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난받는 세계 이웃을 받아들일 준비되어 있는가?

아시아에서 모범적으로 난민 문제에 대처했지만

우리는 왜 난민을 싫어할까? 지난 2020년 유엔난민기구가 국내 한 여론조사업체에 의뢰하여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53퍼센트가 난민 수용에 반대하였다. 이들은 난민을 반대하는 주요한 이유로 정부와 국민의 부담(64퍼센트), 범죄 등 사회문제 야기(57퍼센트), 그리고 가짜 난민 유입 가능성(49퍼센트)을 꼽았다. 그렇지만, 국내 이주민 가운데 난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국내 이주민 인구는 이미 200만 명을 넘어섰지만, 난민 인정자는 겨우 1000여 명, 이들의 가족이나 난민 신청자 등을 합해도 약 3만 명을 넘지 않는다. 전체 이주민 가운데 난민의 비중은 고작 1퍼센트 남짓할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유독 난민들에게는 근거 없는 혐오와 거부감을 거두지 않고 있다.

겉보기에 한국은 아시아에서 모범적으로 인도적인 난민 정책을 편 국가다. 정부는 1992년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2013년에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난민 심사를 제도화한 난민법을 시행했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다르게 정부는 가장 차별적인 난민 정책을 시행해 왔다. 1994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 정부의 난민 인정률은 약 3퍼센트에도 미치지 않는다. 7만 건이 넘는 신청자 가운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2021년까지 겨우 1156명밖에 되지 않는다. OECD 37개 회원국의 난민 인정률이 평균 25퍼센트이고 한국은 회원국 가운데 35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퍼센트의 숫자가 말하는 것은, 정부가 나서서 난민이란 그 의도가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최근 공개된 난민 체류관리 지침에 잘 드러나 있다. 법무부는 시민사회의 요구에도 난민 신청자의 체류관리 및 심사에 관한 지침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정보공개청구소송을 통해 비로소 공개된 지침은 난민 신청자의 취업 등 자유를 제한하고, 난민 불인정에 따른 항소에 차별을 두고, 출국 명령과 구금을 구체적 기준 없이 남용하는 등 난민을 향한 편견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지 출처 = Pxhere)
(이미지 출처 = Pxhere)

‘차별적 배제’를 기반으로 한 난민 정책

정부의 차별적인 난민 정책과 관행은 단순히 난민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난민을 비롯해 이주민에 관한 정부 이민 정책의 기조는 한국인과 혈연관계에 있거나 한국에 이바지할 수 있는 우수한 해외 인재만 정착을 허용하고 그 외의 이주민은 단기 체류만을 허용하는 소위 ‘차별적 배제’의 원칙에 기초한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과 관행이 난민 정책에 암묵적으로 반영됐다고 보는 것이 지금의 난민 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2021년 한국 정부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 391명을 법무부는 ‘특별 기여자’로 규정하였다. 국제법상 이들은 난민이지만 정부는 애써 이들을 여타 난민과 구별시키고 별도의 혜택을 부여하였다. 이는 난민에 대한 정부의 차별적인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한국 사회에 공헌한 이주민만 차별적으로 대우하겠다는 이주 정책 기조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정부의 차별적 이민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난민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리라 기대하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개혁되리라 전망하는 것은 현실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정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2018년 무사증 제도로 제주도 입국한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을 상기해 보자. 당시 이슬람교도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앞세워 우리는 범죄자와 가짜 난민으로 몰아세우고 난민 수용에 반대했다. 당시 난민법 폐지 등을 주장하는 국민청원에 6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러한 광기 어린 혐오는 난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주민 전체를 겨누고 있다. 지난해 2021년 대구의 한 대학교 인근 동네에서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이슬람 사원 건립 움직임이 일자 일부 주민들은 마찬가지로 이슬람 혐오를 앞세워 건립에 반대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된 바 있다. 그리고 2020년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되자 일부 시민들은 그 책임을 중국인과 중국 동포에게 전가하며 혐오를 확산시킨 일도 있었다. 사실 우리는 유독 난민 수용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주민에게 가했던 인종차별을 난민에게 똑같이 가하고 있던 것이다.

난민은 위험하지 않다, 편견을 딛고 그들을 받아들여야

시민사회나 비판적인 언론들은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국가의 시민으로서 난민의 포용은 한국이 보편적인 인권 국가로서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필요 불가결한 과정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었던 우리의 과거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런 시혜적인 논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는 우리가 난민 수용에 반대했던 이유가 그저 국제 정세나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주민과 난민에게 투사해 왔던 인종주의적 편견과 차별을 인정하고 공존을 모색하기 위한 길을 찾아야 한다.

요즈음 TV 예능에서 콩고 출신의 남매 조나단과 파트리샤가 단연 화제다. 이들은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과 톡톡 튀는 예능감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이들 남매의 아버지가 3퍼센트도 되지 않는 확률을 뚫고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극소수의 난민 인정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면 아마도 남매는 지금의 위치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 가족이 가짜 난민이고, 잠재적인 범죄자이며, 정부의 예산을 축내고 있는가? 오히려 이들이 우리 사회에 풍부하고 다양한 활력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정부의 차별적 이민 정책과 우리의 인종주의적 편견이 우리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손인서
비정규직 박사 노동자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소속.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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