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고통이 철학자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왜일까?

불가(佛家)에서는 인생은 고해(苦海), 즉 고통의 바다라고 합니다. 부처는 태어남과 늙음, 병듦과 죽음, 즉 생로병사를 근심과 걱정, 슬픔과 괴로움으로 보았죠. 아무리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늙음과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늙음은 젊음과의 이별이고, 죽음은 삶과의 이별입니다. 이별은 인간의 숙명인 셈이죠. 인간의 몸을 가진 사람 치고 어떤 누구도 이별을 피할 수가 없을 거예요. 삶이 고통인 것은 인간이 끊임없이 무엇인가와 이별해야만 하는 시간 속의 존재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시간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고통이 이렇게 인간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철학에서는 ‘고통’을 주제로 하기를 꺼려합니다. 그렇다면 고통이 철학자들의 관심사로부터 멀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통받는 인간>의 저자 손봉호는 말합니다.

“고통이 철학과 심지어 의학에서조차 무시되어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매우 주관적인 느낌이요, 사적인 느낌이기 때문일 것이다. 분석철학에서는 철저히 주관적이요, 의사전달이 불가능한 경험의 전형을 고통으로 보고 있다. 고통의 종류를 알아내고 그 정도를 측절할 수 있는 기계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고, 그런 도구가 있더라도 그것은 고통 자체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고통을 일으키고 고통이 일으키는 신체적인 작용에 대한 정보에 불과할 것이다.”

고통이 주관적이고 사적인 느낌이며, 객관적으로 정량화시킬 수 없는 것이기에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저자는 인간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철학은 결코 자존과 평안을 누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느끼는 고통의 문제를 철학자들이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저자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저 멀리 ‘있는 것’들에 대한 객관적 지식도 아니고 고통의 본질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서술도 아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금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요, 해방될 수 없으면 고통의 의미라도 알아서 위로받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극심한 고통으로부터 당장 해방시키는 것이 의학의 임무요, 고통스런 삶으로부터 영원한 구원을 제공하는 것이 종교라면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철학의 임무임을 역설하면서 책을 통해 고통의 의미를 하나하나 음미해갑니다.

빅터 프랑클, "사랑하는 자만이 불가피한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게 해준다"

고통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낸 이는 철학자가 아닌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랑클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대학살로 약 1,100만 명이나 목숨을 잃었지만 유태인이었던 빅터 프랑클은 죽음의 수용소를 무려 네 군데나 거치고서도 살아남았죠.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말하는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그의 책 <삶의 의미를 찾아서>에 그 답이 나와 있죠. 하나는 사랑, 또 하나는 삶의 의미였습니다.

그를 포함한 유태인 일행이 체코슬로바키아 북부에 있는 테레지엔슈타트의 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추위와 배고픔과 질병, 그리고 죽음뿐이었어요. 그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하루에 200구의 시체를 태울 수 있는 화장시설이 건설되고 있었죠. 이곳에서 6개월을 보낸 후 빅터의 아버지는 여든 한 살의 나이로 폐렴과 굶주림으로 숨을 거두었고, 1944년 5월에는 빅터의 장모 역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살해됩니다.

