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유치원 옆에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산 목련 나무 여러 그루가 있었습니다. 담장을 사이에 둔 옆집 마당에 심긴 나무였지만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창밖을 가득 채우고 하루와 계절의 시간을 보여 주는 친구였습니다. 봄에 미세먼지가 없는 날은 담장을 넘어 놀이터까지 뻗어 나온 높은 나무 아래에 누워 가득한 꽃잎을 올려다보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야외 활동을 거의 못 나간 지 일년이 넘은 아이들에게 목련은 그 자체가 봄이었습니다. 그림으로는 목련이 주는 감탄을 다 담을 수 없어서 손으로, 몸 동작으로, 시로 표현해 보기도 했습니다. 목련을 주인공으로 봄 축제도 기획해 보았습니다. 높이 피었다가 툭 떨어지는 목련은 땅에 낮게 핀 작은 꽃들의 아름다움도 찾아보게 했습니다. ‘꽃을 꺾지 마세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새로 심은 꽃씨에서 아주 작은 새싹이 씨앗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과정을 친구들과 함께 발견하는 기쁨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교실 창밖에서 큰 소리가 났습니다. 수업 중 놀라서 창가로 뛰어나간 아이들이 발견한 것은 그 커다란 목련 나무가 한 그루씩 쓰러지는 모습이었습니다. 또 다른 반은 마침 그 시간에 블라인드를 내리고 빛과 색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이 한창이었습니다. 실험을 마치고 블라인드를 열자 창밖의 나무가 사라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고 이미 땅에 쓰러져 토막이 나고 있는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우선 아이들에게 계속 보게 할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라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창가에서 떨어지도록 불러 모았습니다. 

재개발을 위한 공사의 시작으로 우선 오래되고 무성한 나무부터 베어낸 것이었습니다. ‘자기 땅’의 나무를 베어 내겠다고 이웃에게 고지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존재가 벗이고 이웃이 되어 주다가 갑자기 눈 앞에서 죽음을 맞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함께 교육 연구를 하는 선생님들과 화상으로 회의를 하며 이 소식을 듣는 동안 모니터를 통해서도 선생님들 어깨 너머 텅 빈 창밖의 낯선 풍경이 보였습니다. 사라지고 나서 그 존재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더욱 깨달으며 안타깝고 슬펐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었다면, 아이들이 추억으로 담아 둘 수 있는 시간이 조금만 더 허락됐다면 그래도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선생님들도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았지만 이 일을 교육자로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생각을 모으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우선 아이들의 마음을 잘 살펴 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만 4살 아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슬픔을 표현했습니다. 

“하늘에서 나무가 떨어졌어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음이 들었어요.”

“슬픈 마음이었어요. 친하게 지냈던 나무가 쓰러졌어요.”

“나무가 너무 빨리 쓰러졌어요. 저기 여기 밑에 쓰러져서 다시는 못 만들겠어요.”

“나무가 함께 있었는데 4월까지밖에 없잖아요. 목련이 없어져서 마음이 찢어지거나 뭔가 아픈 느낌이 들어요. 목련이 쓰러져서.”

한 살 더 형님 반의 아이들은 애도의 글을 썼습니다. 

“목련아. 너는 모두에게 사랑  받았어. 너를 생각할 때면 기분이 좋아져. 넌 정말 멋진 나무였어. / 목련아. 너의 예뻤던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행복했어. / 너는 모두에게 사랑 받았었어. 너의 그림을 보며 널 생각할게. / 사랑해. 그동안 니가 있어서 좋았어. / 널 영원히 기억할게.”

“니가 져서 슬퍼. 그치만 너가 힘을 내면 다시 자랄 수 있을 거야. / 힘을 내. 넌 비 올 때 참새가 나뭇잎으로 참새가 숨을 수 있도록 숨겨 줄 수 있는 목련이야. 사랑해.”

“목련 나무야. 너가 죽어 속상하지. / 내가 혼내 줄까? 아니면 엄마한테 이를까? / 결정하는 건 너가 정해.”

