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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5월 1-6일)[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교종, 불가리아와 북마케도니아 순방

첫날 5일 불가리아 대광장에서 부활삼종기도 연설

 

프란치스코 교종이 5월 5일부터 7일까지 불가리아와 북마케도니아를 순방했다. 바티칸은 이번 사도적 순방의 핵심은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을 확인하고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그리고 평화라고 밝혔다. 또한 바티칸은 프란치스코 교종의 29번째 사도적 순방은 이곳에서 10년을 머물다 교종이 된 성 요한 23세와 콜카타의 성녀 데레사에 의해 더욱 빛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순방 첫날 불가리아의 성 알렉산데르 네브스키 광장에서 부활 삼종기도를 바치기에 앞서 교회일치의 긴 역사를 지닌 불가리아 국민들을 격려했다. 연설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이 말을 통해 불가리아 땅에서 동방정교회 신자와 가톨릭 신자들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시기에 축하인사를 나눕니다. “크리스토스 보스크레세” 이 인사말은 악과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큰 기쁨을 표현합니다. 우리 신앙의 핵심에 대한 확신이자 증언입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희망이시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젊음이십니다. 그분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이 젊게 되고 새로워지며 생명으로 충만해집니다. 따라서 제가 여러분에게 가장 먼저 전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살아계시며 여러분이 생기에 넘치기를 바라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 안에 계시고, 여러분과 함께 계시며, 여러분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과 함께 걸어가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멀리 떠날지라도 여러분이 다시 시작하도록 기다려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여러분을 부르시고 언제나 여러분 가까이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시며, 다시 시작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분께서는 다시 시작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일어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당신의 손을 내밀어주십니다. 

여러분이 슬픔 때문에, 늙었다고 느낄 때, 사실 슬픔은 우리를 늙게 만듭니다. 분노, 두려움, 의심이나 실패로 늙어간다고 느낄 때,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힘과 희망을 다시 주시고자 언제나 그곳에 계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살아 계시고 여러분도 살아 있기를 원하시며, 여러분과 함께 걸어가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세상 도처에서 2천 년 동안 선포됐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복음선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도록 부름 받은 수많은 신자들의 너그러운 사명을 통해 선포됐습니다. 교회역사에서 이곳 불가리아에서도, 삶의 성화를 위해 특별히 봉헌된 목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저의 전임자를 기억합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불가리아 교종’이라고 부르는 성 요한 23세이십니다. 그분에 대한 기억은 1925년부터 1934년까지 그분이 사셨던 이 땅에서 특히 생생합니다. 여기서 그분은 동방교회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웠고 다른 신앙을 고백하는 종교들과 우정의 관계를 쌓으셨습니다. 불가리아에서 축적된 그분의 외교적이고 사목적 경험은 교회 안에 교회일치 대화를 장려하도록 이끌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교종께서 원하셨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추진동력이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훌륭한 교종’의 현명한 통찰과 영감을 불어넣어준 것과 관련해 이 나라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 교회일치 여정의 안에서 잠시 후 저는 불가리아 종교지도자들에게 인사하는 기쁨의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불가리아는 비록 그리스 정교회 국가지만 여러 종교들이 서로 만나고 대화하는 교차로입니다. 이 다양한 공동체 대표들 모임에 함께하는 것은 매일 더욱더 필요한 ‘대화의 문화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로, 상호협력을 행동강령으로, 상호이해를 방식과 기준으로 채택하는’(아랍에미리트 공동선언 2019년 2월 4일) 여정을 걸어가려는 모든 이의 열망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성녀 소피아의 고대성당 가까이에 있으며 제가 슬라브 민족복음화 선구자들이었던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를 기억하며 기도를 바쳤던 성 알렉산데르 네브스키 총대주교좌 성당 옆에 있습니다. 불가리아 그리스 정교회 성당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드러내려는 열망으로 저는 앞서 존경하는 네오피트 총대주교를 만나 인사하고 포옹하는 기쁨을 누렸고, 주교단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이 나라에 만남의 땅이 될 필요가 있는 동력을 선사하시고 이 땅에서 문화, 종교, 인종적 차이를 넘어 같은 아버지 자녀들로서 서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하늘과 땅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부활하신 주님 곁에서 전구해주시도록 청합시다. 우리 기도는 부활삼종기도(레지나 첼리)의 오랜 기도의 노래로 표현됩니다. 이곳 소피아 대성당에서 저의 전임자이신 성 요한 23세 교종께서 많이 사랑하셨고, 경배하기 시작했으며 죽을 때까지 품 안에 지니고 다녔던 ‘하늘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네세바르 성모님의 성화 앞에서 기도합시다.

