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은 3년간의 기나긴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오랜만에 극장가가 정상화로 돌아간 시즌으로, 추석 흥행에 대한 관심이 영화 관계자 사이에서 높았다. 긴 연휴가 있는 추석과 설날은 명절 대목 시즌이라 큰 흥행 사이즈를 특징으로 많은 관객이 하루쯤 극장가 나들이를 했다. 1980년대에는 홍콩 무협액션영화가 명절 시즌 흥행을 주도했고, 1990년대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시장을 차지했었다. 한국영화가 명절 시즌의 강자가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와서다.

2000년에 ‘공동경비구역JSA’가 추석 시즌을 주도하는 영화를 한국영화로 바꾸어 놓았고,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광해’, ‘관상’, ‘사도’ 같은 사극이 추석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추석 연휴는 가족, 친지를 만나서 좋고, 또 극장 나들이를 함께 가는 것이 큰 이벤트였는데, 이러한 명절 관행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달라져 버렸다. 그래도 올해 ‘빅3’라고 부르며 오컬트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 보스톤 마라톤 실화를 극화한 ‘1947 보스톤’, ‘거미집’ 3파전이 펼쳐졌는데, 개봉 2주차가 되면서 세 작품 중 ‘거미집’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고, 슬슬 극장에서 내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거미집', 김지운, 2023. (포스터 제공 = ㈜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 김지운, 2023. (포스터 제공 = ㈜바른손이앤에이)

OTT와 비교하여 극장 티켓 값 가성비를 따지면서 확실하게 재미가 보장된 영화를 보려는 관객이 많고, 포털의 관객 평점이 영화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 버렸으니, ‘거미집’처럼 호불호가 나뉘어 평점이 낮아져 버린 영화는 선택 받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렇게 버려져서는 안 되는 수작이므로 비평 한 편으로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

이 영화는 ‘반칙왕’, ‘밀수’ 같은, 흥행성과 작가적 스타일을 균형 있게 결합해 온 김지운 감독이 5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송강호가 주연을 맡았으며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다는 훈장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힘을 쓰지 못하다니 아쉬운 일이다. 칸 공개에서도 영화평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고, 많은 이가 영화 선택 기준으로 찾는 미국 영화 리뷰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도 토마토 신선도 지수 69퍼센트로 그리 매력적인 수치는 아니다.

'거미집'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바른손이앤에이)

영화는 1970년대 중반 영화 검열이 정점에 달했던 유신헌법 시대, 호스티스 영화, 고교얄개 영화나 무국적 무협영화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를  배경으로 예술영화 만들어 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감독의 해프닝을 그린다. 1970년대 독재정권 시대, 후시 녹음으로 과장되게 만들어지는 신파가 섞인 70년대 멜로드라마, 한국 정치와 한국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서구인에게 ‘거미집’은 난해한 상황극일 수 있다. 그러니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해외의 그러한 평가가 국내에도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를 알고 한국영화를 아는 한국 관객에게 이 영화는 난해한 영화가 아니라 블랙코미디 요소가 가득한 한 편의 빼어난 정치 드라마로 보인다.

한마디로 매우 재미있는 영화다. 이미 다 찍은 ‘거미집’이라는 결말을 다시 찍는다면, 단 이틀만 주어진다면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의 계시를 받은 김 감독(송강호)은 제작자 백회장(장영남)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그러나 후계자인 신미도(전여빈)를 설득하여 배우들을 불러 모아 촬영을 강행하지만, 베테랑 배우 이민자(임수정), 톱스타 강호세(오정세), 떠오르는 스타 한유림(정수정), 노장 배우 오여사(박정수)는 저마다 사연이 있고 스케줄은 꼬여서 불만이 많다. 쪽 대본으로 받은 시나리오는 이해가 되지 않아 촬영은 자꾸 더뎌지기만 한다. 설상가상으로 검열 공무원까지 불시에 세트장에 들이닥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오로지 예술을 향한다는 일념으로 뭉친 김 감독을 괴롭게 한다.

'거미집' 스틸이미지.&nbsp;(이미지 제공 =&nbsp;㈜바른손이앤에이)<br>
'거미집'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바른손이앤에이)

영화 ‘거미집’은 극 중에서 김 감독이 만드는 ‘거미집’이라는 1970년대 흑백영화 촬영장의 해프닝을 스토리텔링한 영화다. 영화를 만드는 영화이고, 이러한 유의 작품으로는 '사랑을 비를 타고'(1952)나 '바빌론'(2022) 같은 영화가 있다. 한 씬을 편집 없이 한 컷으로 찍는 ‘플랑 세캉스’를 이 영화에서 실현해 보겠다는 김 감독의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예술적 열망은 세트장 사람들의 뒷목을 잡는다. 영화에서 미도 외에는 아무도 김 감독의 예술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은 ‘인랑’(2018)으로 큰 실패는 맛본 김지운 감독의 괴로운 상황과 나란히 놓인다.

영화 개봉 전에 극 중 김 감독이 '하녀'의 김기영 감독을 모델로 했다고 하여 유족들이 영화상영 금지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난황을 겪다가 우여곡절 끝에 화해하고, 쉬운 대중오락영화가 주로 걸리는 추석 시즌을 공격적으로 공략했다. 김기영 감독 유족들은 이 영화를 불쾌하다 마시고, 김지운 감독이 얼마나 김기영 감독을 존경하기에 자신의 작품에 주인공으로 등장시켜서 시대적 비극을 블랙코미디로 극복해가는 멋있는 캐릭터로 창조했는지 자부심을 느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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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바른손이앤에이)

김기영 감독, 신상옥 감독, 영화 ‘별들의 고향’ 등 수많은 한국영화사의 키워드들이 환기된다. 상황이나 배우 캐릭터 또한 많은 실존 인물을 기억나게 한다. 영화의 캐릭터들은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 비밀은 출세를 위한 발판이지만 서로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면서 서로를 찌른다. 김 감독의 전작 시나리오, 백회장의 결혼과 사별, 신미도의 일본 유학, 강호세의 비밀 연애, 한유림의 남자친구 등 막장을 치달았던 70년대 신파 멜로드라마의 스테레오 타입을 영리하게 각 캐릭터에 입혀서 만든 소극이다. 그 난장판은 바로 우리가 겪었던 70년대이며 한국영화계다. 그 촌스럽고 부박한 시대를 지나 우리는 살아남았다.

낄낄거리며 웃다가 저들의 예술혼에 마음이 저리면서 감동하고, 그리고 거미집에 모든 것이 걸려버린 것처럼 정치도 영화도 어수선한 지금, 그래도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현실이라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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