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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기댈 국가는 없다[예수, 가장 연대적인 사람 - 맹주형]
2017년 12월 19일 KTX 해고노동자 2차 오체투지(서울역-청와대 분수 앞) 모습. ⓒ맹주형

1년이 지났다. 정의 평화 환경(JPIC) 연대 일을 해온 지 1년, 많은 이들을 만났다.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길바닥에서 오체투지하던 KTX 해고노동자들, 시시때때로 반복되는 미군과 국방부, 경찰의 침탈로 긴급 상황을 알리던 소성리 할매들. 폭염 속 국가의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만난 혹독한 조건의 배달 노동자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식수 오염으로 재난선포까지 고려해야 하는 낙동강 녹조를 만났다. 수십 년째 월성 핵발전소 주변에서 살아가며 방사능 물질인 삼중수소의 공포 속에 제발 집값만이라도 보상받고 이주하고 싶다는 나아리 주민들도 만났다. 그리고 국가폭력과 사법살인, 정리해고의 삼중고 속에 돌아가신 서른 번째 쌍용 자동차 희생자 고 김주중 조합원과 남겨진 조합원들을 다시 차려진 대한문 분향소에서 만났다. 그 옆 세종로 공원에서 4000일 넘게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콜트, 콜텍 기타 노동자들도 만났다.

정권이 바뀌면 정의와 평화가 판을 치고 창조질서가 보전되는 세상이 곧 오리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적폐 정권 10여 년의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 4대강 사업으로 훈포상 받은 공무원들은 이미 다른 부서로 옮겨 생존을 꾀하고, 사법부는 변혁 대신 조직의 보신을 택하고 있다. 탈핵정책은 시작조차 못했는데 ‘탈핵’이라는 말이 과격하다 하여 ‘에너지 전환’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며 경제지들은 연일 재생에너지의 문제점을 기사로 쏟아내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흑산도 공항과 제주 제2공항 건설 등 토건 사업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쯤 되면 국가와 자본이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국가와 단일 민족이 근대 이후 역사적 과정에서 만들어진 허구이자 상상의 공동체라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처럼, 허구에 기대하고 그 해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과연 공동선을 실천한 국가와 정부는 우리 시대에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의와 평화의 연대는 무슨 의미인지, 과연 그 연대의 힘은 있었는지 스스로 되물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갔다.

대한문 쌍용차 서른 번째 희생자 고 김주중 조합원 시민 분향소. ⓒ맹주형

얼마 전 5대 종단 종교인들이 모여 우리 시대의 생명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서 사막에 사는 베두인 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베두인 족은 찾아온 손님을 극진하게 모신다. 왜냐면 사막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며, 죽지 않고 찾아온 손님은 나일 수 있기에 극진히 모신다는 것이다. 손님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는 결국 나 자신의 환대요, 생명의 환대다. 때문에 타인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요, 결국 자연과 온 세상의 죽음이 된다.

더 이상 기댈 국가는 없다. 내 스스로 환대의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길, 그리고 내가 만나는 이들과의 연대와 환대를 세상으로 확장시키는 길. 대한문에 있는 고 김주중 조합원, 김득중, 김정욱, 윤충렬, 김선동, 강환주, 세종로 공원 이인근, 김경봉, 대법원 앞 방종운 등 해고 노동자들, 소성리 할매들과 연대자들, 월성 핵발전소 인근 나아리 주민들, 썩어 가고 있는 4대강과의 연대와 환대의 길이 내가 사는 길이요, 모두가 사는 길이다. 그게 하느님나라요, 정토세상이다. 

낙동강 달성보 인근 녹조 현장. ⓒ맹주형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연대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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