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소식지 <뿔나팔>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

지난 9월 25일 의정부교구 본당사목회장과 교구 사도직 단체장들이 참여하는 교구평신도사도직협의회 대의원 연수가 온라인으로 열렸다. 백신이 보급되면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리라는 기대는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대면으로 준비된 연수도 줌(Zoom)으로 전환되었다.

이번 대의원 연수는 ‘공동합의성’이 중심 주제였다. 함께 걸어가는 교회를 지향하는 ‘공동합의성’은 2019년 교구 평협이 출범하면서 내건 비전이기도 하다. 마침 10월 17일 개막하는 세계 주교시노드 16차 정기총회도 ‘공동합의적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2년간 열릴 예정이어서 그동안 구호의 성격이 강했던 공동합의성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체험을 나눠 보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두 차례의 짧은 강의가 끝나고 본당에서 각자 체험하는 공동합의성에 대한 긍정, 부정의 체험에 관한 소그룹 나눔 시간을 가졌다. 대면 모임이 아니라 깊이 있는 체험 나눔은 어려웠지만 팬데믹으로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공동합의성을 말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혼란스러운 분위기도 감지되었다.

 

왜 지금 공동합의성을 말하나!

팬데믹으로 본당 활동의 많은 부분이 중단된 상황에서 공동합의성을 말한다는 것이 대부분 신자에게는 생뚱맞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최근 공개된 세계 주교시노드 16차 정기총회 준비 문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준비 문서는 이 주교대의원회의를 개최하게 된 상황을 상기시킵니다. 이에 해당하는 몇 가지를 언급하자면 지구적 차원의 팬데믹, 지역 및 국제 분쟁, 기후 변화, 이주, 다양한 형태의 불의, 인종 차별, 폭력, 박해, 인류 전체에서 진행되는 불평등 확대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상당수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자행한 성적 학대, 권력 남용, 양심의 남용으로 인해 ”미성년자와 취약한 이들이 겪는 고통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교회 생활과 세상살이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서 있음을 보게 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기존의 불평등을 더 폭발적으로 확대하였습니다. 동시에, 이 지구적 위기는 우리 모두가 같은 배를 타고 있으며 “한 사람의 문제가 모두의 문제”라는 우리의 감각을 되살려냈습니다.('모든 형제들', 32항)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맥락은 분명히 공동합의적 과정의 전개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 세계적 팬데믹은 실제 준비 과정의 어려움을 야기할 뿐 아니라, 많은 지역 교회가 인류 역사의 중요한 시기에 교회의 부흥을 촉진할 기회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많은 지역 교회들은 앞으로 택해야 할 길에 대한 다양한 질문에 직면해 있습니다."

팬데믹 사태가 기존에 없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지는 않았다. 경제적 풍요와 일상의 삶이 비정상의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충격을 받았지만, 여전히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는 확고하다. 변이 바이러스의 여파로 이 사태가 언제 수습될지, 위드 코로나로 방역 정책을 전환한다고 해도 여러 난제들을 고려할 때 당장 예전의 일상으로 복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사람들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고 무감각해져 간다. 이 지점에서 제16차 세계 주교시노드는 가톨릭교회가 세상과 교회 안팎에서 새로운 비전을 찾아가는 방법론으로 ‘공동합의성’을 제시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삶의 전방위 영역에서 많은 도전과 질문을 던진 코로나 사태의 출구를 모색하는 일은 교황을 비롯한 교황청 관리들이나 주교를 비롯한 소수 사제의 판단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16차 세계 주교시노드는 2021년 10월 17일에 개막해서 2023년까지 2년간 열린다. (이미지 출처 =&nbsp;synod.va)
16차 세계 주교시노드는 2021년 10월 17일에 개막해서 2023년까지 2년간 열린다. (이미지 출처 = synod.va)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과 이후의 주교시노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나갈 무렵인 1965년 9월 바오로 6세 교황의 자의교서인 '사도적 염려'로 신설된 세계 주교시노드는 가톨릭교회의 일상적인 공동합의적 구조를 위한 상설기구로 설립되었다.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의 재임 기간에도 주교 시노드는 계속됐지만, 주교 시노드의 형식을 취했을 뿐 로마의 중앙집권적 영향력은 오히려 강화되는 쪽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논란의 핵심은 주교단 안에서의 공동합의성 개념인 “단체성(collegiality)”을 둘러싼 논쟁이다. 이 개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의되었던 주제였고, 공의회 문헌 '주교 교령'에서도 명확히 규정되지 않다 보니 공의회 이후 대륙과 국가별 주교회의의 위상을 둘러싸고 숱한 논란이 되었다.

