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학연구소, 말레이시아에서 ‘이동학교’ 개최

해발 4000미터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키나발루산이 있는 말레이시아 코타 키나발루 지역. 그 지역이 있는 사바(Sabah)주와 그에 속한 끄닝아우(Keningau) 교구의 청장년 평신도들은 사라져가는 이 지역 토착민의 전통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세대 간 소통과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전통의 해체 위협에 맞서 청년들이 자신의 문화전통이 얼마나 해체되고 있는가를 제대로 알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젊은 세대가 해내야 하는 일은 사라져가고 있는 노인 세대의 지혜, 이야기, 예술 등 모든 것을 비디오 다큐멘터리 제작 같은 현대 기술을 이용해 남겨야 한다.”

사바주의 엔지오 활동가인 헨드리 크리스토퍼(26)에 따르면, 자신이 원주민의 전통 삶과 문화의 가치를 알게 되어 활동가의 길을 시작한 것도 어머니, 할머니뻘 되는 여성 지도자들의 교육과 훈련 덕택이었다.

우리신학연구소가 주도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아시아평신도지도자 포럼은 11월 18-23일 말레이시아 끄닝아우 교구의 사목센터에서 ‘보볼리잔 전통 수호 협회’(PBS)와 공동주최로 이동학교를 열었다. 이 행사에는 끄닝아우 교구의 ‘가톨릭 청년단체협의회’, 사바주와 사라왁(Sarawak)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토착원주민 네트워크’(JOAS), ‘사바 토착민 공동체 연대’(PACOS)에 속한 청장년 35명이 참가해 ‘말레이시아 토착민과 생태계 보호를 위한 상호문화적 영성과 공동협력성(함께걷기, synodality)’을 주제로 다뤘다.

끄닝아우 교구내 깜뿡 달리트(Kampung Dalit) 마을의 소녀들이 전통 복장을 하고 이동학교 참가자들의 현장 탐방을 환영하는 춤을 추고 있다. (사진 제공 = 황경훈)
끄닝아우 교구내 깜뿡 달리트(Kampung Dalit) 마을의 소녀들이 전통 복장을 하고 이동학교 참가자들의 현장 탐방을 환영하는 춤을 추고 있다. (사진 제공 = 황경훈)

이번 이동학교는 지난 8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청년아카데미/실천신학 포럼’에 참가한 PBS 소속 참가자들의 요청으로 후속 행사로 계획되어 말레이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열렸다.

앤 라심방(PACOS 대표)은 “토착민들이 정부에 땅을 빼앗기고 다시 그 땅을 찾기 위해 투쟁을 벌이는 곳은 단지 이 지역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사정이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이동학교에 강사와 참가자로 참여한 그녀는 뉴질랜드 마오리 부족이 150년 만에 권리가 인정돼 강을 되찾은 것을 예로 들면서, “어렵지만 젊은 세대들이 법적 문서이든 문화적 전통이든 자신들이 땅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지켜나간다면 언젠가는 권리를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클라우디아 라심방(PACOS 인사 담당)은 종교 및 문화 전통의 전수를 위해 청년 세대가 배우고 이를 기록해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현재에 실제로 실천하고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토착원주민 여성 연대’(BWOAM) 활동가 노라 깐띤(36)은 전통 전수에 있어서도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땅에 대한 권리든 전통 문화든 간에 토착민 여성들은 나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 하여, 이런 문제들을 남성들에게 의지한다.”

노라와 그녀의 조직은 무엇보다도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권리가 있음을 아는 것, 또 전통 전수에서도 여성의 체험과 지혜를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고 원주민 여성들을 교육해 오고 있다.

