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입니다.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해 보려 하지만, 모든 과정에 대한 여러 경우의 수를 확인하고 대비해야 하는 삶입니다.

사실 이런 내용은 이 상황이 시작되고 장기화에 대한 전망이 대두될 때나 투덜거리듯 나눠 왔던 이야기입니다. 이제 이것은 삶의 일부분이 되었지요.

 

뉴스를 보니 우리만 겪고 있는 문제는 아니네요. 심지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 재해와 정치적인 일들 그리고 폭력사태들까지 말입니다.

방역조치 4단계가 2주씩 연장되면서 저의 무기력도 장기화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도 저와 비슷하신지요?

이 4단계라는 단어를 미래의 후손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우리의 책임이 있기에 각자가 좀 더 의식하고 해야 하는 일이 있긴 합니다만, 개개인의 책임으로만 일축하기엔 불가항력인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직면한 기후변화나 정치, 팬더믹 상황에서 우리가 책임지고 나누어서 해야 할 일들에 관한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저는 최근 무기력함을 꽤 길게 겪으면서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고민이 꼬리의 꼬리를 물게 되면 생각의 늪에 빠지고 이는 무기력 악순환의 시작이 되겠지만 말이지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무엇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하루하루가 매일 똑같고 새로운 것 없는 마음이 저를 점점 더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이였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여 재밌는 일들만 가득했던 그 시절 말이지요. 모든 것이 새로와서였는지 하루하루가 재밌고 다음 날이 기대되었어요.

새로운 책을 함께 읽거나 악기를 새롭게 배우는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에서 그들의 생명력을 느껴 보신 적 있나요? 생명력의 시작점은 “호기심”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잃어버린 그것이지요.

 

물론 그 호기심은 종종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거나 다치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건강한 호기심은 우리 삶에 활력과 생명력을 줍니다.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우리 일상에서 평소와 다른 호기심을 좀 가져 보자는 것이지요.

 

©️이지현
©️이지현

“어디 좋은 곳에 다녀왔나 보다?”

“아니요. 엊그제 학교에 서류 내고 수녀님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찍은 사진이에요. 역시 우리 학교는 너무 예쁜 것 같아요.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찾아가고 싶은데 지금은 마음대로 들어갈 수가 없으니 사진으로 찍어왔어요.”

 

10년 넘게 사는 이곳 사진이라고?

그러고 보니 매일 머릿속은 해야 할 일로 가득 차 있고 눈은 땅만 보고 걸었으며, 마음은 늘 도착해야 할 곳에 미리 가 있었으니 그런 풍경을 눈에 담지 못했던 것이 당연합니다.

늘 지내는 곳이니 호기심을 가져 볼 만한 생각도 여유도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요.

 

주변을 한번 호기심을 가지고 돌아봅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도

매일 만나는 풍경도

늘 거기에 있는 하늘도 한번 올려다봅니다.

 

나를 둘러싼 상황과 환경은 변하지 않겠지만

이 호기심이 저를 무기력함의 늪에서, 우리를 팬데믹 일상의 피로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길 바라봅니다.

마치 이 세상에 처음 도착하여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을, 그 처음처럼 말입니다.

 

이지현

성심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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