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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조물 보호를 위해 기도하는 날에

캘리포니아는 산불로 많은 피해를 겪고 있다. 코로나도 거의 통제가 되지 않은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덥고 건조한 날씨에, 마른 벼락이 치던 어느 밤을 기점으로 이곳저곳에 산불이 나기 시작했다. 하긴 이렇게 산불이 난 것이 올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벌써 2년 전부터, 이런 현상이 시작되었다. 젊은 소방관들은 불길과 싸우느라 사투를 벌이는데, 불길이 잘 잡히지 않는 이유는 노후한 전기시설 때문이다. 모든 것이 민영화가 된 미국에서, 전기 회사는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낙후된 전깃줄을 보수할 계획이 없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볼까 생각해 보면, 가장 작고 여린 피조물이다. 사람들 중에서는 하루하루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고 숲에 사는 많은 조그만 생물들이다. 

날은 무더운 데, 공기는 재로 뿌옇고, 집은 계속 걸레로 닦아 내어도, 먼지가 쌓인다. 거기에 이번 연휴는 고온비상이다. 이곳은 사실 기후가 늘 서늘해서 에어컨 있는 집이 거의 없었고, 이런 날이 되면, 바닷가로 가거나 쇼핑몰에 가서 더위를 피하곤 했는데, 이젠 코로나로 갈 곳도 없다. 그래서 나도 집 안에서 어떻게 하면 서늘함을 유지하나 전전긍긍한다. 밖에 나가지 말라고 경고문이 뜨는데, 집 없이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된다. 한국의 긴 그리고 파괴적인 장마, 그리고 태풍 소식에 마음이 괴로운데, 수녀님들이 든 피켓에 쓰인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라는 문구가 마음 깊이 새겨진다. 환경재해는 자연재해이며 동시에 사람들이 만들어 낸 재해다.

가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에는 많은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 한 동네 사는 친구가 자기 마당에서 딴 포도를 몇 개의 잎과 함께 배달해 주고 갔다. 잘 익은 포도의 맛도 일품이었지만, 함께 익어 가는 혹은 늙어 가는 친구의 손길이라 마음이 푸근해졌다. 한국 수도 공동체에서 쫓겨나, 수녀 아닌 수녀인 듯, 무척 혼란스러운 시절에, 자동차가 없어 당연히 걸어다니며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때, 장도 보아다 주고, 여성의 피정을 하고 싶다며 내게 다가왔던 그. 한국인이며, 동시에 미국인인, 혹은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중간 어디쯤에 살고 있는 이민 2세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맘 아픈 것인지를 가르쳐 주던 친구. 그 친구가 이제 하얗게 센 머리를 보여주며 건네준 포도송이를 입에 넣는데, 내 눈에 풍뎅이가 들어왔다. 아! 풍뎅이도 살고 있었구나 하는 경탄이 나온다.

친구가 가져다 준 포도송이. ©박정은
포도송이와 함께 온 풍뎅이. ©박정은

어릴 때, 아버지는 예쁜 풍뎅이 저금통을 사오시고서는, 이 풍뎅이에 동전이 가득 차면 풍뎅이가 날아간다고 하셨었다. 나는 정말이냐고 재차 물었고,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일단 한번 채워 보라고 하셨었다. 그때 나는 2학년, 그러니까 여덟 살이었고, 그 말을 그대로 믿었었다. 지금 내 눈앞에 기어가고 있는 풍뎅이를 보다가,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다, 오늘이 피조물 보호의 날이란 걸 떠올렸다. 그래서 포도 잎에 풍뎅이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다가 옆집 사과나무 위에 풍뎅이가 올라탄 잎을 올려주었다. 그리고 사과나무로 이민 가서도 잘 살기를 소망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제정이 유난히 마음에 와닿는다. 2015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당신의 첫 회칙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양의 찬가의 후렴구에서 따온 '찬미받으소서 Laudato Si’'를 발표했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회칙을 나는 과연 어떻게 실천해 왔나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5주년을 맞아 교회가 이렇게 우리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니 감사드린다. 교회는 이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를 성프란치스코 성인의 축일인 10월 4일까지 바치기로 했다는데, 여간 반갑지 않다. 왜냐하면, 피조물 보호의 핵심은 사실 거룩한 가난에 있고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의 아름다움을 가장 깊이 살았던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지구라는 한 집에 함께 머무는 친구들로서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너를 밟고 올라가는 그 어리석음과,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작은 생명을 죽이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생명이라는 것이 내게 유여된 타자의 생명을 얻어 가지는 일이기에, 기억하고, 고마워해야 하며, 조금 먹고 만족하는 일을 배워야만 한다.