빅터와 그의 아내 틸리는 기차에 실려 어디론가 실려 갑니다. 기차는 400킬로미터를 달린 후에 서게 됩니다. 그곳에서 남자와 여자를 가르는 선별작업이 이루어지죠. 그는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아내에게 말합니다. “여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살아야 하오. 내 말 들려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아우슈비츠였습니다. 그곳에서는 2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돼지우리 공간 같은 곳에 1,500명이 구겨 넣어졌습니다. 드러눕기는커녕 쭈그려 앉을 수도 없는 공간에서 유태인들은 나흘 동안 5온스 분량의 빵을 배급받기도 했죠. 허름한 옷을 입고 추위에 떨며 중노동을 해야 했던 빅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 마지막 남아 있던 피하지방층이 사라지고, 몸이 해골에 가죽과 넝마를 씌워 놓은 것 같이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몸이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과 웃음소리를 떠올렸습니다. 그때의 순간을 빅터는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여전히 더 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삶이 참혹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 빅터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어떤 고통 속에서도 삶에 의미가 있다면 그 고통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은 훗날 빅터 프랑클의 ‘의미치료(로고 테라피)’라는 심리학 이론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인간의 삶이 결코 무의미한 것일 수는 없다는 신념, 또한 그를 비참의 나락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었던 거죠. 삶이 의미를 상실했을 때 인간은 비극의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지만 삶에 의미가 있는 한 어떤 고통도 인간은 능히 버텨내수 있다는 것이 빅터 프랑클의 ‘의미치료’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빅터는 수용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의미탐구>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이 책에서 그는 말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시련과 죽음도 인간에게 남은 단 한 가지의 자유, 즉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정신의 자유만은 빼앗길 수 없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 고통을 대하는 그의 태도입니다. 내가 왜 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를 알게 되면, 즉 고통의 의미를 알게 되면 인간은 그 고통에 더욱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의미의 상실은 좌절과 절망을 가져 오게 됩니다. 그런 사례를 하나 볼까요.

고통의 의미를 묻는 인간, "나는 개고생, 나만 개죽음?" 

월맹군의 포로가 된 로버트라는 24세의 미 해병 특공대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월맹군의 명령에 고분고분하게 따랐죠. 말을 잘 들어야 빨리 풀려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고분고분한 보람이 있었는지 수용소 사령부로부터 그는 1개월 후에 석방될 것이라는 통고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석방되지 않자, 로버트의 기대는 원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 후 로버트는 우울증에 걸려 침대에 웅크린 채 손가락만 빨아댔고, 끝내는 대소변조차 침대에서 보게 되었죠. 결국 그는 뚜렷한 신체적 이상도 없이 세상을 뜨게 됩니다.

로버트, 그의 병명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절망, 희망의 사라짐이었겠죠. 희망은 그에게 곧 삶의 의미였을 것이고, 내가 왜 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였겠죠. 그 이유가 살아야 하는 의미였겠구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고 철학자 니체는 말했습니다. 로버트에게는 감옥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사라져버리자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죠.

그런데 살다보면 우리는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풍년거지가 더 서럽다는 말도 있듯이,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만이 참혹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 억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죠. 이럴 때 우리는 “대체 무슨 이유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 하나?”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것은 고통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대한 절규에 가까운 것일 테죠.

<고통받는 인간>의 저자 손봉호는 “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의미’를 가지려면 우리는 그것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나 과정으로 ‘이해’되거나 아니면 과거에 이미 일어난 사건의 불가피한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어떤 논리적 설명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히틀러에 의해 희생된 유태인들은 그들이 겪는 고통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고통이 우연적이며 거기에 어떤 이유나 목적도 없다면 삶은 허무할 수밖에 없겠죠. 시쳇말로 나만 ‘개고생’을 해야 하고, 나만 ‘개죽음’을 당한다는 것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비극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에서 등장하는 초인이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의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의도적’으로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지요. “비극,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내 기꺼이 너를 맞아주마.”라는 식이지요. 어차피 겪어야 할 운명이라면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통의 생물학적 의미,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경고음  

<고통 받는 인간>에서 저자는 고통의 생물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합니다. “고통은 무엇보다도 비정상적인 상황을 인식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몸에 이상이 있으면 고통이 그 사실을 경고하여 그것을 고치도록 한다.” 고통이 몸의 안전과 생존을 보호하기 위한 생리적 시스템이라는 것이죠. 어떤 부위에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가능한 한 빨리 비정상적 상황으로부터 정상적 상황으로 복귀하라는 신호인 셈이죠. 고통 그 자체는 부정적이요, 부정적인 것을 인식하게 하는 원초적인 경험이지만 그 부정적인 현상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고통은 변증법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문화는 고통과 불편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쉬운 예로 온돌과 에어컨을 떠올려볼까요, 온돌은 추위의 고통을 막기 위해 발명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에어컨은 더위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발명되었겠구요. 그런데 고통을 피하기 위해 발달된 인류의 문명이 오히려 인류에게 고통을 가중시킬 수도 있는 가능성으로 작용한다고도 볼 수가 있지요.

