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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화해만이 길이다[인터뷰] 떼제공동체 알로이스 레저 원장 수사

떼제공동체 원장 알로이스 레저 수사가 한국을 찾았다. 마침 홍콩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한 그는 한국청년대회에 참여한 청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발길을 돌렸다.

알로이스 수사는 공동체 창설자인 로제 수사의 지명에 따라 2005년 1월 원장직을 승계한 뒤,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청년들과 만나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

한국청년대회 참가자와 함께 하는 떼제 기도모임이 열리는 8월 14일, 알로이스 수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청년들을 만나는 것에 적잖은 기대감을 보이면서, 직전에 열린 홍콩 모임에 대해서도, “큰 기쁨이자 선물이었다. 보편교회의 소중한 체험이었고, 무엇보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과의 긴 인연을 자랑하며, 테제공동체에 매주 한국 청년들이 방문하고 이런 일은 아시아 어느 국가도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는 테제공동체로 향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한국인들 안에는 화해에 대한 열망, 세계를 향해 열린 태도가 있다고 여겼다.

종교와 국가, 인종을 초월한 이들과 공동체를 만들며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테제공동체는 그 시작의 이유와 같이 화해와 용서가 가장 중요한 가치다. 이날 인터뷰를 통해 그는 한국 사회와 청년, 그리스도인과 교회 안에 어떻게 ‘화해’를 싹트게 하고 계속 머물게 할 것인지 말했다.

그는 “용서와 화해의 영성은 매일 살아가야 할 가치”라며, “가정과 교회, 개인의 차원에서도 용서와 화해를 살아간다. 서로 다른 의견이 항상 존재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차이가 점점 굳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이가 있을 때 아무도 배제하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것, 그리스도가 모든 슬픔과 기쁨 안에 함께 한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청년들이 그리스도가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다는 친밀함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그 친밀함, 내밀한 친교가 그들을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낯설고 다른 이들을 환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십자가 위에서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당신 사랑 안에 모으려고 하는 그리스도, 그 안에서 진정한 친교와 일치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믿을 때, 우리는 신뢰 관계를 창의적으로 맺을 수 있는 상상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떼제공동체 원장 알로이스 수사. ⓒ정현진 기자


다음은 알로이스 수사와 주고받은 주요 문답이다.

(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고 절망이 많은 세상에서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도전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알로이스 수사 :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청년들에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성취와 성공에 대한 압박감을 갖고 있고, 그 열망이 경쟁을 유발하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신앙을 더 깊게 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자격에 따라 사랑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은 대가 없이 그저 주어진다는 메시지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하다. 조건 없는 사랑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또 젊은이들은 오늘날 우정을 갈구하고 있다. 성공에 대한 압박에 대해 우정이 균형을 맞춰줄 수 있다. 그래서 교회는 이들에게 우정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많이, 교회는 익명의 사람들이 (각자)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교회는 단순하고 소박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성취, 성공의 논리에 젖어서는 안 된다.

(문) 남북 간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기대와 함께 ‘위장된 평화’라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평화와 화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알로이스 수사 : 떼제에서도 한반도의 소식을 주의깊게 보고 기도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긴장이 고조되면서, 남북의 평화와 화해는 세계를 향한 희망의 징표다.

화해는 항상 일련의 위험을 동반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화해 말고 다른 길은 없다. 복음은 우리가 모든 경계를 넘어서게 하고 또 과거 역사의 상처조차 극복하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역사의 상처 때문에 두려움을 갖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다.

2013년 우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를 기억한다.(떼제공동체는 적십자를 통해 북한은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다) 당시 북한을 방문한 시간은 기도의 시간이었다. (그 뒤) 내적으로 떼제공동체에서도 마음깊이 화해를 향한 한국의 열망에 참여하고 나누고 있다.

북한을 위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그들과 우정의 관계를 나누는 것이다. 북한을 방문한 뒤, 그곳의 몇몇 사람들과 신뢰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고맙다. 아주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계속 신뢰 관계를 맺을 것이다. 그마저 없다면 화해는 불가능하다. 신뢰를 맺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계획이다. 물론 물적 지원도 동반된다. 신뢰는 상호적인 것이고 그 신뢰 안에 이미 복음의 가치가 들어 있다.

