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 언제까지 아플 거에요?”
“이제 안 아파.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럼, 그 모자 좀 벗어 봐요.”

오랜만에 만난 동네 꼬마와 반갑게 인사를 하다가 마지막 말에 뜨끔 해서 잠시 멈추었습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고 모자를 쓴 지도 벌써 1년이 넘어갑니다. 치료가 끝나고 머리카락도 꽤 자랐는데 모자를 계속 쓰고 다녔다는 것을 꼬마 덕분에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투병 선배님들의 경험담을 보아왔던 것과 같이 저도 첫 항암 열흘 만에 탈모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한 듯 생각했던 건강도, 여성으로서의 내 모습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자신감도 힘없이 툭 툭 떨어지는 머리카락과 함께 저를 떠나는 듯했습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싶은 상실감을 수녀님들이 짜 주신 따뜻한 모자, 부드러운 촉감의 모자로 그나마 위로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픈 나’와 함께했던 모자를 벗는 것은 마치 ‘들것을 들고 일어나 걷는 것’(요한 5, 8)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자를 벗을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은 아직 짧은 머리카락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모자를 벗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다시 병이 재발하지는 않을까?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무리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모자를 눌러쓰고 ‘아직 아픈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 더 마음 편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알았는지 장난기 어린 얼굴로 “언제까지 아플 거에요? 그 모자 좀 벗어 봐요”라고 웃으며 말을 건네는 꼬마의 목소리가 예수님의 목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박북실
©박북실

벳자타 못가의 병자들, 예수님은 그중에서도 서른여덟 해나 앓고 있는 병자에게 다가가 “건강해지고 싶으냐?”라고 묻습니다. 자신을 도와주는 이가 없다며 힘 빠지는 소리를 하는 병자에게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라는 말로 그를 일으키십니다. 들것에 누워 있던 병자가 일어날 힘은 이따금 하늘에서 내려오는 주님의 천사가 일으키는 기적도 아니고, 물이 출렁일 때 다른 이들보다 먼저 못에 데려가 줄 누군가의 도움도 아니고 ‘내 안에 있는 힘을 믿어 주시는 예수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걱정과 두려움, 원망과 슬픔, 외로움.... 그 아래 깊은 곳에서 나를 지어내신 하느님과 맞닿아 있는 생명의 힘을 불러일으키시는 예수님의 목소리에 슬그머니 모자를 벗어 봅니다.

‘언제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난 2년간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큰 병을 겪으면서 저도 일상의 소중함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저의 일상은 이러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미사하고, 사도직 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공동체에 돌아와 수녀님들과 식탁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하느님 앞에서 울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자를 벗고 다시 돌아온 저의 일상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먼저 제 몸을 살핍니다. 아프지 않은 날은 감사하게 몸을 일으키고, 아픈 날은 그저 누워서 하느님께 하루를 맡기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이라도 만날 일이 있으면 에너지를 아껴 두었다가 설레는 마음으로 만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지막인 듯 소중히 마음에 담습니다. 공동체에서 수녀님들을 위해 저도 무언가 할 수 있게 된 것, 밥 한 끼 요리할 수 있게 된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봉사입니다. 3개월마다 정기 검진받으면서 느끼는 걱정과 안도감까지.... 들것을 들고 일어선 제가 사는 새로운 일상입니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다른 리듬, 다른 빛깔이겠지요. 되돌아보니 어느 한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들것에 누워 있던 병자에게 길고 길었던 서른여덟 해, 그 긴 시간 동안 몸과 마음으로 겪어 낸 하루하루가 있었기에 예수님의 목소리에 힘차게 일어나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리는’(요한 5, 15) 사람으로 변혁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행복과 고통....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제 삶의 일부로 품고 일어나 모자를 벗습니다. 선물처럼 주어진 새로운 한 해, 천천히 걸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벳자타 못가에 계신 분들을 기억합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고, 예수님도 일하고 계십니다.(요한 5, 17)

김지선

성심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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