초고층건물에 정전사태가 난다고 가정해보세요. 엄청난 불편이 생길 수도 있겠죠. <고통 받는 인간>의 한 구절을 볼까요. “일반적으로 말해서 인간의식에 의한 문화적 상황이 자연의 상태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것이 붕괴될 확률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도시의 삶은 자연의 상태로부터 현저하게 멀어져 있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먹는 것에서부터 입는 것까지 기계문명의 혜택을 입고 있지 않은 것이 없죠. 과학기술의 발달로 현대의 일상생활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해졌죠.

문제는 이렇게 삶의 편리성을 획기적으로 증대해주고 사회의 모습을 새로운 방향으로 구조화하는 기술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경우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 <위험사회>를 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ich Beck)의 주장이지요. 문화가 발전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능성의 폭을 넓혀 준다는 것을 뜻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큰 고통을 당할 가능성을 뜻한다고도 볼 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 받는 인간>에서는 고통을 ‘희생’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쉘러의 견해를 소개합니다. 쉘러는 모든 고통을 전체를 위한 부분의 희생으로 설명합니다. 쉘러는 희생과 고통을 설명하면서 사람의 생물학적 죽음과 젊은이의 성장과정에서 생기는 고통을 예로 듭니다. 개개인의 죽음은 인류 전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하여 필연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희생이고, 죽음의 고통은 따라서 희생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성장의 고통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 개인의 변화에 가하는 방해작용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만 전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는 필연적이며, 그런 점에서 태어남이 고통, 죽음의 고통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예술, 고통을 초월하려는 인간의 꿈

슬픔과 고통은 하나의 ‘결핍’입니다. 무언가가 부족하기 때문에 슬프고, 무엇인가가 없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죠. 애정과 관심이 결핍되면 누구나 슬픈 법입니다. 식량의 부족은 육체의 고통을 야기하고 사랑과 애정의 부족은 정신의 고통을 야기합니다. 어머니의 부재는 아이에게 얼마나 끔찍한 공포를 야기하겠으며,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나 죽음은 얼마나 큰 정신적 고통을 야기하던가요. 결국 고통은 결핍으로부터 야기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결핍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그 결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꿈을 꾸게 됩니다. 추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따스한 세계를 꿈꾸고, 압제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해방의 세계를 갈망하게 되지요. 예술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 우리는 ‘예술은 고통스러운 자가 꾸는 꿈이다.’라는 정의를 내려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 영화 <프리다>의 한 장면

멕시코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18살 때 버스를 타고 가다 전차와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이 사고로 그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됩니다. 승객용 손잡이가 달려 있던 쇠파이프가 소녀의 몸 한복판을 관통했고, 파이프는 옆가슴을 뚫고 들어와 골반을 통해 질을 뚫고 허벅지로 나왔습니다. 요추 세 군데, 쇄골과 세 번째, 네 번째 갈비뼈가 부러졌습니다. 골반 세 군데가 부러졌고, 어깨뼈가 탈구되었고 으깨졌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의 열한 군데에 골절상을 입었죠.

프리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교통사고가 난 이후부터였습니다. 침대에 누워 두 팔만을 간신히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깁스를 캔버스 삼아 그녀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병이 난 것이 아니라 부서졌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행복했다"

그녀의 그림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프리다의 강인한 의지의 표현이었고, 고통이 없는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고통으로부터의 초월! 바로 그것이 프리다 칼로의 예술이 시작되는 곳이라고도 할 수가 있지요.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프리다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더 풍성한 예술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운명과도 같은 고통이 그녀의 예술을 낳았다고도 할 수가 있지요. 예술사는 고통과 맞서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했던 사람들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김보일 (배문고등학교 국어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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