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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2020년이라는 1년을 환불받아야 할 것 같지 않아요?”

“뭔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겠죠. 마치, 큰 변화 후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그동안 지구에 한 짓을 그대로 돌려받는 것 아니겠어요?”

2020년 올 한 해에 대해 지난 10개월간 들어왔던 말을 빼고 더 보탤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이 시간을 돌아보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2020년 한복판에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했었다고 말하게 될까요?

 

수녀원 공동체 안에서만 지내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수녀님들의 도움으로 다른 지역으로 안전하게 이동하여 피정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개월 만의 이동이어서 그랬는지 많은 사람이 어색하기도 했고, 한국을 떠나서 지내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기도 합니다.

운이 좋게도 제가 지금 있는 곳은 바닷가의 조용한 작은 동네입니다.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가 훤히 보이는 절벽 공원이 있습니다.

지나가다 보면 바다 가까이 있는 돌 사이사이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있기도 하고 명상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조용히 있던 바다에 시원한 바람이 불면, 저 멀리서 잔잔하게 밀려오던 파도가 점점 큰 물결을 만들며 다가와 절벽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칩니다.

아무 일 없어 보이는 파란색 바다가 저렇게 큰 소리로 저렇게 높은 파도를 일으키며 흰색으로 부서져 버리는구나 싶어 난간에 서서 구경합니다.

©이지현

장관이었는지, 제 옆으로 하나둘 모여 구경하던 사람들은 다시 하나둘 사라져 어느새 절벽 위로 이동해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뭐에 홀린 듯, 함께였습니다. 무서워 보였던 절벽은 꽤 넓고 평평한 장소였습니다.

적당한 곳에 앉아 저에게 다가오는 파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철썩이는 소리와 눈앞에서 하얗게 부서져서 사라지는 파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주변은 점점 더 조용해집니다.

 

사방으로 불며 제 머리카락을 여기저기로 세차게 몰아치던 바람이 살살 코끝만 간질이는 바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조용해진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히 다시 파란색을 머금고 따스한 햇볕에 얼굴을 이리저리 비추며 색깔을 바꾸고 있습니다.

 

문득, '저 바다는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며 의심하는 나란 인간, 언제나 도망가고 화만 내며, “주님 어디 계십니까. 제가 뭘 더 해야 합니까?”라고 되묻기만 하는데 말입니다.

 

©이지현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코 12,30)

제일 첫 계명인 이것은,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사랑에 저 바다처럼 내 존재 자체를 맡기는 것 아닐까요.

 

시간이 조금 흘러 2020년을 뒤돌아보며, 나는 뭐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2020년 한복판에 서서 끊임없이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만을 외쳤습니다.

 

저 바다 위에 모든 힘을 빼고 둥둥 떠서 온몸으로 햇살을 온전히 받는 상상을 해 봅니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라는 질문이 무색해집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이지현

성심수녀회 수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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