 

 

“하느님 사랑은 모든 한계보다 더 위대하다”

교종, 5월 5일 불가리아 소피아 광장에서 미사집전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5일 불가리아 소피아 알렉산드르 1세 광장에서 부활 제3주일 미사를 집전했다. 교종은 강론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 자신을 선사하시며, 부르시고 놀라게 하시는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강론 내용.

우리 제자들의 삶은 ‘세 가지 놀라운 사실’로 표시됩니다. 곧, 하느님께서 부르시고, 놀라게 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21,1-19)은 티베리아스 호숫가를 배경으로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화를 들려줍니다. 베드로는 부활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돌아가시는 것을 목격한 후 어부였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고통과 낙심의 무게, 심지어 배신의 무게까지 제자들의 마음 안에서 제거하기 힘든 돌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고통과 죄의 무게 아래 상처를 입었습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이 그들 마음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겁니다. 말하자면 ‘과거에 대한 향수의 유혹’, ‘모든 것을 체념하게 만드는 무덤의 심리학’이 이기는 듯 보인 것입니다. ‘회색의 실용주의’가 스며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경우처럼 바로 그 실패의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오십니다. 예수님은 아무 문제없는 사람, 낙심이나 죄, 혹은 한계 없는 사람들을 만나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만나고, 걸으라고 초대하기 위해 죄와 낙심에 직면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께서는 이같이 지치지 않고 부르십니다. 사랑의 힘은 모든 예상을 뒤엎고 다시 시작할 줄 압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항상 가능성을 주시려고 애쓰십니다. 우리에게도 그같이 행하십니다. 그분과의 사랑의 역사를 다시 쓰도록, 새로움이신 그분 안에 다시 뿌리를 내리도록 매일 우리를 부르십니다. 매일 아침 우리가 있는 곳을 찾아오셔서 ‘일어나도록, 그분의 말씀으로 다시 살아나도록, 땅을 위해서가 아닌 하늘을 위해, 죽음의 낮음을 위해서가 아닌 생명의 높음을 위해서 창조되었음을 믿고 위를 바라보도록’ 초대하십니다. 아울러 살아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지 말라고 초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빈 그물을 들고 있던 제자들과 만나시자 그들에게 보기 드문 제안을 하셨습니다. 의심과 불신 ‘늘 그 모양’이라는 것 이면에 숨겨진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과감함을 주시면서 정체된 폐쇄를 부수시는 놀라움의 주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물만 던질 게 아니라 역사의 호숫가에 우리 자신을 투신하고 삶을 바라보며, 당신의 눈길로 다른 이들과 우리 자신을 바라보도록 초대하실 때, 우리를 놀라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죄 안에서, 다시 일어서야 할 자녀들을 보십니다. 죽음 안에서 부활해야 할 형제들을 보십니다. 절망 안에서 위로해야 할 마음들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삶을 바라보고 삶을 이끌고 나가기를 두려워할 때조차, 주님께서는 이런 여러분의 삶을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놀라게 하시는 것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분의 언어입니다. 이것이 바로 매일 우리가 새롭게 하도록 초대받은 우리의 힘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한계나 죄보다 더 위대하다는 신뢰를 갖게 하는 부르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큰 고통과 장애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께서 사랑이심을 이해하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있어 사랑이 그분의 이름이 아니라고 선포하며 증언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며, 부르시고 놀라게 하시는 사랑이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께서 과거 우리를 그분과 함께 미래를 향하도록 하셨음을 바라보고 발견하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성공과 실패 가운데 그물을 던지라고 우리를 초대하기 위해, 항상 우리를 부르신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이가 아니라 정신적 힘으로 젊은 교회, 젊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언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 사랑은 공동선을 위해 싸울 준비를 갖춘 존재, 가난한 이들의 봉사자들, 사랑과 봉사로 변혁하는 주인공들, 피상적이고 소비적인 개인주의의 병리학에 저항하는 역량을 갖춘 이들이 되도록 우리를 이끌고 부추깁니다.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사랑에 빠진 이들이고, 복음의 살아있는 증인들입니다. 이 땅이 많이 필요로 하는 성인들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젊은이들이 떠나지 않도록 지원하십시오”

