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은 ‘선전’이라고 하세요? ‘광고’라고 하세요? 우리 아빠는 광고를 꼭 선전이라고 하시던데. 그럼 수녀님은 ‘극장’이라고 하세요? 아님 ‘영화관’이라고 하세요? 옛날에는 다 극장이라고 했다면서요? 수녀님도 계란 노른자 안 드세요? 우리 엄마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셨다고 노른자는 안 드세요.”

올해 초 졸업한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발랄한 대학생들 여러 명이 모여 마스크 너머로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 안에 꼭꼭 숨겨놨던 젊은 마음이 꿈틀대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을 만나면 꼭 하는 공식 질문을 던져봅니다.

“요즘 너희들은 만나면 무슨 이야기 해? 뭐에 관심 있어?”

“그런 거 없는데.... 아! 수녀님 MBTI는 뭐예요? 제가 맞춰볼까요? 수녀님은.... J! J 맞죠? 뭐든 꼼꼼하게 계획하시니까 J! 그런데 종종 꼭 안 해도 된다고 하시니까 게으른 J일 거예요!”

최근 성격유형 검사인 MBTI에서 이야기하는 16가지 성격유형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성격을 알파벳 4개를 조합하여 이야기합니다. 대면으로 만나기 힘든 상황과 개인주의 확산과 맞물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현대 사회에서 빠르고 효율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MBTI가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확신에 차서 이야기해 준 제 성격 유형 알파벳에 머물러 봅니다. 나에 대해 잘 알고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을 만나는 시작과 맞물리는 일이니까요.

2020년에는 우리가 모두 함께 겪었듯, 계획해 왔던 것 중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가끔은 무기력함과 우울함을 겪었습니다.

끝이 아닌 새로운 기회라고 보면, 하느님이 수녀님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지 알아들을 정말 좋은 ‘기회’예요. 그것을 알아듣기 시작하면 지난 8개월간의 시간은 다시 이어질 거예요. (이미지 출처 = pixabay)
끝이 아닌 새로운 기회라고 보면, 하느님이 수녀님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지 알아들을 정말 좋은 ‘기회’예요. 그것을 알아듣기 시작하면 지난 8개월간의 시간은 다시 이어질 거예요. (이미지 출처 = pixabay)

올해를 시작하며, 2021년을 의욕적으로 지내보리라 마음먹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했습니다. 일을 진행하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체크하고 대안을 확인하여 꼼꼼히 준비했습니다. 더 이상의 준비는 없다며 저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어느덧 8개월이 지났고 상상치 못한 이유로 프로젝트는 중단되었습니다.

조용히 앉아 지난 시간을 복기해 봅니다. 그럴 리가 없지만 어디에 잘못 놓은 돌이 있었던가. 누구의 실수인가. 복기가 거듭될수록 제 마음은 어수선해집니다. 계획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던 것일까에 집중하다 보니 불면의 밤은 늘어가고 심지어 멈추지 않는 눈물도 납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모든 과정을 뒤돌아보며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지 말이지요. ‘계획의 어디가 잘못되었는가’가 아니라 ‘이 모든 계획의 시작점’이 어디였는지를 찾았어야 했어요.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과 고려했던 변수들 어디에도 ‘사람’에 대한 것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계획을 이행하는 과정 안에서 저는 이 계획을 세웠던 목적을 다 잊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현실화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그저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 좋겠다’는 단순한 목적이었는데 말이죠. 단순하고 깊은 하느님의 계획을 얕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의 능력일까요?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을 멈췄어요. 이제 다 끝났습니다.”

“‘끝’이라고 표현하지 마세요. 이것을 ‘새로운 기회’라고 볼 때 좀 더 넓게 생각할 수 있어요. 하느님이 정말 뭘 원하고 계시는지, 수녀님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지 알아들을 정말 좋은 ‘기회’예요. 그것을 알아듣기 시작하면 지난 8개월간의 시간은 다시 이어질 거예요. 그리고 그 프로젝트는 하느님의 계획대로 진행되겠죠?”

예측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계획하더라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사회적 상황 등에 모든 것이 중단되기도 합니다.

계획할 수 없다고, 계획한 것이 뒤틀렸다고 저처럼 불면의 밤을 보내지 마세요.

조금만 멈추고 나의 계획 말고 하느님의 계획에 눈과 귀를 모아보세요.

나의 계획안에서 불가능했던 일들,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던 일들이 하느님의 계획 아래에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일이 일어나는 때, 방식, 결과 모두 하느님만 알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이사야 55,8-9)

이지현

성심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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