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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11월 29일-12월 1일)[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대림은 형제들에 대한 무관심에서 깨어나는 시기”

교종, 12월1일 대림 첫 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2월1일 새로운 전례주년이 시작된 대림 제1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전쟁과 갈등을 조장하는 이기주의의 길을 따르지 말라고 강하게 호소했다. 또 교종은 이날 오후 그레초를 방문해 구유의 의미에 관한 서한에 서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대림 제1주일입니다.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이 대림시기 4주 동안 전례는 우리를 예수님의 성탄을 기념하도록 이끄는 한편 그분께서 우리의 삶 안에 매일 오시며 세상 끝 날,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러한 확신은 이사야 예언자가 영감받은 목소리를 통해 대림기간 내내 초대하는 것처럼 신뢰를 갖고 미래를 바라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리라”(이사 2,2)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은 모든 민족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로 소개됩니다. 하느님 성자의 강생 신비 후 예수님 스스로 참된 성전으로 계시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예언자의 놀라운 비전은 하느님의 약속이고 모든 역사의 의미요 목표인 그리스도를 향한 여정, 곧 순례의 태도를 받아들이도록 재촉합니다. 

정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주님의 길을 걸어감으로써만 그 목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이나 사회단체가 전쟁과 갈등을 조장하는 이기주의적 이익만 추구하는 길을 따르기를 선호하는 데서 악과 죄가 나옵니다. 대림시기는 하느님의 길을 알려 주시기 위해 평화의 전령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오심을 받아들이기 위한 적절한 시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오실 때를 준비하라고 권고하십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4,42) 깨어 있는 것은 물리적으로 눈을 뜨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을 향해 자유로운 마음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기꺼이 은사를 받고 섬기려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나야 하는 잠은 무관심, 허영,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무능력, 소외되고 버림받았거나 병든 형제에 대해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력입니다. 따라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은 깨어 있어야 할 의무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활동, 그분의 놀라우심 앞에서 놀라는 것이고 그분을 으뜸으로 삼는 것입니다. 깨어 있음은 구체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 이웃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요구하게 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에게 행하시는 것처럼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희망의 어머니요 늘 깨어 계신 동정마리아께서 모든 인간과 민족을 당신께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 ‘주님의 산’을 향해 시선을 돌리도록 도와주시길 빕니다.

 

“소비주의는 신앙을 공격하는 바이러스”

교종, 대림 첫 주 콩고 가톨릭공동체 25주년 기념미사

프란치스코 교종은 12월1일 대림 제1주일 로마의 콩고 가톨릭성당 설립 25주년 맞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자이레 전통예식으로 미사를 집전했다. 이날은 전임 킨샤사대교구장 故 프레데릭 에츠우 추기경 뜻에 따라 1994년 로마 예수성탄 성당에 설립된 콩고 가톨릭 공동체 설립 25주년이다. 로마와 이탈리아 전역의 모든 콩고 공동체가 함께한 이날 미사는 자이레(콩고 옛 명칭) 전통예식으로 거행됐다. 자이레 전통예식은 1969년부터 콩고 주교단이 강력히 장려했으며, 1988년 바티칸 경신성사성이 인준했다. 자이레 전통예식은 전례 토착화의 긴 과정을 거쳐 로마예식에 접목시킨 결과다. 아프리카 전통 구어체가 활용되고 하느님과 친교를 맺는 올바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와 전통악기가 가미된 노래와 춤을 통해 회중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게 특징이다. 교종은 이날 강론에서 콩고민주공화국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물질적 재화를 축적하려 생각하지 말고 타인에게 마음을 열라고 초대했다. 

강론 내용.

오늘은 전례력의 첫날인 대림 첫 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확실성은 특히 그리스도인 희망의 뿌리인 대림시기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다가오다'(venire)는 동사는 하느님께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모두 다 함께 주님의 산으로 온다”고 예언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 초대받은 이들입니다. 초대받은 이는 고대하고 열망합니다. 저는 오늘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지역, 특히 심각한 분쟁으로 앓고 있는 베니와 미넴브웨 지역을 위해 기도합니다. 분쟁은 외부에서도 비롯됩니다. 그러나 수많은 이가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습니다. 복녀 마리 넨가페타의 전구를 통해 사랑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인근 민족의 도움을 통해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반대하지 않고, 서로 함께하는 미래를 위해 무기를 포기하기를 호소합니다. 

