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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 난민 아이의 천진한 눈으로 바라본 비열한 거리[주말영화 - 정민아]
'가버나움', 나딘 라바키, 2019. (포스터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주))

며칠 전 낭보가 전해졌다. 아랍 여성 감독 최초로 2월에 열릴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이다. 일본 영화 '어느 가족'과 레바논 영화 '가버나움'의 후보작 지명으로 인해 아시아 영화 2편이 포함되어 총 5편을 후보작으로 선정하는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한국 영화 '버닝'이 아깝게도 최종 선정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아랍 여성 감독의 이 영화가 포함되었다는 점은 아랍 영화계, 그리고 여성 영화계의 한 걸음 진보로 반가운 일이다.

우리에게는 꽤나 낯선 레바논 영화라니, 그것도 차도르로 인식되는 아랍 여성이 만든 영화라니. 궁금증에 앞서 이슬람 국가의 영화가 재미와 힐링이라는 영화의 중요한 가치를 만족시켜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각성 및 인식 체계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실적 삶의 한 단면을 그대로 카메라로 잡고자 했던 2차대전 전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 철학이 21세기에 현대적으로 계승된 영화로 보인다.

이슬람 국가로 통칭되는 중동의 여러 나라와 달리 레바논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동등하게 세력을 유지해 왔다. 히잡 착용에 관대한 나라로 레바논 여성들은 히잡을 쓰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나라에서는 25년에 걸친 내전에 15만 명의 이상의 희생자를 냈다고 하며, 지금은 4명 가운데 1명이 난민이다.

레바논 빈민가, 시리아에서 온 난민, 아동 노동, 미성년 강제결혼, 아프리카인 불법체류자, 불법입양, 아동 매매, 이 단어들이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동안 계속해서 자리를 바꾸며 화두로 떠오른다. '가버나움'은 구성된 이야기, 즉 픽션이지만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척박한 현실을 바탕으로 구성된 영화다. 영화적 환영이 주는 안도감, 가령 잔혹한 장면을 보면서 “저건 만들어진 이야기야”라고 되새기며 거리를 두고 즐기는, 그런 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레바논의 난민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영화 오프닝은 충격적이다.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라고 법정에서 당당히 말하는 어린 소년의 눈망울은 진지하다. 이유는 ‘그들이 자신을 낳았기 때문’이란다. 이어서 영화는 플래시백을 통해 주인공 소년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의 최근 생활을 보여 주는 관찰식 카메라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 소년의 눈높이에 맞춰진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자 마음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아픔이 솟아오른다.

'가버나움'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주))

제목인 ‘가버나움’은 예수의 기적이 행해진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어느 도시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곧 멸망하리란 예언을 들었고 6세기에 퇴락한 곳이다.(가파르나움) 지금은 ‘혼돈과 기적’을 뜻하는 단어로 쓰인다. 영화 '가버나움'의 공간인 베이루트 빈민촌은 지옥도인 동시에 기적이 행해지는 공간이다. 주인공인 12살 소년 자인과 그의 친구들이 지금은 혼돈 속에 내던져 있지만, 그들이 희망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진정 기적을 만들어 내길 간절히 바라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게 된다.

잘생긴 외모가 가난과 피로의 때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 보이는 성숙한 소년의 눈높이에서 우리는 수만 가지 인간사를 목격한다. 돈밖에 모르는 무책임한 어른, 생존의 아우성 속에서도 인간애를 놓지 않는 사람, 깜찍하게 귀여운 아기, 일해야 하지만 놀고 싶은 아이들, 결혼이 뭔지도 모른 채 신부가 되어야 하는 소녀, 비루함 가운데에서도 생겨나는 웃음과 즐거움, 불법거래 시장, 만화, 놀이동산. 우리에게 익숙하거나 혹은 몰랐던 이 풍경들은 소년의 시각에서 새롭게 또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레바논을 대표하는 여배우이며 감독인 나딘 라바키는 난민 문제와 경제 위기로 고통받는 베이루트에서 4년간 거리의 아이들을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배우들은 모두 길거리 캐스팅이다. 이 영화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연기를 하게 된 자인 알 라피아는 실제로 출생증명서 없이 투명인간처럼 살아가는 소년으로 배달 일을 하다 자신의 이름을 딴 주인공 자인 역을 맡았다. 아프리카 불법체류 노동자 여성인 라힐 역의 배우는 영화에서 불법체류자로 체포되는 장면을 찍은 다음 날, 실제로 당국에 체포되었다고 한다. 실제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캐스팅은 영화가 현실 그 자체로 보이는 이유이며, 관객이 영화를 구경거리로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세상을 함께 고민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버나움'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주))

불법체류자 신세여서 신분증은커녕 출생증명서도 없는 가정에서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알아서 자란다. 아이들은 학교는 꿈도 꾸지 못하는 와중에 길거리에서 주스를 만들어 팔거나, 자신보다 더 큰 물건을 배달하며, 때로는 마약 제조에 힘을 보태기도 한다. 아이들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비정한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고된 노동과 가난이 일상인 가운데에도 아이들이니까 이들은 함께 부비고 논다. 그러던 중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가 초경을 치른 뒤 슈퍼마켓 주인에게 팔려 가듯 결혼하자 자인은 더 이상 부모를 믿을 수 없다. 집을 떠난 소년은 우연히 만난 아프리카인 불법체류자 라힐을 만나고 그녀의 아기 요나스와 형제처럼 생활하게 된다.

복잡하고 지저분한 빈민촌을 구석구석 보여 주는 카메라로 영화는 자칫 ‘빈곤 포르노’라는 혐의를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가난한 나라의 빈곤함을 선정적으로 담아내어 상업성을 노리는 비윤리적인 영화들의 연장선상에 놓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는 진정성의 깊이로 증명될 것이다.

이 영화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주연배우 자인 알 라피아는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잠들어 버리는 천진한 모습으로 칸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출생증명서가 없는 이 소년은 영화 출연 이후 인생 역전을 경험했다. 영화 이후가 더 큰 감동을 전한다. 끝까지 몰입도를 높이며 조마조마하다가 그들의 인생 역전 드라마를 확인하는 재미 또한 영화를 보는 기쁨이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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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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