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친의 죽음이 남긴 각성과 연대의 유산

빈센트 친의 죽음과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혐오범죄

미국의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6월 23일은 특별한 날이다. 아시아계 미국인 단체들은 올해 이날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40년 전인 1982년 6월 23일은 중국계 미국인인 빈센트 친(Vincent Chin)이 인종혐오 범죄로 살해당한 날이다. 미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인종차별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비참한 죽음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특별히 기억되는 이유는 이들이 처음으로 인종차별에 맞서 각성하고 서로 단결하기 시작했던 역사적 이정표였기 때문이다.

1982년 6월 19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하일랜드 파크의 한 술집에서 당시 27살의 빈센트 친은 결혼을 앞두고 축하 파티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미국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의 감독관이었던 로널드 에번스와 그의 양아들이자 같은 회사에 근무하다가 해고된 마이클 니츠는 빈센트 친과 시비가 붙었다. 당시는 일본 자동차의 진출로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은 시기였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는 대규모 해고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에번스와 니츠는 친을 “쪽바리”(‘Jap’, 일본인을 비하하는 말)로 부르며 욕을 했다고 전해진다. 중국계였지만 일본인으로 오해한 것이었다. 이들은 차에서 야구 방망이를 꺼내들고 도망가는 빈센트 친을 쫓아가 폭행했다. 친은 나흘 뒤인 23일 숨을 거두었다.

중국계 미국인 빈센트 친. (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중국계 미국인 빈센트 친. (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빈센트 친의 유산, ‘하나의’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각성과 연대

에번스와 니츠는 처음엔 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나중에 살인에 고의가 없는 과실 치사로 낮추어졌다. 이듬해 지방 법원은 에번스와 니츠에게 각각 3년의 집행유예와 벌금 3000달러를 선고했다. 어처구니없는 판결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전국 각지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중국계, 일본계, 필리핀계 등 서로 다른 국가 출신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스스로 ‘하나의’ 아시아인으로서 같은 처지에 놓여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중국인, 일본인, 인도인, 혹은 필리핀인들은 서로 다른 집단으로 생각해 왔다. 비록 사회에서 이들은 백인이나 흑인과 구분되는 아시아인으로 뭉뚱그려 취급되었지만 각각은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공동체였다. 그러나 빈센트 친이 살해된 것은 그가 중국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시아계였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어떤 문화와 배경을 갖고 있는지 상관없이 이들은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차별받는 것이었다. 빈센트 친의 살해는 이들이 처음으로 아시아계로서 운명 공동체임을 깨닫게 해 준 계기였다.

법원 판결 후 2주 만에 이들은 역사상 최초로 범아시아계 시민단체인 ‘정의를 위한 미국시민’(American Citizens for Justice)을 결성했다. 이 단체는 전국적인 저항운동을 벌이고 연방 정부가 민권법 위반으로 사건을 제소할 것을 청원하는 운동을 펼쳤다. 그 결과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계 미국인이 관련된 민권법 위반 사건으로 연방 법원 재판이 개시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재판 결과, 가해자 중 한 명인 니츠는 무죄가 선고되었고 에번스만 2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이후 항소심에서 에번스 역시 무죄가 선고되었다.

아시아계 사람들이 '아시아 혐오 중단' 메시지를 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미지 출처 = Flickr)
아시아계 사람들이 '아시아 혐오 중단' 메시지를 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미지 출처 = Flickr)

코로나19 시기에 독버섯처럼 펴져 간 혐오범죄

빈센트 친 살해 사건은 인종차별적 사법 체계의 한계에 가로막혀 정의가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각성과 연대는 중요한 자산으로 남게 되었다. 그 유산은 아시아계를 넘어 아프리카계와 중남미계 미국인들과 인종차별에 맞서 연대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흑인의 삶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과 ‘아시아 혐오 중단’(Stop Asian Hate) 운동에서 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가 연대하는 움직임은 이러한 연대의 흐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범죄는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역시 1992년 LA 폭동부터 차별과 혐오의 피해자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2020년 3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시에서는 아시아계를 겨냥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고, 이 사건으로 한국계 이민자 4명을 포함해 8명이 사망하였다. 아시아계 혐오는 먼 나라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인 것이다.

얼마 전 BTS는 미국 백악관의 초청으로 인종차별과 혐오의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방관하고 있다. 그저 BTS의 높아진 위상에 자화자찬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우리는 동남아 이주노동자, 중국에서 건너온 동포들, 동남아의 결혼 이주민, 그리고 검은 피부의 난민을 향한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거두고 있지 않다. 나아가 코로나를 핑계로 중국인 혐오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도 외국에 나가면 중국인이나 베트남인과 다를 바 없는 그저 ‘노란 피부’의 아시아인이고, 흑인과 다르지 않은 ‘유색 인종’일 뿐이다. 우리와 다르다고 배척하는 이주민은 서구인의 눈으로는 나와 같은 아시아인이고 유색 인종일 뿐이다. 우리도 전 세계적인 아시아 혐오 반대에 연대해야 하는 이유다.


손인서
비정규직 박사 노동자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소속.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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