교종, 불가리아 국민과 종교지도자들에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 5일 소피아 브로프 광장에서 불가리아 국민과 종교지도자들을 상대로 연설했다. 광장의 이름인 브로프는 교종이 사상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은 체제의 가혹함을 겪은 인물로 강조한 정치가이며 저항가다. 교종의 연설은 공산주의가 끝나고 30년이 지난 현재의 불가리아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 또 한편 최근 10년 동안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동시킨 이주문제와 불투명한 미래를 신뢰하지 않는 결과로 대부분 유럽인구가 혹한의 장막처럼 줄어든 ‘인구통계학적 겨울’에 따른 출생률 저하문제를 걱정했다. 교종 연설 내용.

불가리아는 다양한 문화와 문명이 만나는 장소, 동유럽과 남유럽의 다리, 인접한 동양으로 열린 문입니다. 고대 그리스도교가 뿌리를 내린 땅, 지역과 국제사회의 만남을 돕는 소명이 자라나는 땅입니다. 특이성을 존중하는 이곳에서 다양성은 갈등의 원인이 아닌 하나의 기회이자 풍요로움으로 보았습니다. 불가리아는 전쟁과 대립,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존의 새로운 기회나 단순히 안전한 피난처를 찾기 위해, 유럽대륙의 더 부유한 지역으로 어떻게든 들어가기 위해 국경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의 현상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나라 정치 지도자들이 수년 동안 특히 젊은이들이 떠나지 않는 조건을 모색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이 길을 계속하도록, 젊은이들이 신선한 에너지를 투자하고 조국에서 가치 있는 삶이 허락되는 상황을 찾으면서, 개인과 가정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끔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이루어지도록 격려합니다. 이주의 비극을 알고 있는 여러분에게, 저는 여러분의 전통에 따라,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눈과 마음을 닫지 말고, 손을 거두지 말 것을 제안합니다. 불가리아 네오피트 총대주교님과 불가리아 정교회 전체 신자들과 가톨릭교회 주교, 사제, 수사, 수녀 모든 구성원들에게 신앙을 증거하고 삶의 여정과 그리스도인의 증언을 격려합니다. 지난 2월 아부다비에서 서명한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공동선언을 상기하면서 유대인 공동체와 무슬림들 모두 평화의 가치에 굳게 연결된 사실을 잊지 맙시다. 불가리아 국민들이 보여 준 환대를 기회로 활용합시다. 그래서 화합과 일치를 장려하도록 부르심 받은 모든 종교가 문명, 감성, 다양한 전통간의 매우 중요한 관계를 재건하고 모든 폭력과 강요를 거부하면서, 인간과 인간 존엄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내포된 문화와 환경의 성장을 도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종교를 변질시키고 착취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는 이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2002년 이곳을 방문하신 성 요한 바오로 2세와 이곳에서 10년을 지내다 훗날 교종이 되신 성 요한 23세를 기억합니다. 그분들은 여러분의 나라를 깊은 감사와 존경으로 늘 가슴속에 간직했습니다. 그분들은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가톨릭 신자인지 정교회 신자인지 묻지 않고 오직 불가리아의 형제라고 하면 그의 집은 여러분에게 항상 열려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성 요한 23세 교종님은 당신이 소집하고 첫 번째 회기를 주관하셨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과 형제적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심으로써, 교회일치의 발전에 큰 자극을 주셨습니다. 1968년 이래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축일에 교종이 불가리아 바티칸사절을 만나는 것은 전통이 됐습니다. 두 성인은 슬라브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 특별히 풍부한 열매인 그리스도교적 증거와 성덕 발전의 원천입니다. 유럽의 공동수호자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는 그들의 기도와 재능, 조화로운 사도적 노력으로 우리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1000년도 더 지났지만 그들은 풍요로운 대화의 만남, 화합의 만남, 교회와 국가와 민족들 간 형제적 만남에 영감을 준 이들로 남아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느님께서 불가리아를 축복하시고, 불가리아가 평화로움과 환대함을 간직하게 해주시며, 번영과 행복을 이곳에 베풀어 주시기 빕니다. 거대한 도나우강과 흑해로 둘러싸여, 수많은 세대의 겸손한 노동을 통한 풍요로움으로, 문화와 상업교류에 열려 있으며,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러시아 터키와 굳건한 관계를 맺은 이 땅의 당신 자녀들에게, 희망의 미래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이 여기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신다”

