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교회와 사회에서 이민자 배제는 추문이며 범죄입니다"

교종, 10월9일 연중 제28주일 및 시성식 미사 강론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9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봉헌된 연중 제28주일과 복자 조반니 바티스타 스칼라브리니 주교와 살레시오회 아르테미데 자티 수사 시성식 미사 강론에서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과 소외로 훼손된 교회와 사회에서 신자들은 항상 포용적 자세를 간직하라고 말했다. 특히 교종은 오늘날 교회와 사회에서 이민자를 배제하는 것은 ‘우리 눈앞에서 그들을 죽게 하는 ‘범죄’이며 ‘추문’이라고 강조했다. 미사는 성 베드로 광장에 3만여 신자가 참석한 가운데 바티칸 시복시성성 장관 마르첼로 세메라로 추기경이 집전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루카 17,11-19)에는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신 나병환자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자신이 고침을 받은 줄 알고 돌아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한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자기들의 길을 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감사의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예수님과의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 예수님께 돌아온 것은 오직 이방인인 사마리아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그가 받은 치유보다 예수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나병은 환자를 다른 사람과 격리시키는 질병으로 ‘사회적 삶과 종교 생활의 경계선’에 머물도록 강요하는 질병입니다. 이 황폐함 속에서 연대의 이미지는 우리 자신들이 스스로 하느님 아버지의 크신 긍휼이 필요한 죄인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내적 취약’으로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관계를 포함한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심한 ‘영적 질병’에 자주 빠지기 때문에 오늘 복음 말씀은 큰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능력은 우리 삶에서 하느님의 임재와 다른 사람과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제발 ‘감사합니다’라는 핵심 단어를 잊지 맙시다. 오늘 성인으로 선포된 두 분 성인은 우리들에게 ‘함께 걷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성 스칼라브리니는 이민자들을 많이 돌보았고 성 자티는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짊어지면서 병자들을 돌보았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포용적이고 장벽이 없는 교회’에 자신을 헌신했습니다. 성 스칼라브리니는 훌륭한 비전을 갖고 누구도 이방인이 아닌 장벽 없는 세상과 교회를 시도했습니다. 또한 살레시오 수도자 성 아르테미데 자티는 ‘감사의 살아 있는 본보기’였습니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너무 큰 고통’을 초래하는 이주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을 피해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이주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혼의 고결함을 배양할 수 있도록, 즉 감사할 수 있도록 ‘분열 없이 함께 걸을 수 있도록’사람들에게 요청해야 합니다.

신앙은 항상 우리 자신을 넘어 하느님과 형제자매를 향해 나가도록 촉구하며, 결코 우리 자신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치유와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깨우치고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끼지 않고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의 나약함을 함께 나누도록 초대합니다. 함께 걷는 것은 교회의 핵심 초석이며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가족, 직장,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복음의 봉사’인 모든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고, 열려 있고, 포용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복음 말씀과 시성된 성인 두 분은 우리 모두에게 분열의 장벽 없이 함께 걷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함을 깨닫게 해 줍니다.

 

교종, 핵전쟁 위협 종식 촉구

프란치스코 교종은 조반니 바티스타(세례자 요한) 스칼라브리니 주교와 아르테미데 자티의 시성식을 마친 후 60년 전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무렵을 회상하면서 인류가 당시 세계를 위협했던 핵전쟁 위기와 긴장 속에서도 평화의 길을 선택했던 것을 기억하자고 강조했다. 교종은 “왜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도 갈등과 긴장이 컸지만 인류는 평화의 길을 선택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런 다음 교종은 3일 전 광란적 폭력 행위가 일어난 타이로 화제를 돌려 타이 북동부 우타이 사완 아동발달 보육원에서 총기와 칼 공격으로 대부분 어린이들 37명이 사망한 사건을 개탄하면서 “깊은 슬픔과 애도로 어린이들과 그 가족들을 하느님 아버지께 맡긴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프란치스코 교종은 시성식에 모인 신자들에게 카푸친의 가난한 클라라회 마리아 코스탄자 파나스 수녀가 시복될 예정임을 생각하라고 촉구하면서 “마리아 콘스탄자께서 우리가 항상 하느님을 신뢰하고 이웃을 환영하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교종은 “성인들의 모범으로 활력을 얻은 우리가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도우시도록 동정 마리아께 전구를 청합니다”라고 강조했다.

 

“포용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교종, 스칼라브리니안 선교사들에 ‘만남의 메시지’ 전파 촉구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10일 전날 거행된 스칼라브리니안 선교회 창립자인 성 조반니 바티스타(세례자 요한) 스칼라브리노 시성식에 참석하기 위해 바티칸을 방문 중인 스칼라브리니안 선교사들을 접견하고 다양하게 구성된 그들의 선교회처럼 다양하고 창의적 방법으로 인류애와 만남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연설 내용.