(왼쪽부터) 인사 담당 클라우디아 라심방(Claudia Lasimbang), 이동학교 공동 주최 단체인 PBS 알젤리카 수민(Anglica Suimin) 소장, PACOS 대표 앤 라심방(Anne Lasimbang). (사진 제공 = 황경훈)
(왼쪽부터) 인사 담당 클라우디아 라심방(Claudia Lasimbang), 이동학교 공동 주최 단체인 PBS 알젤리카 수민(Anglica Suimin) 소장, PACOS 대표 앤 라심방(Anne Lasimbang). (사진 제공 = 황경훈)
이동학교 참가자 헨드리 크리스토퍼(Hendry Christopher)와 노라 깐띤(Nora Kantin). (사진 제공 = 황경훈)
이동학교 참가자 헨드리 크리스토퍼(Hendry Christopher)와 노라 깐띤(Nora Kantin). (사진 제공 = 황경훈)

참가자들은 11월 19일 워크숍에 앞서 끄닝아우 교구의 홍수피해 지역인 깜뿡 란타이(Kampung Rantai) 마을과 토지 반환운동을 하고 있는 깜뿡 달리트(Kampung Dalit) 마을에서 현장 체험을 했다.

달리트 마을 대표이자 교리 교사인 페델리스 빌리 린닥(Fedelis Bily Lindak)은 이동학교 참가자들에게 이 마을 주민들이 부닥친 여러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한 세대 전부터 여러 경로의 투쟁과 원조를 통해 초등학교를 마을에 설립했는데 중학교나 그 이상의 교육이 전무하다. 먹을 물이 부족한 데서 오는 어려움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생계를 꾸려 나가기가 어렵다.”

그에 따르면, 돈이 되는 환금작물로 팜유와 고무가 나오는 팜나무와 고무나무를 심기는 하지만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마을 주민을 위한 일자리가 필요한데, 지방 정부가 대기업에 싸게 토지를 팔아버리고 특혜를 주는 등의 정치 문제도 주민들의 빈곤에 한몫한다.”

참가자들은 이번 이동학교에서 ‘카다잔두순(Kadazandusun) 토착민의 영성과 세계관’,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과 토착민의 삶’, ‘강제 결혼, 조기 결혼의 문제’, ‘공동협의적 교회를 위한 미디어매체 활용’, ‘토착화와 공동협의적 교회를 위한 주교와의 대화’, ‘2023 시노드 결과와 아마존 시노드 및 ‘상황 신학’을 강조한 최근 교황 자의교서’ 등에 대한 강의를 듣고 그룹 활동 등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2023년 11월 18-23일 말레이시아 끄닝아우 교구의 사목센터에서 열린 ‘이동학교’에 참가한 참가자들. 끄닝아우 교구장 코르넬리우스 피옹(Cornelius Piong) 주교(중앙 분홍색 상의)도 발표자로 참여했다. (사진 제공 = 황경훈)
2023년 11월 18-23일 말레이시아 끄닝아우 교구의 사목센터에서 열린 ‘이동학교’에 참가한 참가자들. 끄닝아우 교구장 코르넬리우스 피옹(Cornelius Piong) 주교(중앙 분홍색 상의)도 발표자로 참여했다. (사진 제공 = 황경훈)

2020년 통계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의 그리스도교인은 전체 인구의 9.1퍼센트이고 이 가운데 절반이 가톨릭, 40퍼센트가 개신교다. 그리스도교인 2/3가 사라왁주와 사바주에 몰려 있고 이슬람 신도가 60퍼센트로 다수다.

공동주최자인 안젤리카 수민 PBS 대표는 이동학교 같은 프로그램은 처음이라면서, 청년 및 장년 참가자들이 평등한 위치에서 발표하고 토론하고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공동협력성’과 토착원주민 전통 전수를 함께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고 보았다.

그녀는 이번 행사는 “우리 조직 뿐만 아니라 PACOS와 JOAS 같은 여러 시민 사회에서 청년을 참가시키고 장년 간부들도 함께 참여하여 세대 간 소통과 협력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해 영감과 통찰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이동학교는 아시아평신도지도자포럼이 연례 청년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아시아의 각 나라나 지역을 방문해 일주일 동안 진행하는 워크숍이다. 2023년에는 이번 행사 전에 타이와 파키스탄에서 이동학교를 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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