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을 지나 어김없이 찾아온 겨울처럼, '이게 무슨 일이지?'를 반복하던 2020년도 조심스레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희망과 좌절이 반복되며, 지나갈 것 같지 않았던 2020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2020년과의 이별을 잘 준비하고 계시는가요?

"난 정말 오래 살았지!"로 말씀을 시작하시는 수녀님께서, 어느 날 멋진 곳을 보여 주시겠다며 산책 신청을 하셨습니다. 가벼운 마음에 시작한 산책은 1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마지막에 가닿은 곳에는 엄청 멋진 의자가 있었습니다. 마치 미사 때 봤던 제대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늘 인기가 좋은 자리라고 하는데,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운 좋게 비어 있는 그 의자에 앉아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지현
©️이지현

"난 정말 오래 살았지! 벌써 82세라고.

근데 지금이 내가 살아온 중 제일 정상적이지 않은 때인 거 같아.

근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니?

지금처럼 이렇게 앉아서 기다릴 수밖에.

기다리는 거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하게 아기 예수님을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도 간절하게 조용히 우리의 자리에서...."

 

"아무것도 계획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기약도 없이 기다린다는 것이, 가능한 걸까요?

제가 좀 더 젊었을 때는 희망을 이야기했고, 뭔가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저도 늙었나 봐요.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요. 용기도 사라진 것 같고, 수도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난 정말 오래 살았지. 넌 아직 늙지 않았어. 난 너와 같은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보는데? 우리보다 더 용감하고, 우리보다 더 힘 있고, 우리보다 더 창의적인 젊은이들이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라 믿어.”

 

2020년 4주간 기다림의 대림 시기가 끝나고 곧 성탄입니다. 이 혼란 속에서도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주신 아기 예수님과 함께 조금 더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난 정말 오래 살았지~" 수녀님 말씀처럼 간절하지만, 조용히, 그러나 자기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아니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 봅시다. 서로 지치지 않게 다독이며 서로에게 희망이 있음을 믿으면서 말이죠.

 

2020년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 비록 사회적 거리 2미터를 두고,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린 채, 혹시 모를 감염의 두려움에 서로를 멀리했더라도 마음만은 전보다 더 가까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하느님 안에서 쉬실 수 있는 찰나를 마련해 보시길 바랍니다.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kollwitz.de콜비츠 케테, 'Repose in the Peace of His Hands'. (1935-1936) (이미지 출처 =  kollwitz.de)
콜비츠 케테, 'Repose in the Peace of His Hands'. (1935-1936) (이미지 출처 =  kollwitz.de)

* 외국인 어르신 수녀님과의 대화를 번역 편의상 낮춤말로 표기하였습니다, 수도회 내에서는 낮춤말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이지현

성심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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