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 류승완, 2023. (포스터 제공 = (주)NEW)
'밀수', 류승완, 2023. (포스터 제공 = (주)NEW)

팬데믹 3년 동안 극장 시장의 붕괴에 걱정이 많았다. 영화관 최고 성수기인 여름 시즌에는 블록버스터가 경합하며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는데, 지난해에 ‘한산’, ‘외계+1인’, ‘비상선언’, ‘헌트’가 경쟁하면서 누구도 크게 웃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올해 초 팬데믹이 해제되고 일상으로 복귀한 지 꽤 시간이 흘러도 영화관은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올 여름 시즌도 지난 3년처럼 지지부진하면 한국 영화산업이 위기를 극복할 활로를 찾지 못한 채 오랫동안 시름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위기일수록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영화가 여름에 선보인다. 7월, 8월에 맞대결을 피하며 순차적으로 한국 대작 영화 6편이 개봉한다. 먼저 개봉한 해양 활극 ‘밀수’ 이후에 차례로 SF 대작 ‘더 문’, 1980년대 외교관 납치 사건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 ‘비공식작전’, 대지진 재난 스릴러 ‘콘크리트 유토피아’, 배우 정우성의 연출 데뷔작 ‘보호자’, 유해진, 김희선 주연의 코믹 로맨스 ‘달짝지근해: 7510’가 차례로 선을 보이며 극장가 회복에 기세를 한데 모은다.

지난 7월 26일에 개봉하여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여름 흥행 강자로 순항 중인 ‘밀수’는 배경은 1970년대, 주요 공간은 해녀들이 활약하는 가상의 항구 도시 군천, 장르는 액션이 더해진 범죄 스릴러다.

'밀수'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NEW)
'밀수'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NEW)

많은 이름값 있는 감독들이 OTT로 향하고 있는 현재, 류승완 감독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극장용 장편 영화를 만들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인 2021년에는 남북이 힘을 합쳐 소말리아 내전에서 탈출하는 1991년 실화를 기반으로 한 액션 스릴러 ‘모가디슈’로 평단과 흥행 양쪽에서 큰 응원을 받았다.

류승완 감독하면 액션의 장인이라는 레테르가 덧붙여지는데, 범죄 집단에 경찰과 검찰 등 공권력이 개입되면서 어지럽게 전개하는 플롯 안에서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오락적인 문법으로 담아낸다. 그의 영화는 고예산 장르 오락 영화의 외양을 띄고 있어도 생생하게 한국적 현실, 즉 모순으로 점철된 자본주의의 일그러진 초상을 담아내기에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고루 받는 대표적인 감독이다.

‘밀수’ 역시 실화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감독은 군산세관박물관에서 1960-70년대 밀수가 많았다는 자료를 보고, 여성들이 생필품을 밀수했다는 내용이 독특해서 이에서 단서를 얻어 시나리오를 구상했다고 한다. 1970년대에 전자제품과 금괴가 세관을 피해 들어왔고, 수출면장 없이 현지에서 외국으로 출항할 수 있는 활어선을 이용해 밀수품을 다량 싣거나, 육지에서 가까운 바닷속에 있던 해녀가 이 밀수품을 운반했다는 정보가 있다.

'밀수'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NEW)<br>
'밀수'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NEW)

영화는 평화롭던 바닷가 마을 군천에 화학 공장이 들어서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해녀들의 일상에서 시작한다. 먹고 살기 위한 방법을 찾던 승부사 춘자(김혜수)는 바닷속에 던진 물건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밀수의 세계를 알게 되고, 해녀들의 리더 진숙(염정아)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위험한 일이란 걸 알면서도 생계를 위해 과감히 결단을 내린 해녀 진숙은 전국구 밀수왕 권상사(조인성)를 만나게 되면서 확 커진 밀수판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고 사람들은 서로를 속고 속이며 거대한 밀수판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과거는 스토리의 창고다. 새로운 이야기도 경험에서 나온다. 해녀, 밀수, 범죄를 엮어 액션 스리러를 만들되, 류승완은 그와 영화 학교였던 이소룡과 샘 페킨파와 1970년대 한국 액션 영화를 버무린다. 70년대 복고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당시 대중가요를 전면에 내세우며 분위기를 형성하는 방법이 주효했다. 음악은 뮤지션 장기하가 맡아서 그의 음악적 감식안을 한껏 발휘한다. 김트리오의 ‘연안부두’는 돈과 활력이 넘치던 항구의 생생함을 전하고, 최헌의 ‘앵두’는 가족 같았던 친구의 복수에 암울해진 진숙의 마음을 대변하며,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의 긴 전주가 액션의 전조를 알리는 긴장감을 끌어내는 식이다. 김추자의 ‘무인도’와 이은하의 ‘밤차’를 적재적소에 깔고, 박경희의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의 마지막 여운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70년대 가요가 이렇게 멋지고 세련되었는지 젊은 세대에게도 놀라움을 안겨줄 것이다.

한국에서 경찰이 등장하는 범죄 스릴러는 오랫동안 남자 캐릭터 투탑의 놀이장이었다. 최근 여성 서사가 관객에게 큰 사랑을 받고, 새롭게 무장하고 변주되는 강한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이 박수를 받는 현실이다. 그러나 성수기 블록버스터에 과감하게 여성 투탑 영화를 내세운다는 결정은 쉽지 않다. 2002년에 전도연과 이혜영 투탑을 내세운 ‘피도 눈물도 없이’이 큰 화제를 모았지만 큰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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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NEW)

20년이 지난 현재 다시금 김혜수와 염정아 투탑 스타를 내세우고, 샘 페킨파 식의 수정주의 웨스턴의 영향 아래 플롯을 전개한다. 명예가 아니라 돈에 탐닉하는 총잡이 역할을 해녀들이 맡고, 내부의 믿었던 자의 배신이 플롯의 전환을 이루며 한바탕 거대한 싸움판이 벌어지는 것은 70년대 뉴시네마 시대 장르 문법에서 가져온 것이다.

여기에 류승완이 그동안 자신의 영화에 매번 활용했던 경찰의 모습을 이번에도 잘 활용한다. ‘베테랑’처럼 터프하고 정의로운 경찰이나 ‘내부자들’처럼 지위를 이용해 더러운 뒷거래를 해서 썩은 조직사회를 묘사하는 도구로 쓰이는 경찰 등 경찰의 여러 가지 얼굴을 자주 등장시킨다. 이번에도 공무원 조직사회의 인간 군상이 펼쳐지고, 일반인 범죄자와 다를 바 없이 거울 쌍을 이루는 공무원 조직의 비리가 1970년대에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통해 우리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고, 지금 현재를 성찰하게 한다.

재미만 주는 영화가 아니라, 1970년대의 풍경, 여성적 삶의 분투, 액션과 스릴러 장르가 전하는 인간성 묘사에 대한 단단한 울림 등 여러모로 균형 잡힌 영화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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