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트라우마는 보지 않으면 당신에게 반복된다김승섭 교수팀 등,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실태조사 발표

심리치유센터 '와락'과 고려대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의 배우자들이 국가 폭력이 자행한 정리해고 사태를 겪으며 건강과 심리적으로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를 조사하고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고려대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연구팀은 앞서 지난 2015년에 쌍용차 해고자와 복직자 142명의 건강 상태를 조사했다. 이번에는 해고자와 복직자는 물론 그들의 배우자를 포함해 국가인권위원회와 와락의 협력 사업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와락의 권지영 대표는 “왜곡된 사실이 하나씩 밝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그때를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은 가족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라며 “쌍용차 정규직은 좋은 일자리였고 그런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지난 10년간 당사자와 가족들이 겪은 고통을 조사하고 확인하는 일은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승섭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배우자 전체의 32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해고자의 아내는 48퍼센트가, 복직자의 아내는 20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같은 나이 대 일반 여성들과 비교했을 때 해고자 아내는 8.6배, 복직자 아내는 3.7배 자살생각 비율이 더 높다. 우울증상도 일반 여성에 비해 해고자 아내는 8.2배, 복직자 아내는 5.2배 높게 나타났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로 해고노동자들은 사회경제적으로 고립돼 공장이 있던 평택 지역에서 재취업이 어려웠다. 동네에서도 해고노동자들은 폭력적 집단으로 낙인 찍혀 거리, 공공기관 등에서 차별과 모욕을 경험했다.

특히 김 교수는 정리해고 당시 사측이 “해고된 자와 아닌 자로 갈라 해고자들을 공격하는 전략을 썼는데 경찰이나 국가의 공격은 견딜 수 있어도 어제까지 동료였던 이들의 공격은 견딜 수 없었다는 이들의 상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배우자들은 “처음에는 경찰이 사측의 공격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해 도와 달라고 했으나 나중에 보니 회사와 한편이었다는 것에 깊은 배신감”을 경험했고, “뒤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 받은 것과 DNA 시료채취 경험은 국가가 해고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했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해고자들은 깊은 모욕감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배우자 관계 만족도, 가족생활 만족도에서도 작게는 2배에서 크게는 13배에 이르기까지 일반인들보다 만족도가 떨어졌다. 특히 차별을 겪은 장소로 직장과 일터, 거리나 동네가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김 교수는 “비참한 경험을 숫자로 만들어 공유하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쌍용차 해고자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라며 이런 과정이 없다면 “다른 장소와 다른 시점에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심리치유센터 '와락'과 고려대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쌍용차 해고노동자, 배우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수나 기자

조사결과 발표 뒤에는 패널로 참여한 김승섭 교수, 이정아 대표(전 가족대책위 대표), 김정욱 사무국장(쌍용차지부 사무국장), 이상윤 대표(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박래군 상임이사(인권재단 사람), 유금분 상담사(와락치유단)가 발언했다.

이정아 씨는 아이들에 대해 질문 받을 때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 한 번도 제대로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고 울먹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파업이 아니었으면 겪지 않아도 됐을 일들이었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10년의 시간들은 없었던 것처럼 별것 아닌 것처럼 퉁 치고 지나가면 되는 것인지 이명박에게 경찰에게 권력자들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정욱 사무국장은 이 발표자리가 무섭고 힘들다면서 옛 기억을 떠올렸다. 파업 당시 회사가 동료들을 동원해 관제데모를 했는데, 그 속에 “10년 넘게 같이 모임하고 일 년에 두 번씩 가족여행도 다녔던 형님이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내 앞에 서 있는 걸 봤을 때 정말 비참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여전히 범법자다. 우리에게 잘못이 없고 국가가 우리를 짓밟았다고들 말하지만 손배가압류나 낙인은 여전하다”면서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게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다시 일상을 찾는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상윤 대표는 “쌍용차 문제를 볼 때는 해고와 국가폭력이 개인, 가족,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살펴야 한다”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해 희생양을 만들고 그들에게 모든 비난을 덧씌우는 것이 사회적으로 비합리적인 반응을 낳았고 당사자들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끼쳤다”고 짚었다.

그는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어도 삶은 지속되지만 그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면서 “사회가 개인에게 상처나 트라우마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상처는 보상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래군 상임이사는 “많은 이들이 ‘10년이나 지났는데 왜’라고 하지만 지금도 제주4.3 희생자,한국전쟁 때 학살피해자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트라우마를 겪고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국가에 대한 배신감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다”며 “이런 것에 대해 비판하고 정책을 바꿔 나가고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국가에도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금분 상담사는 “쌍용차의 고통은 국가가 겪는 고통으로 사회 전체가 끌어안아야 하는 문제”로 “죽을 때까지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개인의 몫으로 돌려서는 안 되고 해고문제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수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