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교회
시진핑이 바라는 천주교의 '중국화'앞에 놓인 난제들

(릉킷푼, 타이완)

종교에 중국적 정체성을 더 강하게 주려는 5년 계획이 지난 5월에 중국천주교애국회와 중국주교회의 사이에 합의됐다.

시진핑 주석은 종교와 사회주의가 서로 적응함에 있어 중국화라는 방향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했다. 종교를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에 적응시키려는 정책은 장쩌민 시절(1992-2003)부터 실행되어 왔고, 그 궁극 목적은 종교가 통일전선부의 지침에 맞춰 사회주의 사회에 봉사하고 사회주의 중국이 안팎으로 발전하는 것을 돕도록 하는 데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천주교회에는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이 다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이런 문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시진핑 주석은 이 적응 문제에 ‘중국화’를 추가했다. 여기에는 6가지 영역이 있는데, 1) 정치적 정체성 강화, 2) 천주교와 우수 (중국) 문화의 융합, 3) 중국적 특색이 있는 신학사상의 구축, 4) 중국적 특색이 있는 교회조직과 운영 방식, 5) 중국적 요소가 있는 전례 표현의 탐구 6) 교회 건축과 회화, 음악에서 중국적 미학 적용 등이다.

이 계획은 중국 교회 안에서 다양한 영역에서 각기 다른 정도로 실행되고 있는 현재의 적응 정책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중국화’ 정책의 요소는 교회로 하여금 더 온순한 민간조직이 되어 공산당과 국가에 봉사하게 할 것이다.

사업의 규모를 볼 때, 이 계획의 모든 목표가 5년 안에 달성될 수 있다면 상찬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이 계획이 조금이라도 열매를 거두려면 반세기는 걸릴 것이다. 이 웅대한 계획은 가톨릭 신앙생활의 모든 측면을 다 포괄하고 있다. 신학, 정교 관계, 교회 행정, 교회 교육, 교회 요원의 양성, 그리고 교회 예술까지.

관료기구가 타성에 크게 물들어 있는데다, 이 문서에 담긴 용어들은 모호해서 실행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수 중국 문화”의 정의는 무엇인가? 국가 차원에서조차도 이 문제에 대해 통일된 의견이 전혀 없다. 현재의 중국교회가 타이완의 가톨릭 신학자들이 그랬듯 1949년 공산혁명 전의 중국 문화를 중국화를 위한 모델로 쓸 용기가 있을까? 게다가 혁명 이후의 중국 문화는 그 내용과 정체가 무엇인지 아직 연구와 정리를 기다리고 있는 판이다.

이 계획은 또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1949) 뒤부터의 자료를 수집해서 교회 역사를 중국교회의 관점에서 쓸 것을 제안하고 있다. 교회 사학자들이 이 지침을 따르려는 데에는 한 가지 난점이 있다. 마오쩌둥이 가톨릭교회를 박해했던 피의 기록을 어떻게 긍정적 이야기로 바꿔 서술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기를 거부하는 정직한 역사가라면 그 누구라도 이 심연을 건널 수 없을 것이다.

중국적 특색이 있는 신학사상의 구축이라는 목표는 중국 신학의 토착화를 본토식으로 하려는 뜻이다. 타이완에서는 로쾅 주교, 청시광 주교, 창춘성 신부 등 뛰어난 신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중국이 지닌 불교, 도교, 유교적 전통 안에서 전통 중국사상을 배경으로 가톨릭 신학과 복음의 가르침을 중국화하는 데 헌신했다. 그런데 본토 중국의 가톨릭교회 안에는 이러한 학식 있는 학자-성직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문화적 중국화를 시작할 것인가?

타이완 릉킷푼 수녀 (사진 출처 = UCANEWS)

정치적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계획을 실천하려면 교회는 의식적으로 중국의 정치와 궤를 같이해야 하고 사회적 환경에 맞춰 가야 한다. 결국 교회는 공산당 지도부를 지지해야 하게 된다. 사실, 변증법적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 그리고 마오쩌둥 사상이라는 무신론과 가톨릭사상에 표현된 종교적 관념론은 이념 기초부터 양립할 수 없다. 어느 가톨릭 신자가 (자신을) 무신론과 동일시할 수 있겠는가?

중국적 특색이 있는 교회조직과 운영 방식에 관해 말하자면, 이러한 정부의 노력은 지난 몇 년간 중부 지방에 있는 한 대도시에서 경험해 왔다. 이른바 “민주적 교회행정”이라는 것이다.

그 도시가 있는 교구에서는 나이든 주교가 죽은 뒤로 주교가 선출되도록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성직자, 수녀, 평신도로 구성된 행정위원회가 구성되어 교구의 모든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자 교회행정은 수준이 떨어졌다. 성직자들 사이에는 타성과 세속화가 널리 퍼졌다. 사목 활동은 소홀해졌다. 신자 수는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교회 안에서는 그 어떠한 복음화 열정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민주적 행정이란, 교회 교계제도의 전통에서 벗어난 것으로 지도자인 주교가 없는 것이다. 지도권은 실제로는 (이 행정위원회의) 친공산주의 위원들이 쥐고 있다. 현 중국의 정치 문화 속에서, 교회의 민주적 행정이란 당이 교회를 통치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시진핑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려 하는 현재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교회의 민주적 행정을 정부는 아주 환영하겠지만 교회로서는 악몽이 될 것이다.

교회 건축과 회화, 음악에 중국적 미학을 넣어야 한다는 제안. 이미 1920년대에 중국 주재 교황사절인 코스탄티니 대주교는 중국식 건축을 교회 건물에 적용하자고 제안했지만 당시 중국인들은 거부했다. 교회 건물이 불교의 절이나 도교 사원과 혼동될 것이라고 중국인 신자들이 염려했던 것도 한 이유였다.

타이완 가톨릭교회는 이미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라틴어로 된 모든 중요한 전례문을 중국어로 번역했다. 그런데 이 전례문을 쓰는 현재의 중국교회 전례에 중국 정부는 또 어떠한 새로운 중국적 요소를 더하기를 바라는가?

이 계획은 참으로 아주 대담하다. 중국에서 가톨릭 생활의 모든 측면을 다 포괄한다. 이 개혁은 중국화에 초점을 둔다. 이 계획에 언급된 위의 6개항은 다들 어려운 사업이다. 정치적 정체성 강화와 중국적 특색이 있는 교회 행정제도의 설립은 교회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다. 종교를 중국 문화 안으로 통합하고 중국적 특색이 있는 신학적 사상을 수립하는 것은 중국 문화, 그리고 중국 문화를 가톨릭 신학과 통합하는 것에 대한 심층 질문과 연결된다.

우리는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교회 안의 자질 있는 인물들을 고대하고 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사에 관한 한, 정직한 역사가라면 중국 정부가 정한 대로 하는 중국화의 지침을 따르면서 교회사를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릉킷푼 수녀는 타이완에 있는 원자오 외국어대학의 객원연구교수이며 중국-교황청 문제 전문가다.)

기사 원문: https://www.ucanews.com/news/how-can-church-rewrite-chinas-bloody-history/82878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국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