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3] 한미일 평화 구축자들의 목소리

2023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이 10월 26-29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공동 주관으로 진행된 가운데, 27일 첫 콘퍼런스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교회'라는 주제의 라운드 테이블로 마무리됐다.

이날 앞선 주제 발제는 '핵무기의 위협과 군비 경쟁', '기후위기와 한반도의 인권(평화)'으로 진행됐다. (관련 기사 참고)

라운드 테이블에는 시라하마 미츠루 주교(일본 히로시마 교구장), 김주영 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제라드 파워즈(가톨릭 피스빌딩 네트워크 코디네이터), 주드 랄 페르난도 교수, (아일랜드 더블린대 트리니티 칼리지), 오혜정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제니퍼 조이 텔퍼(피스 카탈리스트 인터내셔널)가 자리했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평화, 그것을 위해 교회는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 한국과 미국, 일본의 각자 삶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를 구축해 온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2023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의 첫 콘퍼런스는 '동북아시아 평화와 교회'를 주제로 한 라운드 테이블로 마무리됐다. ⓒ정현진 기자<br>
2023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의 첫 콘퍼런스는 '동북아시아 평화와 교회'를 주제로 한 라운드 테이블로 마무리됐다. ⓒ정현진 기자

시라하마 미츠루 주교(일본 히로시마 교구장)

 

전 세계에서 불신이 악순환되고 있다. 그 원인은, 진정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선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인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논리에 기반해 억지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리스도는 무력을 끊기 위해 원수를 사랑하라며 비폭력 길을 제시했다. 우리는 무력으로 평화를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동북아의 긴장 완화와 평화 구축을 위해 우리(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첫걸음은 무엇일까? 나의 의견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파트너십’을 더 확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가르친 평화, 그리고 그것을 믿는 신자들로서 앞으로도 그리스도가 함께 한다는 믿음으로 평화의 문화를 만들자.

장기적 차원에서 북한을 고립시키지 않는 형태로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 채널을 구성하고 유연한 태도를 보여 줘야 한다. 정전 70년이 지났지만 전쟁 재발할 수도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후의 전쟁은 분명 핵전쟁일 것이고 그 피해는 히로시마의 몇 배일 것이며 인류 멸망 가능성도 있다. 가톨릭교회는 비폭력의 원칙을 굽혀서는 안 된다.

김주영 주교(춘천교구장,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여러 발표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교회)는 과연 무엇을 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보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방향으로 앞당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둠이 짙을 때 더 강렬하게 빛이 오듯이, 어쩌면 지금 이 현실이 짙은 어둠일 것이다. 각자 자리에서 또 연대의 자리에서, 전쟁을 모르는 지금 세대가 전쟁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교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자성을 한다.

한국 사회는 전쟁 위기에 대해 막연한 위협감은 느끼지만,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분단되었지만 아직은 평화로운 이때, 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우리 안에 있었는가. 평화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도록 교회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가 핵무기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은 교회의 가르침과 회칙 안에서 모두 거론됐다. 교회는 해답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구현하고, 실현을 위해 연대하는가다. 교회의 가르침은 교회 공동체만이 아니라 세상 모두를 향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조차 그 가르침과 해법을 알고 있는가. 교회의 역할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세상 안에서 풀어내고,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연대하는 것이다.

남의 말을 잘 듣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과 감정, 성령의 요구를 알아듣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면, 그 태도로 북한을 만나야 하고, 그 만남 속에서 그들이 말하는 이면을 이해하며 공감해야만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제라드 파워즈(가톨릭 피스빌딩 네트워크 코디네이터)

 

북한의 도발에 대한 조치에서 미국은 핵무기 사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무기에 의한) 억지력은 이제 성공하지 못한다. 전쟁 방지와 대응을 위한 무기 사용 논리는 여전히 많지만, 집단방어 체제와 무기 체제에 의존해 온 나토(NATO, 서유럽 집단방위조약) 역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지 못했으며, 지속가능한 유럽의 평화도 가져오지 못했다.

교회는 스스로 교회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 포럼으로 국제적 공동체, 조직으로서 갖는 기회를 잘 활용하고, 12억 가톨릭 인구를 통해 변화를 일으키고 평화를 구축하기를 바란다. 평화 구축과 관련해 교회가 갖는 부족함은 평화 구축이 자기 신앙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역할, 자리, 정체성, 직업을 이용해 평화 구축의 역할을 넓혀야 한다. 평화 활동의 조건은 평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이다. 그리고 실질적이고 세심하며 비폭력적 헌신이 필요하다. 교회가 평화 구축을 현실과 접목해야 한다.

주드 랄 페르난도(아일랜드 더블린대학교 트리니티 컬리지)

 

신앙인으로서 참회하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야 한다. ‘평화’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실제 정치를 봐야 한다. 제국주의적 정치도 봐야 하고, 신앙의 눈으로 본 정치적 시각도 필요하다. 각 국가는 사회, 정치적, 국제적 관계를 ‘힘의 균형’ 차원에서 보고 있다. 그러나 신앙에 기초한 관계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예수는 평화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했다. 현실 정치의 ‘평화’는 대량 살상을 합리화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교의 평화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종교적 평화는 희생이다.

전쟁의 반대는 창의성이며, 사랑의 반대는 두려움이다. 두려움 때문에 증오가 만들어질 수 있다. 북한을 대하면서, 우리는 꼭 제재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몇 번이라도 양보하고 다가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두려움은 정치에서 비롯되며, 만나서 서로의 입장을 알아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오혜정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도회 역시 분단과 전쟁의 쓰라린 역사를 겪었다. 이산가족, 한국전쟁 희생자들, 원폭 피해자, 이스라엘 전쟁의 희생자들을 기억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역할을 생각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생각하니 힘이 났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이자 평화다. 항의를 받더라도 평화를 위해 서명해야 하고, 핵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북한은 정말 많이 변했지만, 우리는 가장 어려운 시기의 북한을 아직도 기억한다. 북한은 남이 아니라 한 형제로 고백하는 대상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적대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 언론의 역할이 크지만 제대로 된 정보나 소식을 일반 국민이 접할 수 없게 한 책임이 있다. 북한을 방문했을 때, 밤 9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조선가톨릭교회 신자들과 함께 드렸다. 그들도 그 시간에 그 기도를 함께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제니퍼 조이 텔퍼(피스 카탈리스트 인터내셔널)

 

어떻게 신뢰를 구축할 것인가. 미국은 피해자만이 아니며 침략자만도 아니라 둘 다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겸손해야 한다. 미국의 개신교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는 동안,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도 들었고, 미국의 군사력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남북의 역사를 알기 전에는 미국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몰랐다. 오만하고 무지했다. 그러나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예수의 평화에 대해 느꼈다. 예수는 형제와 화해하고, 으뜸이 되려면 종이 되라고 했다.

우리는 실패한 외교를 통해서 북한의 상처를 더 깊게 하고 있다. 단절된 관계에 대한 치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참회와 고백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 고백으로 우리는 서로 용서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면서, 총을 쏘는 한 폭력은 이어진다는 것을 봤다. 폭력은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예수는 우리를 용서했고 희생했다. 이런 치유의 과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는 희생자이자 침략자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완전한 악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어렵지만 용서하기 위해서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부분에 대해 교육하고 트라우마 치유 등을 통해 압박받는 이들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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