사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지난 3월부터 6개월 동안 나는 딱 한 번 기름을 넣었다. 그리고 많이 걸어 다녔다. 그리고 우리 동네의 구석구석 핀 꽃들, 그리고 열매들과 친해졌다. 엄마 오리가 새끼 오리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광경도 목격했고, 물새들이 수영을 하고 나서, 부석부석해진 머리를 말리는 광경도, 해질 무렵, 서늘해지면 따스한 모래에 자리를 깔고 퍼질러 앉는 풍경도 보게 되었다. 어려운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생명에 경이를 표하게도 되었다. 그리고 내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기 전까지는, 예쁘게 생긴 생쥐와 눈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놀라움도 배웠다. 그래서 집안에 들어온 개미나 거미들을 죽이기가 좀 주저된다. 가능하면 알아서 나가 주기를.... 그래서인지, 글라라 성녀가 살았던 산 다미아노가 떠오른다. 아무것도 없어서 참 넉넉해 보였던, 그리고 평화롭던, 성녀가 살던 수도원.

엄마 오리가 아기 오리들에게 수영을 열심히 수영을 가르치는 모습. ©박정은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문을 아무리 찾아 보아도 찾지 못한 나는, 노리치의 줄리안의 메시지를 대신 바치기로 했다.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그리고 페스트의 창궐, 그리고 교회의 보수적인 신학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의 희망 없이 죽어가던 때, 노리치에 있는 줄리안 성당 한 구석에서 기도하며 평생 그 안에서 살았던 여성이 보여주었던 메시지, “모든 것은 잘 될 거야, 과거에도 잘 되었었고, 지금도 잘 되고 있고, 앞으로도 잘 될 거야.(All shall be well, all was well, all is well, and all shall be well)” 이 기도를 한 달 동안 계속 외우기로 했다. 지구가 네모난 모양이라 믿던 그 시대에 살던 이 이름 모를 신비가는 기도 속에서, 하느님 손바닥에 놓인 헤이즐넛을 보았고, 이 조그만, 그리고 동그란 세상을 하느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며 돌보시는지를 보았다. ‘시절이 수상하니 아주 오래전의 것들이 더 많이 그리워져요. 따뜻함, 넉넉함, 고즈넉함, 격조, 다정함 이런 것들이요’로 시작한 친구 수녀님의 손편지를 묵상하다가, 그 오랜 것들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느님의 따스한 손을, 그리고 그 손 위에 놓인 세상을 묵상한다. 그리고 간절하고 절절한 맘으로 모든 것은 잘 되리라고 기도하기로 한다.

그래서 한 달 동안 조금만 먹고, 쓰레기를 줄이면서. 운전을 절제하면서, 남을 싫어하거나 시기하는, 쓸모없이 애쓰는 일도 좀 줄이면서 살아 보기로 한다. 작은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희망적인가를 살아 보기로 한다. 한 동네 사는 고양이들, 강아지들, 까마귀들, 다람쥐들, 물새들, 오리들, 아 그리고 옆집에서 키우는 닭들 모두가 건강하렴. 그리고 오늘도 생명을 피우며 자라는 풀들, 나무들, 너희들도 안녕! 그리고 내가 아는, 그리고 알지 못하는 모든 분들, 특히 마스크를 쓰고 뛰어 노는 어린이들, 안녕!

 

박정은 수녀
미국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며,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슬픔을 위한 시간: 인생의 상실들을 맞이하고 보내주는 일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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