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경청 모임에 가다

가톨릭교회는 시노드 여정에 있다. 시노드는 지난해 10월 개막해, 지금은 교구 등 개별 교회와 교회 기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교회 구성원의 의견을 모으는 경청 단계를 거치고 있다.

교구 가운데 교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본당은 물론 각 단체, 지역 시민사회 등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경청 모임’을 여는 곳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1월 23일 ‘세계주교시노드 본당 경청 과정을 시작하며’라는 서한에서 이번 시노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자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가 모여지는 교구 단계, 그중에서도 본당에서 이루어지는 경청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굳이 어려운 때에 본당에서 이런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시노드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며, “삶의 현장에서 신앙의 길을 걷는 형제자매님들의 목소리가 본당은 물론 의정부교구와 한국 교회,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함께 걸어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경청 모임 참여를 독려했다.

이에 따라 의정부교구는 우선 지난 1월 각 본당에서 경청 모임을 이끌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경청 모임의 주제와 방식, 내용 등에 관한 동반자 연수를 진행했다.

경청 모임은 본당 외의 사목 분야에서 만나는 이들과도 진행 중인데, 구체적인 대상은 교회의 변방, 교회를 떠난 이들, 빈곤과 소외를 겪는 이들 이주민과 난민, 교구 평신도 사도직 단체와 교구 관내에서 소임을 수행하는 수도자, 이웃종교와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5월 13일까지 경청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를 기록한 보고서를 모으고, 28일 교구 차원의 경청모임을 진행한 다음 최종적으로 의정부교구의 시노드 보고서를 완성할 예정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여러 경청 모임 가운데 정의평화위원회, 본당 민족화해분과장과 위원, 이주민과 난민 관련 활동가 모임에 참여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어떤 이야기가 오고가는지 살펴봤다.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매달 뿔나팔 미사를 봉헌하고, 격월로 '뿔나팔' 소식지도 발행한다. 코로나 이전의 미사 모습. (사진 제공 =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매달 뿔나팔 미사를 봉헌하고, 격월로 '뿔나팔' 소식지도 발행한다. 코로나 이전의 미사 모습. (사진 제공 =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3월 5일 ‘의정부교구 청년센터 에피파니아’에 경동현 씨(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 교구 시노달리타스팀 기획분과장)의 초대로, 의정부 정평위가 매달 봉헌하는 뿔나팔 미사 또는 사회교리학교에 참가한 적 있는 5명이 모였다.

모임은 경동현 씨의 진행 하에 자기소개, ‘경청과 대화를 위한 태도’ 읽기, 시작 기도, 성경 말씀 묵상으로 이어지며 ‘들을 준비’를 갖춘다. ‘경청과 대화를 위한 태도’에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열린 태도로 임할 것, 다른 사람의 나눔에 토를 달거나 비판하지 말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어 본격적으로 ‘교회와 사회 안에서의 대화’를 주제로, ‘시대를 성찰하는 데 있어 정평위가 중요하게 고려할 시급한 사안은?’, ‘정평위는 교구 관할 구역에 사는 가난한 이들과 어떻게 만나고, 그들과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나?’라는 묵상 주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눴다.

정평위 활동을 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특히 ‘정평위에서 다루는 사안이 신자들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의견은 정평위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했다.

“기후변화 대응, 양극화 문제, 성평등 등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모두 심각하고, 이 문제들은 생명보다 물질의 가치가 높아진 것과 관련이 있다. 물질과 돈, 경쟁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가치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일상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외치는 정의와 평화라고 할까? (정평위가) 외치는 메시지가 맞는 말이지만, 삶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얀마, 우크라이나 이슈가 중요하지만, 이런 큰일에만 움직이는 것 같다. 미얀마 사태에 귀가 열리려면 그 이전에 징검다리들 놓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좀 더 와닿는 방식으로 정의와 평화를 이야기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시급하다.”

“정평위가 주로 사회 이슈를 쫓으며 활동하다 보니 일상에서의 정의평화로 이어지지 못한 것 같다. 신자들과 함께 가기 위해 사회교리학교를 열었고 평소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더는 확장되지 않았다. 활동하는 사람들은 이슈를 따라가기도 버거운 현실이라,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할 지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못했다. 어떤 사인에 연대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신자들과 보조를 맞추는 게 중요한 것 같다.”

“70-80년대에는 교회가 사회운동을 선도했던 시기다. 그러나 지금은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현상을 교회의 이념으로 끌고 가기 어렵다. 정평위는 기후위기같이 혼자하기 힘든 사안에 대해 앞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이끌어 주면 좋겠다. 요즘엔 활동 소식이 잘 들리지 않아 안타깝다.”

정의평화위원회는 "사회교리의 시선으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과 교회를 일군다"는 비전으로 활동한다. (이미지 제공 =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회 현안뿐 아니라 오히려 성직주의, 성폭력, 젠더 문제 등 교회 안의 문제에 정평위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도 강했다.