(문) 최근 한국에 난민 이슈가 생겼고, 많은 이들이 난민에 대해 배타하는 태도를 보였다. 떼제에서는 오래전부터 난민을 환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난민에 대해 배타적인 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알로이시오 수사 : 난민 이슈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문제다. 다름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다른 문화와 만나는 것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징표다. 복음에서 예수는 모든 민족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고, 그리스도교는 한 순간도 하나의 문화, 한 민족의 것인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다른 문화를 향해서 열어야 한다.

떼제공동체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에 난민을 맞이해 왔다. 최근에는 남수단 난민이 있었다. 물론 우리도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아주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인격적 만남들이 두려움을 줄이고 사라지게 했다.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인격적 만남이 없다면, 난민의 존재는 계속 위협이 된다. 물론 만남이 모든 어려움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전혀 다른 문화의 사람과 통합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물질적인 지원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난민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왜 여기에 왔고, 어떻게 왔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우정으로 들어줘야 한다. 그럴 때, 어려움을 해결할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태도의 필요성은 점점 커질 것이다. 더 많은 난민이 생길 것이고 어떤 장벽도 난민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증명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 신앙의 핵심은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을 위해서 왔다는 것이다. 예수는 이슬람인 난민을 위해서도 죽었다. 예수는 우리에게 난민을 친구로 맞이하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이것은 사회사업이 아니다.

(문) 한국에서도 세대 간 갈등이나 생각이 다른 이들 간 갈등이 심각하다. 그런데 떼제공동체 안에서도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 이방인, 교파가 다른 이들과 일치를 이룬 경험을 나눠 달라.

알로이스 수사 : 그런 경험이 당연히 있다. 우리가 화해를 살아가면 항상 반대에 부딪힌다. 많은 이들에게 부분적 정체성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 종교의 다른 교파들 사이에서 보더라도 점점 더 서로를 필요하다는 발견을 하고 있다. (그런 경험으로) 떼제공동체 안에서 이해와 신뢰가 훨씬 더 커진 것은 사실이다. 다른 교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놀랍게도 이전보다 훨씬 많은 신뢰관계를 체험하고 있다.

지난주 홍콩에서 열린 떼제공동체 모임에 참석한 알로이스 수사. (사진 제공 = 홍콩 떼제공동체)

(문) 인터뷰를 하면서 에큐메니컬/에큐메니즘이라는 단어를 썼다. 에큐메니즘은 여러 교파가 만나고 있는 상태를 넘어 훨씬 역동적이고 광범위한 가치라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날 에큐메니즘의 역할,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보는가?

알로이스 수사 : 우선 갈라진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화해가 없다면, 다른 종교와 함께하는 것은 어렵다. 얼마 전 이슬람과 그리스도인들의 만남 주간을 가졌다. 청년 그리스도인과 젊은 이슬람인의 우정의 만남이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만나면서 알게 된 것은, “우리가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으며, 서로 아주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에큐메니즘 차원에서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다. 우리가 복음에 충실할수록, 깊이 뿌리를 내릴수록 다른 종교에 대해 더 열린 자세를 가질 수 있다. 단순히 섞여있는 혼합주의나 모든 것이 똑같다는 태도는 결코 아니다. 상대방을 진실하게 인정하는 태도다. 종교간 대화는 어쩔 수 없이 아픔도 동반한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상대방과 나눌 수 없다는 아픔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정의 관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나는 불교의 스님들을 만나면서 서로의 믿음의 대상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그런 만남을 통해 상대에 대해 더욱 열리고 동시에 내 자신의 신앙의 뿌리에 대해 더 깊이 천착하는 계기가 됐다.

(문)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회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교회에 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나가서 만나고 들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야전병원이라는 개념은 이 시대에 소중한 키워드다. 야전병원으로서 교회를 실현하기 위해서 당장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알로이스 수사 : 특히 난민을 만나는 것을 생각해보자. 당장 한두 명이라도 찾아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떼제공동체의 한 수사가 영국의 난민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두 달간 듣고 난민들을 맞이했다. 기다리면서 이론적 계획을 세우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 먼저다. 어떤 계획이나 사업조차도 사람과 만남을 통해 가능하다. 그리고 그다음에 중요한 것은 같이 밥을 먹고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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