1998년 로마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시노드 특별총회의 사례를 보면 공동합의성을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설치된 주교시노드가 얼마나 공동합의성을 왜곡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아시아 주교들의 요청과는 무관하게 개최된 아시아 주교시노드는 거론될 내용을 다룬 의제 개요가 사전에 배포되면서부터 아시아 각국 주교회의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개최 몇 달 전 일본 주교들의 반응이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표명되었다. 일본 주교들은 특별총회의 의제와 내용, 진행방식 등에 대해 신랄한 비난과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의제 개요에 대해 답변하는 대신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핵심 요지는 교황청이 배포한 의제 개요 문서 안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이 25년간 성찰한 아시아 교회의 비전과 방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나아가 비아시아인인 바티칸 주교들에 의해 기획되고, 진행 방식이 결정되는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로마 중심적인 접근이 아니라 지역 주교들의 단체성에 그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동남아시아 주교회의의 반응도 강도는 달랐지만 대체적으로 의제 개요가 아시아 교회의 공동 비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같은 문제 제기였고, 인도네시아 교회는 아시아 교회의 자치권과 진정한 토착화 증진을 위해 ‘동아시아 총주교좌’의 연구 기구 설립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역 주교들의 목소리는 주교시노드 본회의에서도 계속 거론되었지만 후속 교황 권고로 나온 문헌 '아시아 교회'는 의제 개요의 내용과 구성을 거의 그대로 따르면서 공동합의성의 중요 요소라 할 수 있는 ‘경청’과 ‘대화’에서부터 진전을 보지 못한 사례로 남았다.

아시아 주교시노드 특별총회는 주교시노드가 지역 주교회의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는 하향식 회의 구조체로 변질됐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는데, 2001년 열린 제10차 세계 주교시노드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추기경으로서 시노드 책임 보고관으로 참석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처럼 로마에서 준비하고 결정된 사항들을 승인하는 주교시노드의 모습을 경험하면서 2013년 교황이 된 뒤, 주교시노드 절차의 개혁을 교회개혁에서 가장 우선 순위에 놓았다. 교회 개혁의 한 방향인 분권화를 위해 주교시노드가 더 큰 역할을 하고, 반영되는 의견도 ‘주교’에서 ‘하느님 백성’ 모두에 이르기까지 더 확대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주교시노드가 교황의 권위 아래 있는 주교들의 모임으로 진행되어 왔다면, 교회는 공동합의성이 전체 하느님 백성을 위한 길임을 점점 더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교대의원회의는 더 이상 주교들의 모임이 아니라 모든 신자를 위한 여정이며, 이 여정에서 모든 지역 교회는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제16차 세계 주교시노드 편람에서 인용)

 

성령의 담대함 안에서 함께 걸어가기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권고 '복음의 기쁨'은 교회 구성원들에게 ‘사목적 회심’을 요청했고, 2015년 '찬미받으소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공동의 집을 회복하기 위한 ‘생태적 회심’을 요청했다. 2018년 주교대의원회의에 관한 교황령 '주교들의 친교'와 국제신학위원회 문서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의 공동합의성'은 이제 공동합의적 교회로의 회심을 요청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열렸던 아마존 시노드(2019)가 이러한 방법론에 비교적 부합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달 개막해서 내년 4월까지 진행할 제16차 세계 주교시노드의 교구와 본당 차원의 의견수렴(경청) 과정을 우리는 어떻게 채워 나갈 것인가? 그동안 한국 교회도 여러 교구별 시노드를 경험하면서 형식 면에서는 공동합의적 여정을 훈련한 셈이지만, 시노드 과정의 의견 수렴이 실천과 쇄신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시노드 무용론’이 팽배한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교구와 본당 차원의 의견수렴을 위해 절차를 세우고 과정에 충실하느라 본질을 놓치지 말고 하느님 백성으로 하여금 공동합의적 친교를 어떻게 체험하게 할 것인가에 집중하면서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교회의 비전을 꿈꿔야 할 것이다. 함께 걸어가는 교회의 공동합의적 지평 안에서만 우리는 참으로 우리의 사목을 혁신하고, 게토화된 교회를 넘어 오늘의 세계 안에서 교회의 사명에 부합하도록 쇄신할 수 있을 것이다.

"주교대의원회의 목적은 더 많은 문서를 만드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우리가 부름받은 교회에 대해 꿈꾸고, 사람들의 희망을 꽃피우고, 신뢰를 자극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새롭고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에게서 배우고, 다리를 건설하도록 영감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제16차 세계 주교시노드 편람에서 인용)

 

경동현(안드레아)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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