교종, 불가리아 첫영성체 어린이들에 성체성사 통한 친교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6일 불가리아 라코프스키에서 첫영성체를 하는 242명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인 모두를 서로의 형제자매로 이어주는 성체성사를 통한 친교에 대해 설명했다. 라코프스키는 불가리아에서 가톨릭신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이날 첫영성체를 하는 어린이들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장미의 나라’로 부르는 불가리아 지역 곳곳에서 모였다. 교종은 불가리아가 중세시기부터 장미오일과 향수의 원료 생산 제 1위국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표현했다. 강론 내용.

예수님이 여기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성체성사를 통해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신앙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입은 흰옷은 ‘뜻깊고 아름다운 상징’입니다. 여러분은 첫영성체를 위해 갖춰 입은 것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무르길 바라시는 예수님을 모십니다.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생각해 봅시다. 그 기적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어놓은 어린이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어떤 기적들은 어린이 여러분과 같은 마음을 소유해야 볼 수 있습니다. 나눔을 실천하고, 꿈을 꾸며, 감사할 줄 알고, 이웃을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이 그러한 마음입니다. 주님은 바로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그분이 어린이 여러분의 친구들과 가족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기쁨이라는 기적을 선물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첫 영성체 예식은 어린이 여러분들 사이에서 또 여러분과 전체교회 사이에 친교가 이루어진 날입니다. 성체성사가 우리 모두를 형제자매로 이어주는 친교를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증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시며, 예수님께서 우리의 형제이시고, 교회가 우리의 가족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형제자매이며, 우리의 법은 바로 사랑입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교종, 5월 1일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 주님의 기도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 1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진행된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에서 주님의 기도의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에 대해 설명했다. 교종은 이 청원의 뜻이 번역본마다 다르고, 어떤 번역본도 정확히 그 뜻을 드러내지 못하지만 어쨌든 본문을 이해함에 있어서는 ‘인간 삶의 여정을 위협하는 유혹’의 주체가 하느님이 아니시라는 점에는 뜻을 같이한다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주님의 기도’에 대한 교리교육을 이어갑시다. 이제 ‘주님의 기도’ 끝에서 두 번째 청원인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마태 6,13)에 도달했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차분하게 시작됩니다. 우선 하느님의 위대한 사업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음, 우리의 삶을 바라보게 하고, 우리에게 매일 필요한 것, 곧 ‘일용할 양식(빵)’을 청하게 합니다. 이어 이기심으로 자주 오염되는 우리의 대인관계를 다룹니다. 우리는 용서를 청하며, 용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 끝에서 두 번째 청원과 함께,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우리 대화’는 말하자면 드라마의 핵심, 즉 우리 자유와 악의 올가미 사이의 대립영역으로 들어갑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복음서에 담긴 원래 그리스어 표현은 정확한 번역이 어렵습니다. 현대의 모든 번역은 약간씩 불완전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동일합니다. 본문을 이해함에 있어, 인간 삶의 여정을 위협하는 유혹의 주체는 하느님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을 유혹의 함정에 빠지게 하시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종류의 해석은 본문 자체와도 대립되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하느님 모습과도 거리가 멉니다.