“정평위가 사회와의 대화만이 아니라 교회 자정 작용에도 힘쓰면 좋겠다. 권한이 사제에게 집중된 문제, 예를 들어 주임신부가 바뀌면 성당의 체계나 운영 방식도 완전히 바뀌어서 봉사자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봉사라는 명목 아래 여성을 학대한다는 느낌이 든 적도 있다. 교회가 사회조직도 아닌데 상명하달 방식으로 단체를 운영하는 것 같다. 밑의 목소리가 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신부와 사목회를 중심으로 한 결정 사항이 밑으로 내려오는 방식이 문제다.”

“2018년 교회 내 성폭력 문제가 공개된 뒤, 교구마다 성폭력 신고 기구를 만들었는데,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프랑스 등 유럽 교회는 외부 인사 중심으로 꾸려진 진상조사팀이 보고서를 냈다. 성폭력 문제는 교회 안에서 이슈화되지 못하는 것 같아, 이것을 어떻게 넘어설지 고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치부가 될 수도 있는 것을 드러낸다. 한국 교회는 전혀 그렇지 않다. 피해 신고가 있다면 통계를 공개하고, 교회 안에서 성폭력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신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교회는 이미지에 생채기가 될 만한 일로 화제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갈등을 드러내야 변화가 시작된다. 한국 교회는 잘못된 것을 빨리 인정하고 사죄하고 변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더딘 것 같다. 교회 안에서 잘못을 지적하면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신부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면 왜 유별나게 구냐는 식이다. 교회에서는 강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말로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몇 차례 다른 의견을 내면 (무리에) 끼워 주지 않는 것이 암묵적으로 통한다. 테두리 안에 예쁜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

시노드 여정 가운데 있는 가톨릭교회는, 지금 개별 교회와 교회 기구들이 교회 구성원의 의견을 모으는 경청 단계를 거치고 있다. 의정부교구는 교회 구성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경청 모임'을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Pixabay)

오랜 신앙생활에도 힘들 때 교회에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진솔한 고백도 이어졌다. 또 정평위 활동을 통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고맙다는 의견, 경청 모임 자체에 대한 솔직한 소회도 들을 수 있었다.

“교회가 누구의 소리를 가장 잘 듣고 있을까? 본당에 가난하고 어렵고 아픈 사람이 많지만, 스스로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혼자 하느님에게 힘들고 아프다고 기도할 수 있지만, 몇 십년간 본당 생활을 했는데도, 도와 달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교회가 그런 말을 듣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발달장애인을 만나면서 그동안 그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돕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그냥 도우면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정평위 유튜브 통해 어려운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고마웠다. 가장 차별받고,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의 입장을 들려주는 활동을 더 많이 하면 좋겠다.”

“미사만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신자가 많다. 성당에서 (경청 모임을) 바쁘게 준비하면서 ‘몇 사람이나 참여할까?, 속도를 내야 할까?, 천천히 가야 할까?’ 등 고민이 많다. 몇몇이 열심히 하지만 일반 신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가 무엇을 하라고 요청할 때, 그 교회는 누구일까? 신부님? 사목위원? 신자? (교회가 누구인지 혼란스럽다.)”

“신자 의견을 듣는 경청 과정을 통해 교회는 새로운 활로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난 연말 교구와 본당 경청 단계에 대해 사제들을 대상으로 설명했고, 본당과 여러 사목 분야에서 동반자 역할을 할 분들과 연수회 과정도 마쳤다. 경청 모임을 통해 앞으로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영감을 받는 사람도 있겠지만, 귀찮은 숙제처럼 여기는 신자들도 있을 거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극받는 이들이 많길 바란다.”

다음은 ‘식별’ 순서다. 참여자들은 ‘교회와 사회 안에서 대화하며 함께 걸어가는 교회를 위해 나와 우리 공동체가 무엇을 하길 바라는지’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마무리했다.

“암울했던 시대, 빛이 되었던 교회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건강한 교회로 있어만 달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는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명동에 (노숙인을 위한) 밥집이 생긴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의지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교회가 아니었으면 사회에 관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매일 아침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는 것은 교회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아니었으면 내 가족만 생각하고 안일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경청 모임)은 좀 더 나은 교회를 바라고,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이 들지 않더라도 곁의 좋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힘을 내면 어떨까.”

“시노달리타스는 성찰을 위한 좋은 방법이다. 이 기회를 잘 잡아야 주신 선물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정평위뿐 아니라 나 개인도 성찰해야 한다.”

“교회에서 봉사하기 전에는 성당이 신부님하고 사무실로만 운영되는 줄 알았다. 봉사자들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미사만 드릴 때는 몰랐던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 들고, 기쁘고 행복하다. 더 많이 기도하고, 성경도 공부하고, 같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에 더 배려한다. 앞으로 봉사자 발굴에 힘쓰고, 이 기쁨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본당에서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먼저 인사하고 다가가야겠다.”

이날 참여자들의 목소리는 10주년을 맞은 교구 정평위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 듣기 불편하더라도 새겨야 할 말이었다. 또 격려와 감사도 있었다.

의정부교구 구성원들은 시노드 경청모임을 통해 정평위 외 다른 사목, 활동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이 모든 의견은  최종 교구 보고서에 담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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