등 타 종교 영성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해 오고 있다. 특히 2021-23년까지 3년 동안 ‘평신도를 위한 상황신학(contextual theology)’이라는 대주제 아래 ‘예술과 영성’ 파트에 때무르 소장을 초대해 특강을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1994년에 시작한 ‘여성 신학 포럼’에서는 여성의 날 행사, '마리아와 인간 해방' 강연, 생태 위기와 페미니즘, 교회와 여성 등의 다양한 주제로 강연과 세미나를 마련해 여성 의식 고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평신도 연구소는 내년 2월 창립 35주년을 맞는다.

이동학교는 아시아평신도지도자포럼이 연례 청년지도자 양성프로그램에 참가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아시아의 각 나라나 지역을 방문해 일주일 동안 진행하는 워크숍이다. 2023년 상반기에 진행한 태국을 비롯해 하반기에는 파키스탄에 이어 말레이시아 사바주에서 토착민 공동체 청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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