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등록 한인 입양인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으로 부각된 미등록 이주민 문제

애플TV 드라마 '파친코'가 화제다. 일제 강점기와 재일 교포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방영되는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다는 점이 우리의 흥미와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배우들의 상당수가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이고 감독 역시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두 명의 감독 가운데 한 명인 저스틴 전은 미국의 배우이자 감독이다. '파친코'에 가려졌지만, 그의 전작 영화 한 편이 지난해 잠시 화제가 되었다. 그가 직접 주연과 감독을 맡은 영화, '푸른 호수(Blue Bayou)'(2021)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을 받았다. 이 영화는 미등록 한인 입양인, 즉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입양되었지만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주인공이 불합리한 이민법으로 추방되는 불행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세계적 주목을 받은 것은 단순히 ‘한인’ 입양인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트럼프로 상징되는 전 세계적인 반이민 정서 속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는 미등록 이주민의 문제를 정면으로 주시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 안토니오가 시민권이 없다는 이유는 자신의 탓이 아니라 순전히 그를 학대하고 방치하면서 국적 신청을 하지 않은 부모의 잘못이었다. 5살에 미국으로 입양되어 30년을 미국에서 성장하고, 아내와 두 자녀를 가진 미국인이지만 그는 언어도 문화도 모르는 한국으로 추방되어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에게 추방이란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는 경험인 것이다. 영화는 미등록 이주민의 추방이 불법 체류자를 돌려보내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터전과 가족을 빼앗는 비인도적인 처사임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푸른 호수'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유니버설 픽쳐스)
'푸른 호수'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유니버설 픽쳐스)

한국 당국의 무책임한 입양 절차

간간히 언론을 통해 미국의 미등록 한인 입양인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다. 이들의 문제는 한국과 미국 정부 모두의 방치와 무책임이 낳은 구조적인 문제다. 한국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약 17만 명의 아동을 해외로 입양시켜 왔다. 그 가운데 12만 명이 넘는 아동이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이는 미국의 국제 입양인 가운데 4분의 1에 해당한다. 통계는 없지만 이들 가운데 약 2만에서 4만 명이 시민권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추정한다.

한국 정부와 입양단체는 한국에서 입양 절차를 완료하지 않고도 아동을 보낼 수 있도록 방치해 왔고, 미국 정부는 이들에 대한 구제 절차를 2001년에서야 마련했다. 아동시민권법(Child Citizenship Act)으로 해외입양인에게 모두 국적을 부여하도록 구제 법안이 마련되었지만, 1983년 이후 출생한 입양인에게까지만 적용되어 상당수 한인 입양인은 이 법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현재까지 한국으로 추방된 한인 입양인은 공식적으로 10명으로 집계되었지만 관련 단체들은 적어도 5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한국어도, 문화도, 연고도 없는 미등록 한인 입양인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의 대책도 전무하다. 2017년 한국으로 추방된 입양인 필립 클레이(Philip Clay)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영화 '푸른 호수'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아담 크랩서(Adam Crapser)는 입양된 지 37년이 되던 해인 2016년 한국으로 추방되었다. 그 역시 한국에서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다 멕시코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휴먼 다큐 사랑'에서 아담 크랩서(신성혁) 씨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이미지 출처 = MBCLife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2017년 '휴먼 다큐 사랑'에서 아담 크랩서(신성혁) 씨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이미지 출처 = MBCLife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우리가 외면하는 이 땅의 미등록 이주민

입양인 뿐일까?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의 한인 이민자들 가운데 미등록 이주민은 2017년 현재 약 17만 명에 달한다. 이는 이민자 집단 중 8번째로 많은 숫자다. 이들 중 어린 나이에 이민 온 한인들은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입양인들처럼 이들이 추방될 경우 한국 사회 정착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 집권 당시 아동 시절 이민 온 젊은이들의 추방을 유예하는 법안(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DACA)이 통과되어 약 9000명의 한인 이민자가 유예를 신청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집권 이후 이들의 지위는 계속해서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등록 한인 이민자와 그들의 추방에 관한 어떠한 현황도 파악하지 않고 있다.

어쩌다 접하는 먼 나라 미국의 한인 이민자와 입양인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연민과 동정을 보낸다. 그러나 바로 여기 한국에서 살아가는 미등록 이주민이, 그것도 약 40만 명이 하루하루 추방의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아동과 청소년은 약 2만 명에 달한다. 우리는 미등록 이주민을 불법 체류자라 부르며 자국으로 추방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미등록 아동 청소년은 한국 사회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에 익숙하며 한국 사람들과 교우 관계를 맺는 사실상 한국인이다. 이들에게 자국은 또 하나의 타국에 불과한 것이다. 영화 '푸른 호수'의 안토니오는 미국에도 그리고 한국에도 있다.

 

손인서
비정규직 박사 노동자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소속.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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