스칼라브리니안 선교회의 다양성은 말하자면 하나의 교구로는 충분하지 않은 창설자의 마음입니다. 특히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위한 성 스칼라브리니 주교의 사도직 업적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1800년대 후반 성인의 사역 기간 수많은 이탈리아인이 아메리카로 떠났습니다. 스칼라브리니 주교는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그들에게 적절한 물질적, 영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큰 자애와 사목적 지성으로 돌보았습니다. 오늘날 이주를 둘러싼 현실을 살펴보면 성 스칼라브리니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이주는 매우 중요한 도전’입니다. 따라서 이주자들에 대해 ‘거부보다는 형제애를, 무관심보다는 연대’를 우선시해야 할 긴급한 필요가 있습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은 이민자와 난민 형제자매를 향한 하느님의 시선을 반영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스칼라브리니 주교의 모범을 따라 구체적 근접성을 통해 이동하는 인류와의 만남을 통해 그분의 시선이 우리의 시선을 넓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주민들은 정착할 때까지 수많은 곤경에 직면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민자들과 토착민들 사이의 평등한 만남의 문화를 살고 전파하면서 인간애를 실천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이주민의 믿음, 희망, 끈기가 세계 건설에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본보기와 자극제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위한 평화와 안녕에 매우 풍부하고 유익합니다. 이 세상이 모두를 위해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마지막까지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을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이들과 함께 예술, 음악 및 문화 간 역학의 도구가 되고 다양한 만남의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스칼라브리노회의 모든 선교사는 항상 이주민의 아버지이신 거룩한 설립자로부터 영감을 받으십시오.

성 스칼라브리노의 카리스마가 이민자들과 ‘함께 있는 기쁨’, ‘그들을 섬기는 기쁨’, ‘성령의 감동으로 믿음을 행하는 기쁨’을 통해 우리가 그들 안에서 주 예수를 만난다는 확신을 새롭게 하기를 빕니다. 성 조반니 바티스타 스칼라브리니의 거룩함과 하느님의 무한한 상상력이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가 되기를 원하는 대로 독창적이고 독특한 방식으로 모두 성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우리를 '감염'시키기를 바랍니다.

 

“젊은이들은 창의력을 발휘해 평화의 대사가 되십시오”

교종, 벨기에 청년 순례자들에게 형제애, 평화, 화해의 열정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10일 로마를 순례중인 벨기에의 300명 젊은이들을 만나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도 창의성을 발휘하여 신앙을 실천하라고 격려하고 교회가 형제애, 평화, 화해의 가치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열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연설 내용.   

점점 더 세속화되고 갈등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여러분이 행하는 헌신과 그리스도교적 증거에 격려를 드립니다. 교회가 더 평화롭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관대함이 매우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교회의​​ 현재입니다. 교회는 젊음과 형제애, 평화, 화해의 가치로 가득 찬 좋은 세상을 건설하려는 여러분의 관대함, 기쁨, 의지가 특히 필요합니다. 어려움과 위기는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젊은이들은 그리스도와의 견고한 관계를 발전시키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자신의 나약함과 연약함을 ‘겸손하고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슈퍼 영웅’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진실하며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여러분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사람, 젊은 이민자와 난민, 길거리에서 사는 젊은이, 외로움과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과 동료애와 친밀감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열망인 ‘참된 교회’와 ‘즐거운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뿌리인 노인들의 조언과 간증을 통해 스스로를 계몽시켜 나가야 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과 대화를 통해 성장함으로써 일상의 투쟁을 위한 견고한 인격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노인들은 또한 그들의 신앙과 종교적 신념을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인류가 어려운 이 시기에 투쟁해야 할 가치는 사회에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전파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평화입니다. 여러분 모두 평화의 장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변과 각자 내면의 평화의 장인이 되십시오. 세계가 사랑, 함께 살기, 형제애, 연대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평화의 대사가 되십시오. 여러분은 복음을 전하는 데 결코 지치지 마십시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디를 가든지 복음의 전달자가 되는 데 지치지 않고 삶의 많은 사소한 일에 주의가 산만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우정에서 비롯되는 본질적인 것,특히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를 성모 마리아의 모성적 보살핌에 맡깁니다. 특히 ‘기도와 삶의 학교’에서 묵주기도는 필수적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포용적 성장은 스스로에게 향하지 않는 시선에서 시작”

교종, 센테시무스 아누스 재단(백년재단) 총회 연설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8일 바티칸에서 열린 센테시무스 아누스 재단(Centesimus Annus Foundation. ‘백년재단’) 총회 연설에서 포용적 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초한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전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설 내용.

