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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4월 14-17일)[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시련 속에서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

교종,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 주님의 기도 묵상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 1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 시간을 통해 예수님께서 수난 중에 아버지께 기도하신 말씀들에 대해 설명했다. 교종은 이번 성주간 동안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는, 곧 사랑을 살 수 있는 은총과 아버지께 의탁하는 방법을 알 수 있는 은총, 그리고 하느님과의 만남 안에서 용서하고 용서할 줄 아는 용기를 찾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하자고 말했다. 가르침 내용.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최근 몇 주동안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 대해 묵상하고 있습니다. 파스카 성삼일을 앞둔 오늘은 예수님께서 수난 중에 아버지께 기도하신 말씀들에 대해 살펴봅시다. 주님의 첫 번째 기도는 최후의 만찬 후에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 예수님께서는 영광을 청하십니다. 수난이 눈앞에 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역설적인 요청을 하십니다. 어떤 영광에 대한 것입니까? 성경에서 영광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심을 가리킵니다. 또한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구원적 현존의 확실한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현존과 구원을 결정적인 방법으로 나타내 보이시는 분이십니다. 이를 파스카를 통해 보여주십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셨으며, 영광스럽게 되셨습니다.(요한 12,23-33 참조) 그곳에서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남아 있는 마지막 베일을 벗기고 전례 없이 우리를 놀라게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이 전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사랑은 모든 한계와 척도를 넘어서는 순수하고 열광적이며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기도를 우리의 기도로 만듭시다. 우리 눈에서 베일을 없애주시길 아버지께 청합시다. 왜냐하면 성주간 동안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하느님을 아버지가 아니라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자비로우신 구세주라기보다는 엄격한 심판관으로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부활절 때, 우리의 사랑을 요구하는 사랑의 겸손 안에서 자신을 보여 주시며 우리와의 거리감을 없애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처럼 주님을 위해, 사랑으로 행하는 모든 것을 살고 마음을 다해 모든 것을 할 때, 우리는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콜로 3,17 참조) 참된 영광은 사랑의 영광입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광은 세상의 영광과는 반대입니다. 세상의 영광은 존경받고, 칭찬받고, 찬사를 받고, 환호를 받을 때 옵니다. 내가 관심의 중심에 있을 때 오는 겁니다. 반면, 하느님의 영광은 역설적입니다. 박수소리도 없고 청중도 없습니다. 중심에 내가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절 때 성자께서 성부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동안 성부께서도 성자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그 누구도 자신을 영광스럽게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어떤 영광을 위해 사는가? 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혹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기만을 원하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것뿐 아니라 주기도 원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후에 겟세마니 동산에 가십니다. 그곳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은 잠시도 깨어있지 못했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 군인들과 함께 오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두려움과 고뇌’를 느끼기 시작하셨습니다. 자신을 기다리는 것들에 대한 고뇌입니다. 배신, 경멸, 고통, 실패에 대한 고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슬퍼하시며, 깊은 심연 속에서, 절망 속에서, 아버지께 가장 부드럽고 달콤한 말인 “압빠(Abba)”, 곧 아빠라고 부르면서 청하십니다.(마르 14,33-36 참조) 예수님께서는 시험 중에 아버지와 포옹하라고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 안에서는 고통 중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 때의 기도는 위로와 신뢰와 위안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적인 절망 안에 있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홀로 있지 않으십니다. 아버지와 함께 계십니다. 반면, 우리는 우리의 겟세마니에서 예수님처럼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하느님께 의탁하거나 우리의 진정한 선익인 하느님의 뜻에 의탁하기보다는 자주 혼자 있기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시험 중에 우리 자신 안에만 갇혀 있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서 터널을 파는 것이고, 점점 더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오직 한 방향을 향한 고통스러운 내향적 여정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입니다. 고독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기도는 관계이고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의탁하십니다. 느끼는 것을 아버지께 드리며, 투쟁 중에 아버지께 기대시면서 아버지께 모든 것을 의탁하십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겟세마니가 있습니다. 그것을 갖고 있거나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의 겟세마니에 들어갈 때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것을 기억합시다. “아버지”라고 기도하는 것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세 번째 기도를 드리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악독했던 사람들,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복음은 이 기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에 일어났다고 명시합니다. 그 순간은 아마 예수님의 손목과 발에 못이 박히는 가장 심한 고통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고통이 절정에 이른 여기서 사랑도 절정에 이릅니다. 용서에 이릅니다. 곧, 악의 고리를 파괴하는 또 다른 힘의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성주간 동안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다음과 같은 은총을 청합시다. 곧, 매일매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은총, 사랑으로 사는 은총입니다. 시험 중에 아버지께 의탁할 줄 알고, 아버지께 “아빠”라고 말할 수 있으며, 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용서하고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이 두 가지는 함께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용서할 수 있는 힘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젊은이들은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읽을 것”

