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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Lives Matter, 사회적 응답을 향한 삶정치적 본성[언제나 시기상조]

“I Can’t Breathe!”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 주 미네아폴리스에서 조지 플로이드라는 아프로(afro, 흑인)-아메리칸 남성이 데릭 쇼빈이라는 백인 경찰관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무릎으로 무려 8분 46초 동안 목을 눌린 조지 플로이드 씨는 “숨을 쉴 수 없어(I can’t breathe!)” 라고 말했지만 경찰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숨을 거뒀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조지 플로이드 씨를 추모하고, 아프로 인종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시위와 집회가 미국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 이하 BLM)라는 구호가 2015년 볼티모어 시위(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경찰에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척추에 상처를 입고 일주일 만에 사망한 아프로-아메리칸 청년 프레디 그레이의 장례식에서 촉발된 아프로 인종 주도의 시위) 이후로 다시 울려 퍼졌고, 조지 플로이드 씨의 유언인 “I can’t breathe!”가 시위 구호로 등장했습니다. 시위는 빠르게 퍼졌고, 위의 두 구호는 SNS에서 해시태그를 달고 지속적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한편 조지 플로이드 씨의 장례식이 끝난 지 5일 만에 또다시 비무장 아프로-아메리칸이 경찰의 총격으로 숨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현지시간 6월 12일, 경찰이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있는 한 식당 드라이브스루 통로에서 차를 세우고 잠든 남성 레이샤드 브룩스 씨와 몸싸움을 벌이다 그가 도주하자 총을 쏴 숨지게 한 사건입니다. 조지 플로이드 씨의 장례식 이후로 조금씩 진정돼 가던 BLM 운동에 다시 불을 붙인 사건이었습니다. 경찰은 음주 측정 결과 단속 기준에 걸린 브룩스 씨를 체포하려 했으나 그가 불응해 테이저건을 조준했고, 몸싸움 끝에 그가 테이저건을 빼앗아 달아나 총을 쐈다고 밝혔습니다. 당연히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고, 경찰서장이 사임했으며, 신상이 밝혀진 경찰관 2명은 해임됐습니다. 사실 아프로-아메리칸이 경찰에 의해 죽는 것은 보기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2019년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NAS)에 따르면, 미국의 20대 아프로-아메리칸 남성의 사망 원인 2위가 경찰의 폭력입니다.

“정부는 가난한 사람을 처벌한다”

사후에 밝혀졌지만 조지 플로이드 씨는 코로나-19 감염자였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격리나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사회보장이나 의료보험 제도가 얼마나 취약한지,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병원 문턱을 넘기 힘든지를 보여줍니다. 조지 플로이드 씨 역시 전 세계적 감염병에 걸렸음에도 병원 문턱을 제대로 넘지 못했고, 쓰려던 20달러조차 위조지폐라고 신고 당해 경찰의 무릎에 눌린 채 숨졌습니다.

이는 미국의 빈곤한 유색인종이 얼마나 위협에 처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들은 감염병에 걸리기는 쉽고, 그것을 진단받기는 어렵습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은 더욱 어렵고요. 돈을 벌려 해도 쉽지 않고, 돈을 쓰려 하면 위조지폐로 의심받기도 쉽습니다. 위조지폐가 아님을 증명하기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어렵고요. 또 비무장 상태에서 경찰의 말을 잘 들어준다 해도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경찰관에게 살해당하기도 합니다.

사회학자 로익 바캉은 "정부는 정치, 사상적으로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 사실상 가난한 사람을 처벌한다." 고 말했습니다. 만약 조지 플로이드 씨가 부유한 백인이었다면, 이런 죽음을 맞이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Black lives matter 시위. (사진 출처 = pikist.com)

“Black Lives Matter” 라는 구호가 우리에게는 낯설 수도 있지만, 아프로 인종의 인권 관련 시위에서 그간 자주 등장한 구호입니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이 BLM을 외쳤고, 아마존, 구글, MLB 등의 기업들이 BLM, 혹은 ‘흑인들에 대한 나쁜 대우, 공격은 멈춰야 한다.’ 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관도 BLM 현수막을 대사관 건물 전면에 내걸었고, 이 외에도 많은 유명인이 SNS에 “Black Lives Matter”나 BLM을 뜻하는 검정색 이미지를 올림으로써 연대했습니다. 그리고 Black Lives Matter 외에 여러 다른 구호들이 함께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Black Queer(흑인 성소수자), Black Trans(흑인 트랜스젠더), Black Women(흑인 여성) Lives Matter이나 성소수자의 상징인 6색 무지개로 BLM을 적는 것 등입니다. 또 ‘All Black Lives Matter’ 라는 확대된 구호도 나오는데, 이는 인권운동의 양상이 확장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기존의 BLM이라는 ‘통일된’ 구호 속에 잠재된 가치들이 기존의 구호를 뚫고 나와 정치적 주체의 목소리가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독버섯 같은 혐오, “All Lives Matter”

