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유재선, 2023. (포스터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잠', 유재선, 2023. (포스터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최근 개봉한 영화 ‘잠’은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대받았고,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어서 외국에서 먼저 소개된 후 한국에서 개봉했다. 영화에는 정유미와 이선균이 부부로 등장하고, 부부가 살아가는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거의 모든 액션이 이루어지며 일상 공간에 침입한 공포를 소재로 한다.

“누가 들어왔어.” 어느 날 자다 깬 남편 현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이로써 행복하던 부부의 일상은 180도로 바뀐다.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만삭 임산부로 직장 일도 열심인 아내 수진과 단역배우로 수진의 믿음 속에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스위트한 남편 현수의 일상은 완전히 파괴된다. 그날 이후, 잠들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하고 깨어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현수는 잠든 시간에 가족을 해칠까 두려움을 느낀다. 수진은 밤마다 펼쳐지는 공포 때문에 매일 잠들지 못한다. 일명 몽유병을 앓고 있는 현수의 램수면 장애는 점점 더 위험해져가고 수진은 아이까지 위험에 빠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몸서리치며 갖은 노력을 다한다.

'잠'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잠'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신체가 가장 편안한 순간인 잠자는 시간, 가장 안전하게 느껴지는 공간인 집,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부 사이, 여기서 공포 요소가 생겨날 때면 그 어떤 괴물의 침입보다도 더 오싹한 공포감이 느껴질 것이다. 잠을 잘 수 없어 일상이 파괴됨은 물론이거니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 나를 해칠 것이라는 불신이 따라붙고, 익숙한 집안 어딘가에 숨어 있는 공포는 실감나는 서스펜스 세계로 안내한다.

연극처럼 장으로 구분하여 이야기를 펼치는 영화는 1장에서는 몽유병이 시작되는 남편과 임산부로서의 공포, 2장은 아이가 태어나고 이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는 과정에서 나타는 공포감을 다룬다. 영화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한 문제는 없다”라는 가문을 장난스럽게 결혼 사진 위에 붙여 놓은 부부에게 닥친 위기를 과연 둘이 함께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따라가는 서사적 구성을 가진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진실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만들어가면서 가훈과 서사는 묘한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잠'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nbsp;=&nbsp;롯데엔터테인먼트)<br>
'잠'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현수가 정말 위험한 몽유병에 빠졌는지, 신경쇠약에 걸린 수진이 꿈을 꾸거나 상상하는 건 아닌지 계속 의심하면서 서사 진행을 따라가는 가운데 영화 텍스트 내부에서 서스펜스가 생겨난다. 영화를 더 재밌게 보기 위한 감상 포인트는, 영화에서 사회적 맥락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영화 안에서 시청각 요소가 호러 장르 관습을 활용하면서 차곡차곡 쌓아가는 공포감에 집중하는 것이다.

1장, 2장까지 필자는 신혼 단계를 벗어난 부부가 서로 다른 얼굴과 마주했을 때의 생경함, 한 생명체를 출산한 여성이 느낄 산후 우울증, 층간 소음으로 발생한 이웃간 분쟁 이후 타자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편집증,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모성애 과잉 표출 등, 우리가 일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정신증의 메타포로서 몽유병이 영화로 활용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3장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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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오컬트 장르가 본격 펼쳐지는 3장은 귀접(귀신과 관계)과 이를 물리치기 위한 무속 세계를 다룬다. 1,2장의 일상적 공포와 다른 결을 가진 3장의 전개는 어떤 이들에게는 어리둥절하게, 어떤 이들에게는 낯선 흥미로움을 자아낼 것이다.

K콘텐츠에 시각적 자극을 노리거나 한국적 로컬리티 콘텐츠로서 한 부분을 당당히 점유하고 있는 무당과 무속 행위가 최근 심심찮게 등장하는 현상을 보며, 사회와 정치가 비합리성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는 비이성의 이 시대에 조응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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