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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북', 흑인 보스와 백인 운전사 조합이 이상하게 보이던 시절의 유별난 이야기[주말영화 - 정민아]
'그린 북', 피터 패럴리, 2019. (포스터 제공 = CJ 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의 배경은 1962년 미국이다. 그리고 장르는 흑인과 백인, 두 사람이 미국 전역을 도는 코미디 버디 로드무비다.

1960년대 초 미국은 이른바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고 젊은 대통령이라 칭해지던 존 케네디가 대통령이 된 시절이니, 인종이나 성별 문제가 획기적으로 나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럴 리 만무했다. 그때에도 흑백분리정책이 버젓이 활개 치고 있었다. 버스에서 흑인은 뒷자리에 앉아야 했고, 식당에서 흑인은 출입구나 화장실 옆에 앉았다. 백인전용 식당에 들어간 흑인 청년 네 명으로 인해 촉발된 일명 ‘싯인'(sit-in, 백인 식당에 들어가 앉아 주문하기) 운동이 1960년에 처음 일어났고,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리더로 한 흑인 민권운동이 1963년이 되어야 조직적으로 미 전역에서 일어났으니, '그린 북'의 배경은 두 역사적 사건 사이에 놓인다.

운명적으로 두 남자가 만난다. 뉴욕 브롱크스로 대가족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인 한 사나이는 나이트클럽에서 거친 일을 하며 가끔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며 가족을 부양한다. 또 다른 남자는 맨해튼 한복판, 부자들만 다니는 카네기홀 바로 위층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는 고독한 피아니스트로 품위와 우아함이 몸에 배어 있다. 거친 악센트가 무학임을 드러내는 백인과 정확한 상류층 영어로 발음하는 유식해 보이는 흑인. 당시로서는 꽤나 이상한 조합이다. 가족, 교육, 부, 취미, 생활 등 전혀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만난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다 일시 휴직을 하게 된 토니(비고 모텐슨 분)는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일할 곳이 필요하던 중 유명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 박사(마허샬라 알리 분)의 운전사 자리를 얻는다. 미국 전역으로 연주 여행을 떠나게 된 셜리는 흑인인 자신을 보호해 줄 거칠고 든든한 백인 운전기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린 북'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CJ 엔터테인먼트)

이 간단한 로그라인에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던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89)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영화는 흑인 운전사와 백인 노인 여성의 로드무비를 그린 휴먼 코미디로 인종 문제를 유연하고 훈훈하게 다루었다. 그런데 '그린 북'은 그와 같은 설정을 뒤집는다. 백인 운전사와 흑인 고용주. 그와 같은 일이 1960년대 초에 가능했을까?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다는 사실. 영화는 실화를 기초로 한다. 운전사인 토니의 아들 닉 발레롱가가 아버지의 특별했던 여행과 더욱 특별했던 우정을 기리기 위해 시나리오를 썼다.

제목인 ‘그린 북’은 지금은 골동품이 되어 버린 것으로, 흑인 여행자를 위한 안내 책자인데 (흑인이 갈 수 있는) 숙소와 식당 정보를 담고 있다. 지금은 없어진 유물이지만 저 시대 흑인 여행자에게 그린북은 여행 필수품으로서, 영화에서는 흑과 백을 분리했던 당시를 상기하는 중요한 소품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가 삐걱거린다. 토니는 흑인 고용주의 명령을 마뜩잖아 하고, 셜리는 거칠고 제멋대로인 토니가 거슬린다.

그러나 두 사람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남부로 향할수록 점점 더 셜리를 ‘재주 좋은 흑인 노예’ 취급하는 백인 사회의 뻔뻔함이다. 남부를 거쳤다가 북부로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달라져 있을 것인가. “당신네 사람의 음악”인 로큰롤을 토니는 셜리에게 들려 주고, 셜리는 토니가 아내에게 쓰는 편지에 문학적 메타포로 소통의 멋을 일깨워 주며 서로 돕고 함께 사는 것을 여행 과정에서 깨닫는다.

'그린 북'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고서 교훈을 섣불리 주입하려 들지 않는다. 많은 갈등이 드러나지만, 이 갈등이 두 사람의 개과천선으로 봉합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흘러간다. 두 사람 모두 약점과 문제점을 가진 인간이다. 다른 형태의 차별의식을 두 사람은 가지고 있다. 토니가 노골적 차별주의자라면, 셜리 또한 자신이 속한 인종을 부끄러워하는 내면이 하얀 사람이다. 도덕적이지 않지만 가족만큼은 살뜰하게 보살피는 토니,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하지만 스스로 고립의 길을 쌓은 셜리. 그렇게 문제적 인간 두 사람이 만나 남부라는 거대한 장벽 속에 깊이 들어갔다 다시 돌아온 집에서는 어떤 결말이 기다릴까.

이 영화를 만든 피터 패럴리 감독은 형제가 공동연출을 하면서 '덤 앤 더머'(1994),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998)와 같은 화장실 유머의 대표 주자로 알려진 인물로 오랫동안 할리우드 상업영화계 정상급 위치에서 활동해 왔다. 그랬던 그가 이 엄청난 휴먼 드라마로 자신의 연출 활동에서 방향 선회를 하고 있다. 화장실 유머가 아니라 날카로운 블랙유머, 그리고 인간미와 주제 의식과 함께 시대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깊이 있는 시선이 담긴 영화를 내놓으며 다시 제2의 황금기를 구가하게 될 것 같다.

이 작품은 7일 열린 골드글로브에서 뮤지컬 & 코미디 부문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앞으로 치러질 아카데미 시상식의 강력한 작품상 후보작 중 하나다. 무엇보다 '반지의 제왕'의 멋있고 아름다운 왕 아라곤에서 일대 변신한 비고 모텐슨과 '문라이트'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마허샬라 알리는 최고의 앙상블 연기를 펼치고 있어, 누가 남우상을 받게 될지는 최고의 관전 포인트다.

그러나 그러한 거창한 레테르보다는, 영화를 보고 난 뒤 편지 한 장 쓰고 싶어지고, 프라이드치킨과 피자를 양손에 들고 실컷 먹고 싶게 만드는 맛있고도 사랑스러운 작품이라는 점이 더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그린 북'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CJ 엔터테인먼트)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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