또 전쟁에 기여하는 경제에서 평화에 이바지하는 경제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초대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집을 떠났습니다. 아끼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이곳에 도착한 뒤 여러분은 온갖 어려움과 예기치 못한 일을 맞았지만 동시에 환대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 있어 여러분은 항상 환대 받는 이들입니다. 주님 안에 있어 우리는 결코 외국인이 아닌 기다리던 자녀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집입니다. 여기서는 항상 집에 와 있다고 느끼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이따금 하느님께 가기 위한 주님 초대에 “아니오”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 충격적인 것이 다가오고 있을 때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 두지 않습니다. 모두 노아의 시대처럼 오직 먹고 마시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삶을 자신의 필요에만 국한시킵니다. 누군가에 대한 기대도 없고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무엇인가 소유하길 바라고, 소비할 것만 바랍니다.

소비주의는 신앙을 뿌리부터 썩게 만드는 바이러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얼마나 소유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좌우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만나러 오시고 가까이 계신 하느님을 잊어버립니다. 주님께서 오시지만 여러분은 오히려 다가오는 식욕만 따라갑니다. 형제가 여러분의 문을 두드리지만 성가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말로 소비주의의 이기주의적 태도입니다. 탐욕은 마음을 분노로 무장시킵니다. 소비에 의존하는 것은 마음을 마비시킵니다. 더 이상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지 못하고 사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재물을 소유하지만 더 이상 선행은 하지 못합니다. 집에는 물건으로 가득 차지만 자녀들은 떠납니다. 시간을 때우고 소모하지만 하느님을 위한 시간과 타인을 위한 시간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사물을 위해 살게 되면 사물은 결코 만족을 모르고 탐욕이 자라며, 타인은 내가 달리는 길에 장애물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위협받는다고 느낍니다. 항상 불만족하며 분노하고 증오의 수준까지 도달합니다. “나는 더 많이 원해.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많이 가지고 싶어.” 

오늘날 우리는 소비주의가 지배하는 곳을 바라봅니다. 단지 말을 통해서라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폭력이 있고 얼마나 많은 분노가 있는지요! 우리는 모든 대가를 치러서라도 기어이 적을 찾으려 합니다! 이와 같이 세상은 죽음을 가져오는 무기들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는 분노의 마음으로 계속 무장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에서 우리를 일깨워 주고자 하십니다. 밤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곧 새벽이 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모두를 휘감고 있는 잠에 빠지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초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깨어 있어야 할 임무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삶의 의미가 재물을 축적하는 것이라는 유혹에서 벗어나고 많은 것을 소유해야 행복해진다는 거짓의 가면을 벗기는 임무입니다. 특히 성탄의 달에 우리는 어디서든 반짝거리는 소비의 눈부신 빛을 거슬러 저항해야 합니다. 기도와 사랑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가장 큰 보물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우리를 평화로 이끕니다. 오직 그럴 때, 마음이 주님과 형제들에게 열릴 때라야, 칼은 보습이 되며, 창은 낫이 됩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현재 상황을 연상하는 말이겠지만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이사 2,4)

 

“내어 주는 것만을 통해 참 행복에 이를 수 있다”

교종, ‘나는 할 수 있다’ 모임 참가 청소년 격려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30일 청소년 3500명이 환경과 사회개선 프로젝트에 대한 노력을 위한 '요 푸에도'(Yo Puedo) 프로젝트 아동국제회의 참가자들을 접견하고 격려했다. ‘요 푸에도’는 “나는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날 교종을 만난 청소년들은 축제분위기였다. 화합을 상징하는 춤이 뒤따랐다. 청소년 대표는 프로젝트 참여자들 국가를 상징하는 43개 정사각형으로 만든 퀼트 작품을 교종에게 선물했다. 교종은 이들에게 “여러분은 올바른 선택을 했다”며 여러분은 모든 것을 원하지만 아무것도 내어 주지 않는 이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만남은 세계 43개국 청소년들이 참여한 국제회의 마무리로 이뤄졌다. 바티칸 교육성 지침으로 추진된 “나는 할 수 있다” 프로젝트는 프란치스코 교종 회칙 ‘찬미 받으소서’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는 전통적 교육 시스템의 일부 ‘엄격한’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 학생을 중심에 두는 접근법을 시험하고 있다. 2009년 인도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 일부국가에서 실행됐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이 방법론이 소개되고 외국 청소년과 로마의 다양한 학생들 간 문화교류와 나눔이 있었다. 

교종의 연설 요지.