교종, 성지주일 삼종기도에서 평화 위한 묵주기도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 14일 주님수난 성지주일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 ‘세계 젊은이의 날’(GMG)을 지내는 젊은이들에게 인사하며 젊은이들을 위한 주교 시노드 후속 교종권고 지침들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라”고 요청했다. 교종은 “평화를 위해 특히 이스라엘 성지와 중동평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자”며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5만여 신자들에게 이스라엘 성지에서 만든 올리브나무 묵주를 선물했다. 말씀 내용.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의 수많은 동년배 친구들이 함께 참여한 주교 시노드의 결과물이자 최근 발표된 교종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Christus Vivit)의 지침들을 일상생활에서 잘 살아내고 여러분의 것으로 삼으라고 초대합니다. 이 교종권고 안에서 여러분 모두는 형제들에 대한 봉사, 신앙 안에서 성장하는 여정, 자신의 삶을 위한 풍성한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과 모두에게 다시금 호소하는 바입니다. 평화를 위해, 특히 이스라엘 성지와 중동의 평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칩시다. 우리 모두 성주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길 동정 마리아에게 간구합시다.

 

 

교종, 베네딕토 16세 생일축하와 부활인사

 

프란치스코 교종은 성주간 시작인 4월 15일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종에게 부활인사를 겸한 생신축하차 바티칸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을 방문했다. 공보실 지소티 임시 대변인은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번 만남을 통해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종의 92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특별한 애정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2005년 78번째 생일을 맞은 지 3일 만에 교종으로 선출됐으며 당시 그는 나이가 가장 많은 교황 중 하나가 됐다. 교종 사임 당시 그는 85세로 재임기간은 7년 315일이다.

 

 

교종,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애도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4월 15일 노트르담 대성당을 집어삼킨 끔찍한 화재로 충격에 빠진 프랑스 신자들과 파리시민들을 비롯해 화재에 대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전했다. 공보실 지소티 임시 대변인은 4월 16일 트윗 메시지를 통해 프랑스 국민들과 가까이 있겠다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약속을 전했다. 그는 앞서 화재발생 직후 15일 저녁에도 메시지를 통해 프랑스와 전 세계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데 대한 바티칸의 충격과 슬픔을 전한 바 있다. 4월 15일 저녁, 860년 역사를 지닌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규모 화재가 발생해 목재 지붕과 첨탑이 무너져 내리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소방대원 수백 명의 노력 끝에 화재는 12시간 만에 진화됐으며 작업 도중 소방대원 1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번 화재는 성당지붕과 첨탑 보수공사 중 발생한 것으로 첨탑 주변에서 불길이 시작됐다. 파리지방 검찰청은 화재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로이터 통신은 경찰 관계자를 인용 이번 화재가 실화일 것으로 추정한다고 전했다. 이번 화재로 프랑스 고딕양식의 대표 건축물인 노트르담 대성당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지만 성당의 외벽, 서쪽 정면, 쌍둥이 종탑, 1730년대에 제작된 대형 파이프오르간 등은 불길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외도 성당 내 다수의 보물이 살아남았다. 노트르담 주임사제 패트릭 쇼베 몬시뇰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 때 쓰셨다고 전해지는 가시면류관과 13세기 프랑스왕 성 루도비코가 착용한 것으로 알려진 튜닉 등도 무사하다고 전했다.

이번 화재소식으로 전 세계에서 연대와 슬픔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프랑스 주교단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영향력이 수도 파리를 넘어 확장된다며 앞으로도 가톨릭 신앙의 주요한 상징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성주간의 충실한 여정과 그리스도 부활의 희망을 앞두고 있는 지금,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의 반석이 되어 주길 부탁했다. 뉴욕대교구장 티모시 돌란 추기경은 뉴욕시민들은 파리시민들과 슬픔 안에서 일치를 이룬다고 전했다. 맨해튼 성패트릭 대성당 기도회에서 그는 “예수님께서 그러하시듯이, 죽음은 생명을 가져온다는 것을 이번 성주간은 가르치고 있다”며 오늘의 죽음이 부활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고 말했다. 이집트 콥트정교회 타와드로스 2세 교종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기념물 중 하나라며 이번 화재는 인류의 큰 손실이라고 슬퍼했다.

