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인 눈이 아닌 아마존 영성을 봐야

(마이클 션 윈터스)

만약 당신이 주류 미디어에 의존하고 있다면, 당신은 지난달 3주에 걸쳐 진행된 아마존 시노드가 기혼 남성 사제서품과 여성부제 제도 복구에 주로 초점을 두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희년 미국>(JubileeUSA)의 에릭 르콩트 사무총장은 “우리가 시노드의 결과로 나온 문서를 읽어 본다면, 아마존 지역에서의 이러한 직무적 전환은 (교회가) 주민들에게 봉사함으로써 이들의 인간적, 경제적 권리가 보호받도록 하려는 목적과 부분적으로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최종선언을 보면) 가톨릭 신자로서 우리는 원주민 사회와 우리의 지구를 보호해야만 한다고 돼 있다. 궁극적으로 이번 시노드의 메시지는 우리 모두는 우리가 충분히, 그리고 너무 많이는 아니게 누리면서 이 세상을 살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르콩트는 이번 시노드의 최종문서가 1980년대에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평판이 낮아졌던 “사회적 죄”라는 개념을 가장 뚜렷하게 천명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NCR>에 “아마존 시노드의 최종 문서는 우리가 너무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현실로 요약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아마존 지역에 살든 아니면 미국에 살든 간에, 우리 모두는 너무 많이 소비하고 있다. 이는 아주 강한 메시지이며 아마도 가톨릭 교회가 사회적 죄가 있는 현실- 우리가 죄의 수준으로 소비하고 있다는-에 지금까지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사회적 죄의 개념을 복원한 것은 윤리신학에서 의미 깊은 발전이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풀어 보고 싶다. 교황께서는 교회 앞에 온전한 인간발전(intergral human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마존 시노드가 시작되기에 앞서, 나는 “integral”이라는 단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의 진부한 생각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대신에 “intergrated”를 선호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개념 자체 또는 현실이다. 사회적인 것과 생태적인 것, 교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모두가 서로 연계돼 있다. 아마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가 다양한 현실 속에 널리 퍼진 이 사회적 악을 뿌리 뽑지 않는다면 남미, 그리고 지구 전체가 위험에 처하기 때문에 모두가 서로 연관돼 있다.

교회가 아마존 주민들이 마주한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도록 도우려면, 교회는 그곳에 현존해야만 하고, 그렇게 현존하려면, 교회는 가톨릭의 행동과 믿음을 가장 뚜렷이 보여 줘야만 한다. 바로 성사다. 그렇다. 우리의 가톨릭 성사적 감수성은 아마존 원주민들의 온전한(intergrated) 영성과 잘 어울려 보인다. 우선 서구인의 눈에는 아마존 원주민들의 이러한 영성이 뭔가 이상하지만, 다시 보면, 아주 아름다움이 보이는데, 그 아름다움은 서양인의 초합리주의적, 데카르트적 감각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아마존 시노드에 대한 미국에서의 토론 대부분은 기혼 남성의 서품과 여성 부제라는 매혹적인 이야기가 아마존 오지에서의 성사성을 토의하다가 나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10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에서 열린 아마존 시노드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NCR)

한 친구는 내게 보낸 메모에서 우리는 지난 35년간 영성체(Communio) 교황들 밑에 있다가 이제 공의회(Concilium) 교황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 뒤에 이전보다 더 보수적인 신학지들과 더 진보적인 신학지들이 창간됐음을 언급했다. 그런데 빌라노바 대학의 신학자인 마시모 파졸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렇게 규정하는 것을 반박했다.

그는 나와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의회 스타일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공의회(문헌) 작성자들이 가졌던 기술주의적(technocratic) 강박이 전혀 없다.” 공의회 문헌을 읽어본 지 오래되긴 했지만 나는 이것을 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역할을 보편교회의 신학 주임(theologian-in-chief)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는 존 트레이시 엘리스 몬시뇰이 역대 교황들이 왜 여러 서로 다른 신학파를 골고루 선택하지 않았는지 설명하던 것을 생각해 본다. 엘리스 몬시뇰은 이렇게 말했다. “베드로의 의자(교황의 자리)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신학교 교수직은 아니에요.”

한 교황을 아주 서구적인 두 가지 관점에서 규정하면 기본적으로, (온갖 사물을 볼 때) 성(gender)에만 초집중하는 것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즉, 이번 시노드는 아마존에 관한 시노드였다. 참석자 대부분은 아마존 지역 출신이었다. 근시안의 서구에 사는 우리는 뭐든지 성이나 인종 또는 이념의 문제로 축소시키길 원하지만, 이번 시노드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원주민의 영성에 대한 헛되고 어리석은 공격은 (이번 시노드 기간 중에 쓰인) 임신한 원주민 여성 목각상을 훔쳐 강에 던져버린 일로 곪아 터진 절정에 이르렀다. 지난주에 (세계 최대 가톨릭 매체로 보수적인 미국의) <EWTN>의 ‘온 세계에서’ 프로그램에서 레이먼드 아로요와 그의 교황 수색대는 여전히 그 조각상들이 우상이라고 물어뜯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명확해진 것은 그들 그 누구도 그 조각상들을 시노드가 열린 로마로 가져온 원주민들에게 그 조각상들의 의미가 뭐냐고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문화적 근시와 나쁜 언론이 만난 것이다. 그 조각상들을 가져간 사람들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는 것은 내가 봐도 분명해 보이고 시노드 참석자들이 보기에도 그렇다. 왜 그들에게 말도 해 보지 않고 그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가?

진짜 우상을 경배하는 자들은 그런 약탈파괴 행위를 칭찬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자기들끼리의 보수적인 성윤리라는 우상을 만들었다. 파졸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모습이 미국에서 어떤 가톨릭 신자들에게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가톨릭 신앙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해, 잘못된 점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는 논법을 쓰는 것이.” 바로 딱 맞는 말이다. (나는 “빙고”라고 쓸 뻔했는데, 이는 예전에 가톨릭 정체성의 또 하나 지표였다.)

대부분 미국 발언자에게 보이는 문화적 근시안에 덧붙여, 이번 시노드에서 떠오른 다른 이슈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 그 이슈는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 치세에서 있었던 모든 시노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교회가 어떻게 변하는가? 교의와 실천은 어떻게 발전하는가?’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주제를 오는 수요일에 다룰 것이다.

(마이클 션 윈터스는 <NCR>에 종교와 정치 관련 문제를 기고한다.)

기사 원문: https://www.ncronline.org/news/opinion/distinctly-catholic/amazon-synod-about-concept-social-sin-not-married-pri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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