아름다움과 선은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나눔’, ‘연대’, ‘선’, ‘아름다움’, ‘함께’를 청소년과 어른들이 일상에서 증거한 노력들은 행동하는 아름다움입니다. 모자이크의 수많은 조각처럼 작지만 많은 것을 나누면서 생겨난 아름다움입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아름다움과 선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히브리어에 ‘좋은’이란 의미는 아주 넓은 가치를 지닙니다. ‘좋은’만이 아닌 ‘조화로운’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 선, 나눔으로 만든 다성적 조화로움입니다. 피조물은 위엄과 다양성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면서 엄청난 위대함에 직면하여 세상에서 우리 역할이 무엇인지 이해시키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우리는 타인 없이 우리 자신일 수 없습니다. 자연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 인간 역시 ‘나눔의 아름다움’에 활력을 주면서 완전한 실현을 꾀합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 생존이 달린 우주의 ‘열쇠’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열쇠는 하느님 계약의 계획입니다. 우리가 만든 다른 아름다움으로 돌이킬 수 없는 아름다움을 대체할 수 있다는 기만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위험에 빠진다면 스스로를 하느님으로 대체하려 했던 프로메테우스처럼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 역시 미처 깨닫기도 전에 이런 유혹에 빠집니다. 우리의 ‘나’가 모든 이와 모든 것의 중심이 될 때 말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친구여러분, 여러분의 프로젝트는 ‘찬미받으소서’에서 영감을 받아 타인과 타인들 없이는 우리 자신이 될 수 없다고 올바르게 말합니다. 우리는 독선의 함정이 우리를 속이거나 넘어뜨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있다’가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다’로 돼야 한다는 점을 여러분은 이해했습니다. ‘함께’가 더 아름답고 더 영향력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사들과 함께 ‘글로벌 교육마을’을 세우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글로벌 교육마을 사람들은 모든 형태의 차별, 폭력, 집단 따돌림에 대한 최상의 치료제인 인간관계 네트워크를 만듭니다. 그곳은 또한 교육이 형제애의 일꾼, 평화의 창조자가 되게 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부모들과 함께 자연보호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해 틀림없이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과 사회적 개선을 구체화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데는 용감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올바로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은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고 공동체 봉사에 참여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 붙였습니다. 또 여러분은 이 임무의 봉사를 위해 핸드폰을 이용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내어 주면서 행복에 이릅니다. 여러분은 세상이 여러분에게 제공하는 다른 많은 것 중 연대와 공동작업 책임을 선택했습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내어 주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보다 여러분이 어째서 더 행복해 보이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원하지만 아무것도 내어 주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합니다. 오직 내어 주는 것을 통해 행복에 이를 수 있습니다. 모두 침묵 가운데 마음으로 서로를, 모두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를 축복해 주시길 하느님께 청합시다. 아멘.

 

“주님께 대한 희망과 신뢰로 죽음의 순간 바라보라”

교종, 11월29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29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우리는 연중시기 마지막 날에 모두 우리에게 반드시 닥쳐올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며 죽음과 주님과의 만남의 순간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론 내용.

“하늘과 땅은 사라지지만 내 말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루카 21,33) 오늘 복음은 ‘모든 일이 어떻게 끝날지’에 관계없이 거룩하게 맞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중심에 두고 충실한 사람들에게 각자 죽음의 순간을 생각해 보라고 권유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종말이 언제 일어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의 취약점은 같습니다. 종말의 시점에 이 취약점을 안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의사나 심리학자에게 정신치유나 어떻게 종말을 맞을지 상담합니다. 많은 사람은 가족을 위해 돈을 저축한다는 착각에 자신의 장례를 책임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부 장례회사들이 사람들을 사기 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 추세는 끝났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환상을 이용해 몇 번이나 속임수를 쓰나요? 

죽음의 확실성은 성서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지만 주님은 항상 그분과의 만남을 희망이라는 단어와 함께 우리에게 제시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만남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죽음은 그분과의 만남입니다. 죽음이 방문하는 것은 주님 손으로 우리를 그분께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젠가 우리 각자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순간을 잘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초대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각자의 죽음을 생각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그 순간이 오면 신뢰와 자신감으로 문을 열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 마음은 평화롭게 잘 죽고, 희망으로 죽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교종, 새 성인 후보들에 관한 법령 승인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29일 바타칸 시성시복장관 안젤로 베 치우 추기경에게 남녀 가경자 26명에게 기적과 순교, 영웅적 미덕 인정에 관한 11개 법령의 공표 권한을 위임했다. 이들은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캐나다, 독일의 3명의 기적, 2명의 순교, 6명의 영웅적 미덕에 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의 시복시성 절차가 속도를 내게 되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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