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복도를 지나다 성체 앞에서 기도하고 계신 수녀님의 모습에 잠시 멈추어 섰습니다. 1958년 용산 원효로에 있는 작은 수녀원에 입회해서 이제 90세를 바라보고 계신 수녀님은 성체 앞에서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실까? 기도방에서 나오시는 수녀님과의 대화를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김지선
©김지선

수녀님, 기도방에서 어떤 기도를 하셨어요?

요즘은 주로 감사기도를 많이 하게 돼요. 지난날의 모든 것에 대한 감사, 세상을 만들어 주신 주님께 감사,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온 것에 대한 감사,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기도를 해요. 젊었을 때 감사한 줄 모르고 지나간 것이 많거든요. 우리 시절에는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잘 안 하기도 했고요.

 

수녀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셔요?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기도를 하고, 오전에는 묵주기도를 해요. 코로나19가 시작된 후부터는 특별히 확진자들, 의료진들을 위해서, 사람들이 이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그리고 이 팬데믹 상황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묵주기도를 50단 정도 해요. 그리고서 핸드폰으로 사람들하고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좋은 글도 읽고, 성무일도도 하고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요. 오후에는 산책하면서 꽃들과 나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기도를 해요. 그리고 요즘은 올림픽 중계도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대통령 선거 관련 뉴스도 보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성체 앞에서 기도하고, 성서도 읽고요. 저녁에는 수녀님들하고 같이 기도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지내요.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수녀님, 행복하세요?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지. 먹을 것이 있고, 잠잘 곳이 있고, 입을 것이 있고.... 그래서 내가 지금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요.

 

혹시 힘든 것은 없으세요?

그런 것은 없어요.

 

귀가 잘 안 들리시잖아요?

들을 수 있는 것은 듣고, 안 들리는 것은 지나가고.... 꼭 필요한 것은 수녀님들이 알려주실 거로 생각하고 살아요. 그냥 하느님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살아요.

 

살아오시면서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으신지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어요. 그때마다 “하느님이 생명을 주셨으니, 고쳐 주세요”라고 기도했고 치유의 은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종신서원 수련을 외국으로 갔는데, 그때 불어를 써야 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런데 불어를 잘못하니까 ‘내가 왜 여기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그래서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운 시기가 은혜의 때인 것 같아요. 힘든 일을 겪은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수녀님, 제가 아플 때 기도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런데 저는 큰 병을 겪으면서 ‘죽음’이 큰 두려움으로 왔어요.

얼마 전에 친한 친구 수녀님이 돌아가셨을 때 저도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하지만 기도하면서 그 수녀님이 편안하게 하느님께로 돌아간 것이 복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지만, 수녀님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하느님께로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인생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삶은 지나가는 것이니까 앞을 보고 가면 돼요. 남을 비판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보고, 어려운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이웃과 함께 감사하면서 살아요.

 

공동체에서 함께 살면서도 수녀님과 이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고요하게, 천천히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수녀님의 리듬에 맞추어 마주 앉을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동체에 함께 사는 노인 수녀님들, 길에서 만나는 노인 분들의 보물 같은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과거 그분들이 하셨던 일들, 의미 있게 이루어 내신 일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오늘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집니다. 지나온 삶을 품고 보석처럼 빛나는 현재를 살고 계신 수녀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제 삶의 보물도 발견하게 됩니다. 저도 조금 느리게 걸어 보렵니다.

 

김지선

성심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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