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머리 좀 깎아 줄 수 있어?“

한동안 엄마표 이발을 거부하던 다울이가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며칠 전에 저 혼자 머리를 자른다고 하다가 정수리 쪽 윗머리를 싹둑싹둑 밤송이처럼 잘라 놓고는 '괜찮아. 별거 아니야' 하며 너스레를 떨더니 결국 이건 좀 아니구나 싶었나 보다. 나는 돌아온 이발 손님이 무척 반가웠지만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최대한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저녁 준비도 해야 하고 바쁜데.... 안방에 걷어 놓은 빨래 있거든? 그거 다 개면 깎아 줄 수 있을 것도 같네."

"응, 알았어. 지금 곧장 갤게!"

다울이는 마음이 급한지 서둘러 빨리 개키기에 돌입했다. 태도를 보니 이발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로 간절한 듯했다. 이렇게 본인이 간절히 원할 때 못 이기듯이 청을 들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가 먼저 재촉하면 엄마 때문에 머리가 이게 뭐냐며 울고 불고 난리를 칠 가능성이 있다. 이건 수 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깨친 노하우. 한때는 나도 아이들이 머리 깎을 때가 되면 회유(머리 깎으면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 협박(머리 안 깎으면 쫓겨날 줄 알아!), 원망(너희들 심란한 머리 때문에 동네 사람들한테 엄마가 욕먹고 있다!) 같은 걸로 밀어부쳤는데, 언제부터인가 단을 높였다. 목 마른 사람이 물 한 잔만 달라고 납작 엎드릴 때까지 기다려야 '물이 뜨겁네 차갑네' 하는 불평을 안 들을 수 있다. 아니, 결국 불평을 듣더라도 "네가 먼저 잘라 달라 했잖아"라고 떳떳하게 대응할 수 있다.

마침내 다울이 머리를 자르려고 이발기를 충전시키고 있는데 뜻밖에 다랑이도 걸려들었다. 자기 머리도 잘라 달란다. 단발에 가깝게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다니더니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나 보다.(하긴, 보는 나도 엄청 심란했단다!) 나는 이번에도 역시 반가운 내색은 않고 덤덤하게 응답했다.

"그래? 그럼 그러든가."

그리하여 다울이와 다랑이까지 손님 두 분의 이발 작업에 들어갔다. 가위로 하는 것보다야 이발기가 훨씬 쉽다. 원하는 길이에 맞게 날 위에 부품을 끼우고 전체적으로 윙윙 밀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발기를 머리에 댈 때 느껴지는 진동, 이발기가 작동할 때 나는 소음, 그런 것들 때문에 아이들은 괴로운 모양이다. 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잔뜩 움츠린 어깨를 어쩌질 못한다. 때때로 머리카락이 이발기에 씹히는 사고가 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더욱 움츠린 자세로 나를 흘겨보는 눈길을 마주쳐야 한다. 많이 아픈 눈치인데, 그럴 때 나는 왜 그렇게 웃음이 나는지.... 다나도 옆에서 나를 따라 웃다가 괜히 나 대신 원망을 듣는다.(다나야 미안. ^^;)

한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다울 아빠가 총각 때부터 써 온 이발기라 이게 좀 써금써금하다. 윙 하고 힘차게 돌아가는가 싶다가 조금 있으면 힘이 딸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다울이까지는 어찌어찌 깎았는데 다랑이 차례가 되어 거의 맛이 갔다. '에잇,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지난해 사촌동생이 선물로 보내 준 이발기를 이번 기회에 꺼냈다. 최신식이라 그동안 써 왔던 이발기와는 다른 기능이 많은 것 같은데 자세히 읽어 볼 겨를이 없어서 무작정 작동을 시켰다. 우와, 그랬더니 정말 차원이 다르다. 소음도 적고 매끄럽게 위잉 얼마나 잘 깎기는지 녹슨 가위로 머리 깎다가 날이 잘 드는 새 가위를 손에 든 느낌이다!

그 매끄러운 느낌에 취해서 이발기를 돌렸다. '우와, 우와, 이거 진짜 잘 깎이네.' 혼자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다랑이 머리가 아기들 배냇머리 수준으로 매우 짧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신식 기계라 머리카락 길이를 조정하는 기능이 내장되어 있었는데 내가 그걸 가장 짧은 길이 위치에 놓고 작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발은 깔끔하게 잘 마무리되었지만 너무 짧아진 머리에 다랑이 반응은 어쩔라나?

아마 다울이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생쇼를 했을 거다. (한 번은 머리카락이 다 자랄 때까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말도 안 되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랑이는 "뭐야.... 형아는 길게 잘랐으면서 나는 왜 대머리 빡빡으로 깎아?"라고 조그맣게 한마디 하더니 휙 사라졌다. 반응이 너무 약하다 싶어서 이후 행방을 추적해 보았다. 그랬더니 아빠 작업 모자 뒤집어쓰고 내 스카프를 허리띠처럼 둘러맨 채로 아궁이 앞에서 숯을 줍는다. 그 숯으로 무얼 하려느냐고? 글쎄, 그 숯으로 눈썹을 진하게 칠하고 시커멓게 턱수염까지 그려 넣고는 짜잔 하듯이 나타났다.

“야, 너 뭐하는 거야?“

“이렇게 하면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를 거야. 머리카락 길게 자랄 때까지 변장하고 다닐 거야!“

그 말에 온식구가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지난 여름, 자른 머리가 부끄럽다며 외출할 때마다 머리에 빵 봉지를 쓰고 다니던 다울이 못지않게 다랑이가 우릴 웃겼다. 머리 한 번 깎을 때마다 크게 웃을 일 하나씩 생기는구나.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한 사람이 울어 여러 사람을 웃기는 일?!

짧게 깎은 머리를 안 들키려고 언제 어디서나 아빠 모자를 쓰고 다니는 다랑이 모습. ©️정청라
짧게 깎은 머리를 안 들키려고 언제 어디서나 아빠 모자를 쓰고 다니는 다랑이 모습. ©️정청라

아마 다랑이는 한동안 이를 갈며 나를 원망할 것이다. 다시는 엄마한테 머리를 맡기지 않겠다 다짐도 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속상했던 마음은 다 잊고 오늘 일을 떠올리며 함께 웃을 수 있을 거다. 아마도 기필코.... 꼭 그러하기를!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흐릿해진다는 건 축복임이 분명하다. ^^)

덧.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부터 다랑이는 "머리카락 아직도 안 자랐잖아. 언제쯤 많이 자라는 거야?"라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날마다 밥 먹듯 이 질문을 퍼부으며 나를 괴롭히겠지. 그때마다 불러줄 노래가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산타 할아버지는 언제 오셔?"라는 질문에 지겹게 답을 하다가 만든 노래인데, 위와 같은 상황에도 잘 어울리지 싶다.

다랑아, 조금만 더 기다리면 머리털이 덥수룩해지는 날이 올 거야.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렴.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오신단다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자란단다

 

드디어 마음 풀려서 모자를 벗은 다랑이. ©️정청라
드디어 마음 풀려서 모자를 벗은 다랑이. ©️정청라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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