 

 

[사설] 92세 전임 교종과 두 교종을 일치시키는 “참회의 길”

 

올해 92세를 맞이한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종의 생신은 미성년자 성학대 주제에 관한 그의 ‘메모’들을 모아 독일의 한 월간지에 기고한 글로 인해 격렬한 논쟁이 수반되었다. 기고문에서 베네딕토 16세는 무엇이 성학대 재앙에 대한 올바른 해답인지를 물었다. “최근 들어 우리와 세상 전체를 위협하는 악에 대한 해독제는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를 맡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는 인간의 손으로 세워진 우리가 만든 교회 안에는 어떤 희망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성찰한다면 우리가 만든 또 다른 교회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일종의 정치적 도구로만 간주되고, 성직자들에 의해 자행된 많은 성학대 사례로 인한 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심지어 교회가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그리고 새로운 방식에서 교회를 우리 손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든 교회는 그 어떤 희망도 보여 줄 수 없습니다.” 

전임 교종의 생일을 기념하면서 베네딕토 16세와 후임자 프란치스코 교종이 미성년자 성학대와 성추문에 대해 취했던 접근방식을 강조하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이는 매스미디어의 관심에 치우치거나 과장된 답변이 아니며 하나의 슬로건으로 축소되는 것도 아니다. 비록 필요한 것이지만 체제를 신뢰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새로운 규범이나 혹은 필수불가결한 미성년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훨씬 더 세밀하고 신중한 프로토콜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이다. 이 모든 것은 이미 확정됐거나 혹은 확정과정 중에 있는 도구들이다. 처음에는 베네딕토 16세가, 나중에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제시한 답변은 심오하면서도 간결한 그리스도교적인 답변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문헌을 다시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세 문헌은 바로 두 명의 교종이 성추문에 대한 긴장이 고조되었던 순간 아일랜드, 칠레, 그리고 전 세계의 하느님 백성에게 보낸 서한이다.

지난 2010년 3월, 베네딕도 16세는 아일랜드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각 범죄자들에 대해 올바른 방식으로 적용돼야 하는 척도는 본질적인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현 세대와 미래의 세대가 우리의 공통된 신앙의 선물을 보석처럼 만들도록 영감을 불어넣기 위한 새로운 비전이 필요합니다.” 그는 이러한 지향으로 2011년 부활까지 1년 동안 금요일 참회에 여러분 모두 전력하라고 초대했다. “아일랜드 교회를 위한 치유와 쇄신의 은총을 얻기 위해 여러분의 단식, 기도, 성경봉독, 자선활동을 봉헌하십시오. 화해의 성사(고백성사)를 재발견하고 하느님 은총의 변화의 힘을 더 자주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격려합니다.” 그는 성체조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기도, 성체조배, 단식, 참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회는 외부의 적들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가장 큰 공격이 내부의 적과 교회의 죄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아울러 제시된 해결책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도우심과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참회하는’ 교회와 신앙의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겸손, 고통, 부끄러움, 뉘우침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희망을 갈구하는 그리스도교적이고 복음적인 시각이다.

8년 뒤 2018년1월1일, 미성년자 성추문으로 충격을 받은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교종의 또 다른 서한이 발표됐다. 그것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칠레인들에게 보낸 서한이다. 교종은 이렇게 썼다. “제가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기도를 청하는 것은 형식적인 요청이나 선의의 제스처가 아니라 그와 반대로 제 자리를 찾아야 되는 것에 대한 주제를 제안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곧, 하느님 백성의 조건입니다. 교계제도 자체가 스스로 이루는 쇄신은 성령께서 바라시는 변화를 낳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포함된 교회의 변화를 다 함께 증진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회가 홀로 세워지지 않으며 스스로를 신뢰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처 입은 교회는 중심에 나서지 않고 완전하다고 믿지 않으며, 자신의 악을 숨기거나 감추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을 그 중심에 모십니다.” 마침내 2018년 8월 20일, 프란치스코 교종은 미성년자 성학대에 관한 주제로 하느님 백성에게 보낸 서한을 발표했다. 

교종이 이러한 주제에 관해 전 세계 신자들에게 보낸 첫 번째 서한이다. 하느님 백성에게 했던 새로운 호소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종이 제시한 것과 동일한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기도와 참회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모든 거룩하고 충실한 하느님 백성이 주님의 명령을 따라 기도와 단식의 참회를 수행하도록 초대합니다. 이는 우리의 양심을 일깨우고 모든 형태의 학대에 대해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돌봄의 문화를 만들려는 우리의 연대와 투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참회와 기도는 다른 이들의 고통에 눈길을 주고 마음을 열게 하며, 흔히 그러한 악들의 뿌리가 되는 권력과 재산을 향한 욕망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즉 프란치스코 교종은 ‘주님수난 성지주일’ 강론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승리주의에서 멀리 떨어진 길, 자신의 약함과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애쓰는 강한 교회이자 주인공이 되려는 교회의 이미지에서 멀리 떨어진 참회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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