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 정민아]

'기생충'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바른손이앤에이)

‘어느 가족’, ‘더 스퀘어’,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영화들이다. 우리는 황금종려상 영화들에 열광하지도 않으면서, 황금종려상을 열렬히 기다려 왔다. 칸 황금종려상이 개인의 영광일 뿐, 그리 호들갑 떨 일이 아니라고, 한편의 열뜬 환호를 쿨하게 취급해 버리는 쏘 쿨한 언급들이 있지만, 칸의 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있고 황금종려상은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알리는 상징적 기호로 작동하고 있다. 일본은 4회나 가져갔고, 중국, 타이, 이란도 있고, 터키, 그리스도 있는데 우리는 없었다. 어쨌든 지난 주말 낭보에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렸다.

내가 숨쉬는 이 시대에 황금종려상이 나와서 다행이다. 봉준호 개인의 영광이 분명하지만, 이는 그동안 그가 잘 쌓아 온 영화 행보에 대한 신뢰의 표식이며, 한국 관객과 한국영화산업에 주어진 큰 선물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영화 제작 100주년이 되는 해에 말이다.

칸의 수상작 면면은 세계영화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 탑 위에 한국영화, 봉준호 감독, ‘기생충’이 하나의 돌을 올렸다는 점은 한 개인의 영광을 넘어 한 공동체의 기쁨이다. 그리고 이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기생충'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바른손이앤에이)

신드롬이 될지도 모를 이 영화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 할수록 그것은 스포일러를 하나씩 까발리는 것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호기심을 가지고 영화를 접할 관객이 퍼즐을 하나하나 풀어 가는 지적 즐거움을 깨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반전으로 가득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스토리의 크고 작은 고비마다 매번 허를 찌르면서 펼쳐지는 사건의 연속들은 실타래처럼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영화의 내용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딱 한 줄 “전원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 가는 가족희비극”,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극장 문을 열 때 더욱 큰 선물을 얻어 갈 수 있다. 유머 뒤에 비극을 가려놓는다는 봉준호의 전략은 이번에도 쭉 이어진다. 더욱 치밀하고 거대하게.

부자와 빈자가 한 공간에 모여들어 공간을 분할한 채로 각자 모였다 흩어지길 반복하고, 우리는 왁자지껄한 소동극 한 판을 낄낄거리며 구경하다가 이내 아픔으로 가슴이 쏠려 올 때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하층민과 상류층은 각자 선을 긋고 절대 그 선을 넘어서지 않은 채 존재하지만, 가끔씩 그 선을 넘어 서로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과외교사, 가정부, 운전기사들은 보았지만 못 본 척하며 이내 자신의 지하 방으로 내려간다. 사람들은 상류층과 하층민 간, 그리고 각 계급의 내부에서도 서로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이 된다. 물, 돌, 인디언, 모르스 기호, 햇빛 그리고 대저택 공간의 거실과 지하, 이 모든 요소들은 상징적으로 활용되며 서사의 유연한 흐름 속에서 춤을 춘다.

'기생충'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바른손이앤에이)

웃기고 슬픈, 파토스의 영화이자 지금 여기 대한민국 자본주의에 대한 우화다. 한국 문화콘텐츠와 한국 자본, 한국 예술가와 한국 기술의 집합체인 ‘기생충’은 너무나도 한국적인 영화지만, 신자유주의 글로벌리즘을 살아가는 지구 어디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따라갈 필요가 없이, 우리가 잘하는 것을 우리의 시각으로 펼쳐 낼 때, 그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불가능한 꿈을 꾸었던 봉준호 이후 봉준호 키즈들이 만들어 낼 한국영화 200년을 향한 움직임이 기대가 된다. 한국영화를 꾸준히 사랑해 왔던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축하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 모두에게 축배를!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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