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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말고 사색

지난 몇 개월, 여러 종류의 한국 음식을 시도했습니다. 수녀님들은 사진도 찍으시고, 재료에 관해 물어보시고, 맛있다고 칭찬도 해주십니다. 칭찬을 받다 보면 다른 요리에 도전할 용기도 생기고, 요리가 재밌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자주 있는 공동 모임 시간에 어설픈 외국어로 더듬거리며 나누는 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시고 여러 반응을 보이시고 도와주시는 수녀님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학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외국 사람들은 환경과 문화, 교육 등 여러 부분에서 한국과 다른 점이 많아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항상 감사하는 것이 몸에 배어서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네. 그런 부분이 있기도 하죠. 그러나 외국 사람이라 해서 모두가 그런 것도 아닐 뿐더러 그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칭찬받을 만한 요리 솜씨가 아닌데도 맛있게 드셔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것은 한국 음식에 대한 선 경험이 없으셔서겠지요. 아마 다른 곳에서 같은 음식을 드셔 보시면 제 요리의 진실을 아시게 되겠죠?

저 또한 수녀님들 앞에서 더듬거리는 외국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용기가 나는 것은, 이분들이 저를 선입견 없이 바라봐 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난 6개월은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을 견고히 쌓기엔 조금 짧은 시간이거든요.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처음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순식간에 변해버린 일상에 당황했지만, 경제 위기, 기후변화로 인한 여러 자연재해까지. 지구상에 이 무한 반복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각 나라 안의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많은 사람이 눈과 마음과 귀 모두 닫아버린 것 같습니다.

작정한 사람들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의심하기로 작정한 사람.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믿기로 작정한 사람.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안 믿기로 작정한 사람.

 

인간의 생각이 형성되는 과정을 제 지난 삶에 비추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을 통해 쌓인 저의 고유한 경험들,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강연들, 책에서 읽은 내용이 뒤섞여 반복되는 순환을 통해 저의 생각을 견고하게 만들어 갔습니다.

이는 제게 삶을 살고 상황을 판단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지요. 이는 선함을 추구하는 신념과 가치관이 될 수도 있고 고집에 아집을 넘어 불통의 늪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그 양극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사색. (이미지 출처 = Pexels)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렌즈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카메라의 렌즈처럼, 세상을 대할 때 그 렌즈를 통해서 바라보게 되지요.

카메라 렌즈에는 여러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의 피사체만을 근접해서 촬영하고 심지어 배경조차 흐릿하게 하여 대상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주 넓게, 우리가 다 담고 싶은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기능도 있습니다.

모든 렌즈가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그 렌즈는 그저 세상을 왜곡해서 보는 렌즈만으로 활용될지도 모릅니다.

 

“기사 못 봤어?”

“그거 유튜브에 다 떴어!”

“그 사람이 TV에 나와서 말했다고!”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니야!”

 

검색을 통해서 많은 것을 접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비례해서 사색은 얼마나 하고 있습니까?

그저 정보로 주어지는 것들, 알려지는 것들로 나의 렌즈를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요?

쏟아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마치 내 생각이 그렇다고 속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사색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지식을 갖춘 학자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듣고, 경험하고, 읽은 것에 대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진실일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 삶을 포괄하는 이 전체에서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떠오르는 질문들에 나 자신이 대답해 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이 질문을 나눌 수 있겠지요.

 

생각을 형성하는 경험과 지식이 사색을 통하지 않고 신념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위험을 우리는 지겹도록 많이 보았습니다. 누구를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크게 한몫을 하는 것을 깨닫고 반성 중입니다.

 

검색 말고 사색.

잠깐 시간을 내어 하느님과 함께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그것이 기도라 불리든, 사색이라 불리든, 곰곰이 멈추어 생각해 보는 시간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선물해 주신 렌즈의 많은 기능을 다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 계셨다."(마태 14,23)

 

이지현

성심수녀회 수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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