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신학과 영성 신앙생활 신학 오디세이아2
해는 빨리 저무는데, 나는 내 등잔에 무얼 채우나
거리에 놓인 배에 누군가 꽃을 심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멋지게 잘 어울린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원래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정은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는 맑은 날이었다. 좋아하는 길을 따라 걷다가 폐선을 발견했다. 엉뚱한 곳에 놓인 폐선에 누군가 꽃을 심었는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값없는 가을의 햇살과 그 햇살 아래 핀 꽃, 그리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생뚱 맞는 조화가 마음을 즐겁게 한다. 사실 어떤 것들이 그다지 안 어울릴 이유는 없을지 모른다. 그저 안 어울린다고 보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도 그렇다. 사실 안 어울리는 사람, 그룹은 없다. 다만 나의 편협한 마음이 나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하지만 하느님이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어울리지 않게 창조하셨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걸으니 더없이 아름다운 가을날이다.

저녁에는 델라웨어 주에서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된 조 바이든이 연설을 했다. 사실 며칠 동안, 사람들은 가슴을 졸이면서 개표 상황을 지켜보았다. 극적으로 상황이 역전되고, 바이든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 그리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 다시 숨을 쉬게 되었다고, 새 희망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들을 했다.

새 당선인 조 바이든은 연설에서 모든 사람의 인격이 존엄성을 누리는 가능성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부통령을 가지게 되었다고 선포했다. 카멀라 해리스는 자메이카 출신의 아버지, 그리고 인도 출신의 어머니 사이의 혼열로, 내가 살고 있는 오크랜드 출신이어서, 오늘 우리 동네는 온통 축제 분위기다. 백인 일색의 정치 풍토가 이제 달려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트럼프를 지지하는 표도 적지 않았고, 서로 다른 주장 사이의 골은 깊다. 그 깊은 견해차를 너머 서로의 공감을 얻어 낼 수 있을까?

교회에도 좋은 이야기가 들린다. 우리 수도회에는 흑인 수녀님이 한 분 계신다. 그분은 어제 전화를 걸어서, 워싱턴의 그레고리 대주교가 이번에 첫 흑인 추기경이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사회정의, 특히 인종 차별에 대해 평생 투쟁해 온 수녀님은 평소 말투도 매우 공격적으로 느껴져서 사실 나는 좀 거리를 두는 편이었는데, 전화를 받고 의아했다. 축하한다는 인사 후, “근데 그분 좋은 분이야?” 하고 물었더니, “응, 진짜 좋은 분이라고 내가 확신하지” 하는데, 진정한 기쁨이 묻어 나왔다. 그리고 이젠 우리 수도회 내부의 인종 차별에 대한 토론회를 준비하자고 제의하셨다. 웬일인지 이번에 수녀님은 공격적이지 않아 보여서 마음이 놓인다. 무언가 희망을 많이 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래서 참석하겠다고 했더니, 자기 혼자 주최하고 싶지 않으니, 내가 같이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 강한 사람은 좀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 수녀님이랑 내가 어울릴까 생각하는데, 수녀님은 혼자 하는 일은 힘이 약하다고 그래서 같이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힘주어 그 수녀님은 이야기했다. 이젠 때가 되었다고. 그의 확신에 이끌려, 내가 바바라 수녀님과 안 어울린다는 생각 따윈 집어치우기로 했다.

친구가 선물했던 등잔. 내 등잔에 채울 건 무엇인가를 묵상하면서 등불을 켜 본다. 그으름 냄새와 함께 따스함, 그리고 밝음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박정은

이번에 나는 교황님의 새 회칙을 함께 공부할 스터디 그룹을 꾸렸고 함께 공부하면서 정말 행복했었다. 특히 예쁜 베트남 수녀님이 함께하셨다. 수녀님은 한국말을 아주 예쁘게 잘하셨다. 하지만 한국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한국어와 문화를 익히면서, 수도생활을 배우느라 더더욱 힘들었을 그 시간들이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한국 수녀님과 함께 있는 모습이 친 자매처럼 느껴져서 참 보기 좋았는데, 두 분이 함께 선교하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나누어 주었다. 다름 속에 하나됨이 느껴지는 두 분께 박수를 쳐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한국인에게 공연히 우습게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 아픈 순간이 있었다면, 그냥 훌훌 날려 보내시길 기도했다.

나도 이방인으로 살다 보니 누군가 생김새나, 말, 그리고 생활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난다. 자신의 말이 아닌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말을 잘하라고 하기 전에, 내 귀를 잘 훈련해야 한다. 우리 공동체엔 페루 수녀님들, 그리고 아프리카 로소토 수녀님들이 있다. 내 귀에 불편한 말을 사랑하기는 글로벌 시대의 사랑 법이 될 것이다.

교황님은 사회의 아픔을 형제애로 끌어안는 사회적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권고하셨는데, 십일월의 싸늘한 공기 속에 나는 길거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외로운 행려자들을 본다. 거기다가 11월부터 코로나 숫자는 부쩍 올라가고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는 활동 정지 명령에 들어갔고, 많은 젊은이가 우리는 먹고 살아야 한다면서 저항하고 있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살아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자택 근무가 가능한 전문직이거나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그의 책 “광기의 시대의 바이러스”에서 현재 지구상에 코로나로 죽어가는 숫자보다 배고픔과 가난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다고, 무조건 경제를 닫아 버리는 공권력의 폭력에 대해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 대학을 다닌 경우 학비를 갚느라 평생 고생해야 하는 그들의 고달픈 현실은 젊은이들의 높은 빈곤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서구의 21세기 철학은 개인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원리를 의심한다. 그러기에 공동선을 향하는, 분배를 지향하는 정책들이 나오길 소망하게 된다.

나무들이 모든 것을 비워내고 홀로 서는 이 계절에 교회는 마지막을 생각한다. 영원을 갈망하며, 순례하는 백성으로서 교회는 종말을,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에 비유한다. 해는 오후를 지나면 서둘러 져 버리고, 밤은 긴데, 난 나의 등잔에 무얼 채울 수 있을까? 인종 문제, 환경 문제,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공동의 숙제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등잔에는 무얼 채워야 하는 걸까? 유색인종이고 이민자 가정의 자녀인 여성 부통령이 나오고, 대놓고 인종차별을 주장하던 대통령이 물러갔고, 또 흑인 추기경이 나오고 하는 일들이 기쁜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그것보다 더 근원적인 것.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등잔은 텅텅 비어 있을 것만 같다.

내가 사회적 시인이 되어 쓰는 시는 고작, 다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커피 한잔을 사 주고, 차에 가지고 다니던 담요를 가져다 건네주는, 많이 미안하고 한없이 측은한, 그래서 좋은 하루 되라고 인사를 던지는 것 외엔 딱히 할 것이 없는 왜소함과 무력감이다. 그래서 다른 멋진 사람들이 위대한 시를 쓴다면, 나는 그 구절을 외우면서, 여전히 줌 수업을 통해 내가 만나는 일에 지친 내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멋지다”라는 고백으로 수업을 시작할 것이다.

박정은 수녀
미국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며,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슬픔을 위한 시간: 인생의 상실들을 맞이하고 보내주는 일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