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먹고 토한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 식이장애 발병률이 높은 현실은 외모에 대한 강박과 다이어트 때문이다. 그러나 그 표면 아래에는 복잡하게 얽힌 불안과 우울이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식이장애를 앓아 왔던 딸과 그 어머니의 고백을 통해 병의 원인이 된 진짜 복잡한 심연을 파헤친다.

채영은 15살이 되던 해 극단적인 식사 거부로 체중이 20킬로그램이 넘게 빠지면서 몸이 30킬로그램밖에 되지 않은 채 거식증 진단을 받으며 병원에 입원했다. 그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난 현재 당시 느꼈던 마음이 담겨 있는 블로그 일기를 꺼내 본다. 거식과 폭식을 오가며 간신히 생명을 부여잡다가 이제 그녀는 음식을 만드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딸을 오래 지켜본 엄마 상옥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지만 이제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엄마는 딸의 섭식장애를 대하는 세상과 자신의 오해와 편견, 그리고 딸뿐만 아니라 자신을 한 명의 인간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한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 김보람, 2023. (포스터 출처 = 필름다빈)

두 사람의 고백이 각각 진행되면서 관객은 두 모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린 시절의 외롭고 슬픈 기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여느 모녀들이 그러하듯 이 모녀 관계 역시 애증으로 점철되어 있고,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를 그동안 솔직하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여성의 생리를 탐구하는 교훈적이고도 즐거운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를 만들었던 김보람 감독이 두 번째로 만든 장편 다큐멘터리다. 감독의 카메라는 두 모녀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내도록 인내하면서 기다린다. 다큐멘터리가 느리지만 진정성이 묻어나는 이유다. 천천히 전개되는 이야기에서도 귀를 쫑긋하며 솔직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어서 듣고 싶게 만들면서 영화는 몰입감을 높여간다.

1980년대를 뜨겁게 살았던 상옥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치열한 시대를 지나 이념이 사라지고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했던 1990년을 맞이하자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다. 끈끈했던 이념과 공동체는 대책 없이 흩어져 버렸고, 그녀는 다시 공동체가 회복되리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 옆에 어린 딸이 있었고, 그녀는 생존을 위해 무주의 한 기숙학교 사감을 맡아 시골로 들어왔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필름다빈)<br>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필름다빈)

영화에는 두 모녀의 생활을 담은 오래된 TV 프로그램이 교차해서 진행되므로 그 시절을 눈앞에 실체로써 체감하게 된다. 어린 채영은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엄마에게서 방치되는 감정을 느꼈다. 상옥은 아직 젊은 자신의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딸이 자신 마음속 한가운데로 들어와 있지 않은 걸 깨닫지 못했다.

시대가 남긴 상처, 삶의 질곡을 이기고 버텨내야 했던 한 여성과 어린 아이, 그리고 그들의 엄마이자 할머니인 또 다른 시대의 여성, 이 많은 것이 얽히고설켜 몸에 흔적으로 나타나고야 말았다. 채영이 호주로 살러 떠나며 영영 이별할 것 같던 모녀였지만 코로나로 인한 셧다운으로 해외에서 직업이 없어지자 다시 둘은 함께 살기 시작한다.

감염병은 삶의 질을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모든 것이 정지한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상이 중지되면서 자신에게 집중하고, 가족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내 주거지와 이웃을 생각하게 했다. 채영은 야무진 손놀림으로 고구마를 찌면서 양 끝을 잘라서 깔끔하게 고구마를 쪄 주던 할머니의 정성을 생각한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필름다빈)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필름다빈)

두 모녀가 푸짐하게 차리는 할머니의 제사상을 바라보며, 그때 왜 그랬는지 서로 아는 건 별로 없어도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위안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삶에서 때론 가장 큰 상처를 주기도 하는 가족, 함께 밥을 먹는 사이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의 이름이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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