그러나 여기에는 독버섯처럼 우리를 노리는 혐오가 있습니다. 바로 ‘All Lives Matter’(이하 ALM)라는 구호입니다. ALM, ‘모든 목숨은 소중하다’라는 겉으로 보기에 별 문제 없는 이 구호가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는 바로 처음부터 BLM을 비롯한 소수자 인권 운동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BLM이 조지 플로이드 씨가 아무 죄 없이 고통스럽게 살해당한 것을 지적할 때, ALM은 ‘왜 백인 목숨은 신경 쓰지 않나. 백인도 죽을 수 있다’ 라고 딴죽을 걸거나, ‘데릭 쇼빈은 형사 고소에 민사 고소까지 당했다. 그의 삶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라며 가해자의 불쌍함과 문제 제기를 하는 쪽의 파렴치함을 주장합니다. 또 ‘조지 플로이드는 마약사범이었고, 레이샤드 브룩스는 테이저건을 빼앗아 달아났다’며 피해자의 전과 등을 들어 피해자 흠집내기에 열을 올립니다.

ALM은 보편적 인권이 아닌, 철저히 가해자의 문법과 그들 편에서 이야기합니다. 사실 ALM은 오히려 보편적 인권을 싫어합니다. 동성결혼, 여성 고용 쿼터제, 낙태 금지, 총기 규제를 반대합니다. 이런 탓에 ALM은 백인 우월주의자, 네오나치 등 파시스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선동 방법입니다. 미국에서 ALM을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인권보다는 남부연합기(편집자 주, 미국 남북전쟁 때 쓰인 깃발로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해지자 극우, 분리주의자들이 이에 대항해 쓰면서 차별의 상징이 됐다)와 더블 배럴 샷건(총열이 두 개가 붙어있는 장총)을 더 신봉할 것입니다.

일부 미국인들은 왜 ALM 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올까요? 아마 BLM을 비롯한 소수자 인권운동에 대한 조롱 차원일 것입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목숨 모두 소중하다는 ‘Everyone Lives Matter’가 아닌, 모두를 한 번에 묶은 ‘all’을 사용해 ALM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모든 목숨은 소중해’는 마치 ‘지구는 평평해’와 비슷한 메시지를 줍니다. 어떠한 사회적 운동이나 반향이 일어나게 된 맥락을 이해하지 않은 채 상대에 대한 ‘반대로서의 반대’에 서 있으니까요. 사실 ALM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기존에 있었던 혹은 세계화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을 모른척하는 것은 아닐까요?

‘응답 가능성’ 과 ‘삶정치적 본성’

BLM이 싸우는 이유는 국가나 사회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임은 곧 의문에 대한 ‘응답 가능성’을 뜻합니다. 안티-파시스트 액션(ANTIFA)이나 BLM 등을 비롯한 저항 행동은 파시즘, 인종차별, 성차별 세력 등이 사회적 의문점에 응답하지 않고 오히려 방조하고 있다고 봅니다. 스탠리 코언은 이에 대해 국가가 ‘문자적 부인’, 즉 학살, 군대나 경찰의 폭력 같은 국가범죄에 대해 없던 일처럼 부인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항 행동은 국가나 사회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오히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기 때문에, 올바른 응답을 받기 위해 싸운다는 것입니다.

정치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어셈블리”에서 BLM 운동에 대해 오늘날 투쟁들의 삶정치적(biopolitical) 본성과 경찰의 권한 남용과 다양한 형태의 일상적 권력 기능에 의해 삶 자체가 어느 정도로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강조합니다. 또 “흑인의 생명이 대체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종 체제의 죽음정치적(necropolitical) 본성을 확인시켜 주는데, 이는 물론 미국의 경계선 바깥으로 확대된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삶정치적 관점이, ‘흑인 연구’(Black Studies) 학자인 알렉산더 웨헬리예의 말대로, "인종과 인종주의가 얼마나 깊이 근대적 인간관을 형성했는지" 를 인식해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 준다고 정리합니다.

그는 또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노예 수송선에 실려 대서양을 가로질렀던 흑인의 신체들은 인간이 아닌 소유물로 여겨졌다”고 지적합니다. 그때부터 꾸준히 백인들은 책임지지 않았고, 응답 가능성을 내비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정과 폭력만이 ‘흑인의 신체’ 에게 돌아온 전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BLM 운동에 불이 붙었고, 국가와 사회에 책임, 즉 응답에 대한 요구로서 이 운동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네그리와 하트가 언급한 ‘죽음정치적 본성’을 넘어선, ‘삶정치적 본성’일 것입니다.

 

장성렬(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정치학과 사회학을 배웠고, 페미니즘과 아나키즘을 공부하고 있다. 권위와 폭력을 늘 경계하고 민주주의와 민주화에 대해 글 쓰며, 비슷한 주제로 사진을 찍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활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청년담론> 평등문화위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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