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더운 여름 건강히 지내고 계시는지요?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벌써 2021년도 반을 넘어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오래간만에 드리는 연락의 시작이 매번 그러듯 또 훌쩍 지나간 시간 타령이네요.

그때마다 핀잔을 들었음에도 오늘도 또 쓴 것을 보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나 봅니다.

심지어 말입니다. 최근 가까이 있는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아 안경을 썼다 벗었다, 물건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며 겨우 읽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나이가 드나 봐요. 이게 왜 잘 안 보이지? 돋보기를 써야 하나 봐요!”

허둥대며 이야기하는 제게 공동체 수녀님이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받아들일 나이도 되었지요! 정상입니다!”

 

시간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저의 몸도 다음 자리로 옮겨가고 있는데 이 또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나 봅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변화도 함께 간다는 뜻이지요.

이는 다르게 말하면 언젠가 말씀하셨던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이겠지요?

 

사람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겪으며 다음 자리로 옮겨간다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고민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무릇, 어른이라면....”이라는 명제를 들고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나....” 를 고민해 봤다고나 할까요.

당시 저의 결론은 “겸손과 인내를 몸으로 사는 관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는 자리에 있다가 보니 그들의 요청에 관대하게 응답하고 끝까지 함께 있어 주며 타성에 머물지 않고 그들에게서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얼마 전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때입니다. 한창 이야기 도중 그 아이가 갑자기 두 손을 휘저으며 다급히 외쳤습니다.

“수녀님 인제 그만. 완전 잔소리에요!”

“미안, 너무 심했어?”

“네!!!”

내심 답답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시작했던 조언이 무한 반복되었던 모양입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나도 흔히 불리는 “꼰대”가 된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대화를 복기해 보며 지금 시대를 사는 청소년에게 제 삶의 기준으로 이야기한 것은 아닌지 반성도 했습니다.

 

©️이지현

작년 함께 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어른 수녀님이 내주신 숙제가 떠올랐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새로운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저의 고민에 심각한 표정으로 내주셨던 숙제였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경험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지혜롭게 되는 것이지.

하지만 그만큼 머리와 마음이 돌처럼 딱딱해지기도 해.

마음이 유연해지지 못하고 생각의 탄력성이 없어진다고 할까?

내가 경험한 것, 내가 살아온 방식만이 옳다고 고집한다면 마음과 머리 모두 딱딱해져 버리게 되지.

'난 늙어버렸어, 난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해'라고 주저앉지 말고

누군가를 만날 때, 새로운 상황을 마주할 때 난 돌처럼 굳어버린 것은 아닌지, 유연하고 탄력 있는 사고와 대처를 하고 있는지 의식해 봐.

그렇다면 넌 평생 젊은이로 살게 될 거야."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와 함께 흘러온 시간에서 선물로 얻은 지혜와 사랑 그리고 은총을 나누며 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딱딱해져 버린 마음과 머리를 통해 나누어질 때 “어른답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이쯤에서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알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어른이 되기 싫다고 외칠 때마다 한쪽 팔을 꼬집으시며 “어이구 아직도! 원한다면 영원히 애로 살아라!”라 하셨지요.

우리 모두 각자 다음 자리로 반드시 이동해야만 하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두려움 때문에 미루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굉장히 고집스럽고 종종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저를 언제나 온화하게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것이 선생님의 온유하고 관대한 성품 때문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배워야 할 것은 선생님 삶의 유연성과 사고의 탄력성이었네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노화되는 신체를 받아들이면서 생각을 끊임없이 젊게 유지하는 것이니 참으로 피곤한 일인 것 같습니다. 불안과 희망의 균형을 맞추며 젊은이로 사는 것보다 더 피곤할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선생님 옆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으면 다른 쪽 팔이 꼬집혔겠지요?

 

혹여 제가 딱딱해진 머리와 마음을 뽐내기라도 할라 치면 꼭 알려주세요. 팔을 꼬집으시는 것으로 못 알아들으면 등짝이라도 한번 쳐 주십시오.

저도 선생님처럼 꽤 멋진 어른이 되어 보고 싶으니까요.

 

다음에는 흘러가는 시간 타령 빼고 안부 전하겠습니다.

 

이 힘든 시기가 얼른 지나고 모두의 몸과 마음이 회복하는 그날이 오길 바라며

이지현 드림.

 

이지현

성심수녀회 수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