교회 사회교리와 관련해 그동안 센테시무스 아누스 재단이 수행한 일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복잡한 경제 및 사회 세계를 내부에서 읽고 항상 움직이고 변화하는 현실과 교회의 사회교리와 지속적으로 비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회의 주제 ‘빈곤을 퇴치하고 평화를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포용적 성장’의 핵심인 ‘포용적 성장’은 성 바오로 6세의 ‘대중적 진보’를 연상시킵니다. 발전은 경제 성장에 국한될 수 없습니다. 진정성 있고, 균형적이어야 하며, 개인과 전체 사람의 발전을 촉진해야 합니다. 발전은 포괄적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경제적 현실을 윤리적 의미의 ‘누룩’으로 만들고 개발과 성장을 촉진하는 것은 평신도의 임무입니다. 이는 ‘복음의 비전’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여러분이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오며, 사람의 외모와 시선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성전 헌금함에 두 푼의 동전을 넣은 가난한 과부가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는 몸짓을 볼 수 있었습니다.(마르 12,41–44) 예수님의 시선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자비와 연민에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허용되는 유일한 시간은 그가 일어나도록 돕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주식시장 붕괴 이전 시기를 다룬 미국 작가 작품의 저자는 “여러 주에서 이미 불황이 감지되고 있었으며 농민과 노동자가 비상상태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절망적인 사람 속에서 예후디 사부는 나에게 결코 누구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라고 썼습니다. 포용적 성장 출발점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는 시선, 스스로에게 집중하지 않는 시선입니다.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기록된 “가난한 사람들을 재정적으로 돕는 것은 긴급한 필요에 직면했을 때 항상 잠정적인 해결책이 되어야 합니다. 더 넓은 목표는 항상 일을 통해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위한 노동정책을 추진하는 데 전념하지 않을 경우 조장될 ‘세계적 버려지는 문화’를 경계해야 합니다. 회칙 '모든 형제들'에 언급된 "부(富)가 증가하지만 불평등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을 기억합시다.

미래는 각자 작은 방식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사람과 상황을 시작으로 일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갖도록 부름을 받는 새로운 시각을 요구합니다. 폴 오스터의 소설 "공중 곡예사"(Mr Vertigo)에 나오는 스승은 학생들에게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표시로 삼고 결코 누군가를 무시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입니다. 사업주라고 해서 직원들을 얕잡아 볼 자격은 없습니다. 만일 은행장이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기초를 바탕으로 ‘각 개인의 시선 전환’을 통해 이 시대의 중요한 성찰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고객을 만나기 전 그들의 존엄성을 확인하십시오. 이러한 시선으로만 우리는 전쟁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현재의 ‘투기 악’에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 것이 모든 것을 화평하게 하는 사람의 스타일입니다. 포용적 성장과 교회 사회교리에 대한 지식을 증진하는 데 헌신하는 센테시무스 아누스 재단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여러분 모두와 가족들을 위해 저의 사도적 축복을 드립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청소년들 옆에는 여러분의 존재가 필요합니다”

교종, 스위스 학교 교목 목회자들에게 그리스도교 화합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7일 바티칸을 방문한 스위스 로만시 주 학교에서 일하는 교목들을 접견하고 모든 종파의 그리스도교인들과 함께 젊은이들을 인도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 화합을 구축할 것을 촉구했다. 연설 내용.   

현재 여러분이 종사하시는 일은 힘들지만 강력한 동기와 관대한 정신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많은 것을 주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봉사 경험과 젊은이들의 현실에 대한 몇 가지 측면을 알려주신 대변인께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경험은 젊음과 함께하는 열매입니다. 교목들이 책에서 읽은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과 함께 있고, 동반하고, 경청하고, 기도로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에 대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침묵 속의 얼굴과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미소와 눈물, 꿈이 다시 떠오릅니다. 거기에서 내면의 추진력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사명은 에너지를 많이 흡수하고 재충전할 주님의 '수액'이 없으면 영혼을 소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4년 전 2018년에 열린 '청년 시노드'는 미사여구의 아름다운 최종 문서로 끝난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 시노드를 전후하는 교회 여정의 ’절정의 순간‘이었습니다.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고 가까이 있는 사목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시노드 문서의 새로운 페이지를 쓸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예수님 제자들 경험의 어떤 부분은 한 사목자가 두세 명의 젊은이와 함께 여행을 떠날 때마다 새로워집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그들 마음에 희망을 일깨워 줍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기술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지나가시는 분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행동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현장에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젊은이들 옆에는 당신의 존재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가톨릭 신자이자 개신교인으로 함께 협력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일이자 좋은 증거이며 교회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더욱 완전한 일치를 향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앞으로 그 길을 향해 가기를 응원합니다. 여러분이 맡은 사명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여러분과 동료, 가족 모두에게 사도적 축복을 드립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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