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난민과의 대화 마련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가 제108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9월 25일)을 맞아 한국에 정착한 이집트 난민이자 다큐멘터리 작가인 다르위시 무삽 씨를 초대해 다큐멘터리 영화 '소속' 상영회를 마련했다.

다큐멘터리 '소속'은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가 만든 난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올해 6월 제7회 난민영화제에서 같은 주제의 영화 '기록'과 함께 상영됐다. '소속'은 한국 배우 정우성 씨(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시리아 유학생으로 한국에 귀화한 압둘 와합,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스웨덴에 입양됐던 소니와 야콥 남매, 이집트 난민 부부이자 영상 촬영한 다르위시 무삽와 사라 아흐메드 부부의 이야기다. 

“우리는 태어난 곳을 스스로 정할 수 없다. 태어난 순간부터 운명이 우리의 삶을 움직인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어디에서 누구와 자랐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우리가 속한 환경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유전자만으로 이뤄진 존재가 아니다. 주변 환경 그 안에서 살아가는 복합적 존재다. 이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소속감을 찾을 수 있을까?”(다큐멘터리 '소속' 프롤로그)

태어난 곳과 자란 곳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곳이 같은 사람,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귀화인과 난민, 한국인 남매지만 어린 시절 스웨덴으로 입양돼 또 다른 문화 속에서 살며 끊임없이 자신의 소속과 정체성을 고민하며 사는 이들.

이들에게 “어디에서 왔습니까?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은 그저 의례적이고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디이며,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와는 상관없는, “당신은 우리와 다르게 생겼고, 우리와 함께 소속된 사람이 아니”라는 배제와 차별의 말이 되기도 한다.

전 세계 약 800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 곳을 잃고, 이들 가운데 2600만여 명은 난민이 된다. 이런 현실에서 난민 인정률 1퍼센트인 한국은 난민에게 더욱 가혹한 나라다. 생김새, 종교, 언어, 태어난 나라가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 쉬운 배제의 이유다.

다큐멘터리 영화 '소속'의 한 장면. (자료 출처 = 유엔난민기구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다큐멘터리 영화 '소속'의 한 장면. (자료 출처 = 유엔난민기구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이날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 무삽 씨와 그의 아내가 겪은 일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2016년 한국으로 망명했다.

2010년 시작된 ‘아랍의 봄’ 이후 무삽 씨는 이집트 정부의 인권 운동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면서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는 미디어 활동에 참여했다. 사진 작가로서 이집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기록하고 알렸던 그는 2013년부터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했다. 인권 활동 중에 만나 결혼한 그의 아내와 무삽 씨는 망명을 결정하고 2016년 고국을 떠나 한국에 도착했다.

“그런데 왜 한국이었을까?” 무삽 씨는 한국행은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의해 보내진 것이라고 답했다. 망명 과정에서 그들이 스스로 정한 것은 이집트를 떠나자는 것뿐. 그 다음부터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얻기까지의 여정은 그야말로 멀고 험했다.

처음 이들 부부의 난민 인정은 단번에 거절당했다. 난민 인정 심사를 위한 인터뷰는 20분이 걸리지 않았고, 그나마 잦은 저지로 답변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통역 역시 제대로 지원받지 못했다. 이들은 몇 해 전 언론에 보도됐던 법무부 난민 인터뷰 조작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이런 일은 비단 무삽 씨 부부만의 일이 아니었다.

한국에 들어올 무렵 임신 중이었던 그의 아내 사라 씨는 곧 첫 딸을 낳았고 이들은 이제 두 딸의 부모가 됐다.

무삽 씨는 그의 첫 딸은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오롯이 한국의 문화와 언어 속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부모가 이집트어를 쓰기 때문에 그 역시 알아듣지만 대답은 한국어로 한다. 이제 무삽 씨와 사라 씨는 계속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야 하지만 가장 큰 걱정은 딸들에게 법적 지위가 부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난민법 제31조에 따르면 난민으로 인정된 외국인은 한국 국민과 같은 사회보장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법이 그렇듯 법조문과 현실의 괴리는 크다. 온전히 한국인으로 자라는 딸들이 제대로 교육과 의료 서비스 등을 받도록 하는 것이 무삽 씨의 가장 큰 과제이기도 하다.

9월 23일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가 난민과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소속'을 상영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정현진 기자<br>
9월 23일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가 난민과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소속'을 상영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정현진 기자

무삽 씨는 그가 고국 이집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과 같은 난민들의 인권을 위해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예수회 재단을 통해 인턴십 활동을 하고 있지만 곧 기간이 끝나 또 다른 활동과 생활을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삽 씨는 다행히 한국에서 법률적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시리아인 압둘 와합 씨 역시 자신을 거부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돕고자 하는 이들 덕분에 지내 올 수 있다고 말했지만, 더 이상 난민들의 삶은 일부 사람들의 개인적 호의에 기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날 상영회에 참석한 이들은 막연히 알고 있던 난민과 입양인들에 대한 피상적 정보가 아니라 그들의 입을 통해 길고도 깊은 갈등과 고통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특히 스웨덴으로 입양됐던 소니 씨는 영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저 지구인으로 살기로 했다.” 남들과 다른 모습,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양부모로부터 독일과 네덜란드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스웨덴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모든 고통 끝에 소니 씨가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닐 것이다.

입양인, 난민, 귀화인들이 자신의 소속을 고민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으로서 만나며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마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는 모두 지구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문화와 제도가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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