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 암이에요.”

“저요? 제 조직검사 결과 말씀하시는 거 맞죠?”

평소 ‘건강 체질’이라며 자신하던 저는 외국에서 몇 개월 지낸 후에 체중이 급격히 줄어드는 등의 몇 가지 증상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직검사를 했습니다. 조직검사를 하면서도 설마 암이리라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혼자서 씩씩하게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지요.

중증 환자 등록을 하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큰 병원을 이리저리 다니며 등록을 하고, 약을 사서 수녀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단 1초도 잠을 잘 수 없었던 깜깜한 밤을 지내고, 새벽 4시에 밖으로 나가 성모 동산을 돌고 또 돌았던 그 여름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머릿속이 텅 빈 채 그저 멍~하게 깨어 있었던 기억만이 생생합니다. MRI, CT 검사 등 추가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고, 수술, 항암 치료 계획 등을 하면서 조금씩 ‘암 환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꼭 건강해져야 해. 사람들이 ‘수녀님도 병에 걸리는구나’라고 생각하면 안 되잖아. 하느님이 낫게 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 줘야지.” 응원하려고 건넨 친구의 말에 며칠째 머무르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질병’과 ‘죄’, ‘벌’을 연결지어 생각하나 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라면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스트레스 관리를 잘못 했나? 적어도 내 몸 관리를 잘 못한 것은 내 잘못이지.’ 진단받은 후 며칠을 줄곧 ‘내 잘못 때문에 병이 생겼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일을 열심히 했나 봐. 쉬어 가면서 하지.” “이제는 수녀님 몸만 생각하세요.” 걱정과 함께 건네는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되돌리고 싶은 과거로 저를 데리고 갑니다. 그런데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건강 관리를 더 잘했을까요? 저를 돌보기 위해 더 무엇을 해야 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한참 원인 분석을 하다가 하느님께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나요? 왜 지금 이 시점에 이런 일이 생겼지요? 저 이제 정말 열정적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나눠 보려고 했는데요. 제가 어디에서부터 잘못한 건가요? 호되게 깨우침을 주고 싶으셔서 그러시는 건가요? 그러기에는 너무 가혹한데요?”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렇게 묻기를 며칠, 몇 주....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2)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서 울려 왔습니다. 아직도 예기치 못했던 큰 병이 무슨 이유로 저를 찾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운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분명해진 것은 예수님께서는 ‘원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저의 마음을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았다’라는 예수님의 목소리는 병에 걸린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제 마음을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건네시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억울하고 두렵고 막막한 제 마음을 깊이 이해해 주는 존재를 만난 것만으로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루카 18,38) 하며 치료를 받을 힘이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바빠서 찾지 못했던 고향을 찾았습니다. 코로나19로 사회의 어두움이 더 짙어지는데도 가을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해가 내리쬘 때면 고스란히 그 해를 받으며 바람 따라 흔들리는 벼를 바라보며 보며 다시 한번 듣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용기를 내어라!”

©️김지선
©️김지선

수도자가 암밍아웃을 합니다. 친구의 말처럼 ‘기도 많이 하는 수녀님도 큰 병에 걸리는구나’ 하며 실망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봐 더 용기를 내어 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우리 마음을 헤아리시는 예수님, 예수님과 함께 다시 웃어 봅니다. 예수님을 부르고, 묻고, 매달리며 열심히 기도했지만, 고통이 저를 비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부르짖는 내 기도를 들어 주시고 함께해 주시는 예수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더 깊이 배웠습니다.

매일 묵주기도를 하며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을 기억합니다. “하느님! 왜 이런 일이? 왜 저에게? 왜 지금?”이라고 묻고 계신 분들과 연대합니다. “하느님은 지금, 우리 마음 깊은 곳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 용기를 내요!”

 

김지선

성심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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