눈 앞에서 나무를 자르고 실어 가던 아저씨들이 나쁜 사람 같아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하루의 임금을 받고 나무를 벤 아저씨들이 아니라 이를 결정한 (눈에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고 물어야 할 건 그 선택이 근거한 가치였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이 앞으로 아이들이 어떤 가치를 중시하고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마음 아픈 이 시간이 오히려 목련 나무가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주고 간 소중한 교육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선생님들이 노력해 보기로 했습니다. 애도의 글에 이어 아이들은 옆집에서 새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벤 사실에 대해 ‘왜 그 선택을 했을지’,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없을지’ 자신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A유아: 나는 목련 나무를 베면 안 된다고 생각해. 작게 집을 짓고 나무를 피해서 마당을 만들면 되잖아.

B유아: 그런데 집이 작으면 여러 명이 이사 오는데 다 살 수가 없잖아.

A유아: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목련 나무랑 다른 나무를 피해서 좀 작게 좀 적당하게 해서 집을 짓는단 말이야!

D유아: 있잖아, 목련 나무보다 사람들이 사는 것이 더 중요해.

C유아: 목련 나무는 생명이야. 그리고 사람들도 생명이지만 (목련도) 이미 있었던 생명인데 다른 생명들이 살아가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바꾸니? 그리고 또 목련 나무가 입이 있는 게 아니잖아. 허락을 받았니? 둘 다 생명관계인데 왜 사람들이 사는 생명이 더 중요하다 하는 거야? 모두가 똑같이 중요해!

사람이 살고 사용하기 위한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 그 땅에 오래도록 살고 있던 큰 나무를 베어 내는 결정은 선택의 문제일 수 있음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오래 걸리고 수고스럽더라도 나무를 옮겨 심을 수 있다는 생각은 더 어린 유아들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많은 사람들이 땅을 파가지구요, 아주 어어어엄청 많은 사람들이 목련 나무를 다른 데에다가 심으면 되잖아요.”, “맞아요. 나무를 그냥 다른 데다 놓으면 되잖아요.” “그럼 다른 사람들이 다 힘을 합쳐야겠다!”

‘어어어엄청 많은’ 어른이 이 결정을 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돈’입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생각처럼 나무를 살리는 결정을 한 건축 사례들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선생님과 살펴보고 힘이 난 아이들은 우선 ‘우리의’ 목련 나무를 기리는 그림과 시를 지어 목련을 베어낸 자기 곁에 가져다 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목련과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사진들과 자신들의 그림들을 다시 모아 함께 보기로 했습니다. 

한 유아의 목련 나무 추모 그림.&nbsp;(이미지 출처 = 담임 교사의 수업 기록)<br>
한 유아의 목련 나무 추모 그림. (이미지 출처 = 담임 교사의 수업 기록)
한 유아의 목련 나무 추모 시. (이미지 출처 = 담임 교사의 수업 기록)
한 유아의 목련 나무 추모 시. (이미지 출처 = 담임 교사의 수업 기록)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종들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생명의 무게를 저울질할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아이들이 이렇게 잊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 그 사실을 잊어버린 어른들이 할 일은 기억해 내는 것이겠습니다. 그러면 인간 외의 생명은 인간 중심의 세상을 유지 발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이는 우리의 눈에 세상이 조금씩 달라 보일지도 모릅니다. 

'생물 다양성', 프레데릭 백.&nbsp;(이미지 출처 = 프랑스 레 뮤호 시 홈페이지)<br>
'생물 다양성', 프레데릭 백. (이미지 출처 = 프랑스 레 뮤호 시 홈페이지)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일도 조금 다른 양상으로 벌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논란이 일어 다행입니다.

“산림청은 2050년까지 30년 이상 된 늙은 나무를 베어내고 어린 나무 30억 그루를 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산림청은 이를 통해 총 3400만 톤의 온실가스를 줄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산림의 탄소흡수 능력을 키우자는 취지다. 하지만 환경단체 등에서 산림의 생태적 기능은 보지 않고 탄소중립 수단으로만 여긴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산림청 ‘대규모 벌채·식목’ 논의할 민관협의체 구성’ 일부, <한겨레>, 2021.5.20)

 

하영유(소화데레사)
성심수녀회 수녀
서강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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