‘주님의 기도’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자녀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아버지가 아니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질투하고, 인간과 경쟁하고, 인간을 시험에 빠지게 하는 것을 즐기는 그러한 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한 것은 많은 이교도 신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야고보사도 서간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봅니다. “유혹을 받을 때 ‘나는 하느님께 유혹을 받고 있다’하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고 또 아무도 유혹하지 않으십니다.”(야고 1,13) 아버지께서는 악을 만드시는 분이 아니시며, 생선을 달라는 자녀에게 뱀을 주는 아버지가 아니십니다.(루카 11,11) 그분은 인간의 삶에서 악이 나타날 때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인간 편에서 싸우시는 분이십니다. 항상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아버지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그분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합니다.

시험과 유혹이라는 두 순간은 예수님 삶 안에서 신비스럽게 공존했습니다. 이러한 체험 안에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거의 스캔들과 같은 방식으로 완전히 우리 형제가 되셨습니다. 이 복음대목들은 ‘주님의 기도’를 마무리하는 가장 어려운 청원들이 이미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홀로 남겨두지 않으셨으며, 예수님 안에서 당신께서 극단적 결과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으로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때 우리와 함께 하셨으며, 평생 기쁨과 시험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며, 슬픔과 실패 중에 함께 계시며, 우리가 죄를 지을 때도 함께 계십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이시고 우리를 버려둘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과의 형제애를 거부하고 모든 것과 사람에 대한 절대적 권능을 원하면서 악을 행하려는 유혹을 받는다면,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이 유혹에 맞서 싸우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는 복음서들의 시작대목이 증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무리 가운데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직후 사막으로 들어가셨고 그곳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사탄으로부터 오는 유혹과 함께 예수님 공생활이 시작됩니다. 그곳에 사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왜 옛날이야기인 사탄에 대해 말씀하십니까?” 하지만 복음이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사탄과 대결하셨고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십니다. 마태오 복음에는 예수님과 악마의 싸움이 끝나는 것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이 있습니다.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태 4,11)

하느님께서는 최악의 시험 때도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기도하시기 위해 겟세마니에 가셨을 때 당신의 마음이 형언할 수 없이 괴롭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고독과 홀로 버림받음을 겪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와 책임을 혼자 어깨에 짊어지고 계셨습니다. 시험이 너무 괴롭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당신 자신만을 위해 사랑을 갈구하지 않으시지만 그날 밤 예수님의 영혼은 죽을 것 같은 슬픔을 느꼈던 것이죠. 그래서 당신 친구(제자)들의 연대를 청하십니다.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마태 26,38) 우리가 알고 있듯 제자들은 두려움에 싸여 잠에 빠졌습니다. 고뇌의 시간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당신을 버리지 말라고 청하시지만 사람들은 잠들어 버립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향한 시험을 알 때 하느님께서는 깨어 있으십니다. 우리 삶의 최악의 순간과 고통스러운 순간, 가장 괴로운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며, 함께 싸우시며, 항상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합니다. 당신의 자녀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의 고통과 투쟁의 밤은 예수님 육화의 마지막 봉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고통의 골짜기와 역사를 뒤흔드는 모진 고난 안으로 우리를 찾으러 내려오십니다. 시련의 시간에 우리의 위안이 있습니다. 그 심연의 계곡은 예수님께서 건너가신 이후 더 이상 황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아드님의 현존으로 축복받았음을 아는 것이 우리의 위안입니다. “오, 하느님, 시험과 유혹의 시간을 저희에게서 멀리해 주십시오. 그러나 시험과 유혹의 시간이 올 때, 아버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 십자가의 무게를 짊어지셨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당신 사랑을 신뢰하면서 예수님께서 당신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초대하시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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