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교황님 강복장(강복을 했다는 증서)이 바티칸을 순례하는 신자들에게 인기 있는 품목인가 봅니다. 저와 알고 지내는 한 부부도 바티칸에 갔다가 교황님 강복장을 구해 와서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계셨던 기억이 납니다. 듣자 하니 바티칸에 가지 않고도 성물판매 대행 업체를 통해서도 입수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배송비를 포함하면 10여만 원이 되는 기념품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황의 강복장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세 때의 면죄부가 생각난다며 경기를 일으키시던데 우리는 그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일단 강복장은 면죄부와 동일시할 만한 증서가 아닙니다. 면죄부가 고해성사와 관련이 있다면, 강복장은 준성사(축복, 축성, 구마) 중에서 축복과 관련된 것입니다. 게다가 면죄부는 대사(indulgentia)의 잘못된 번역이기도 합니다. 즉, 죄를 면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죄에 따르는 벌을 감해 준다거나 면하게 해 준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한 범죄를 저질렀어도 광복절 특사 등을 통해 형벌을 사면 받는 것에 견주어 볼 수 있습니다.

강복장은 누구의 가정을 축복해 주고, 병자를 축복해 주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살아가는 다양한 공동체를 축복한다는 내용을 양피지 같은 고급 재질의 서사 재료 위에 적고, 문서 테두리 부분을 예쁘게 장식하여 기념품처럼 판매하는, 유형의 무엇인 것입니다. 당연히, 교황님은 축복을 원하는 대상들을 강복하고 기도하신다고 합니다.

강복장을 어떻게 구할 수 있나 조사를 하다가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그것이 바티칸의 재산을 늘리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바티칸에서 강복장을 파는 것은 일종의 모금행위로 간주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황청은 강복을 청하는 이에게서 기부를 받고 이렇게 모인 기부금(혹은 봉헌금)을 제3세계의 가난한 이들과 먹을 것이 없어 심각한 영양결핍에 걸린 어린이들을 돕는 데 쓴다고 합니다.

▲ 바티칸에서 팔고 있는 '교황 강복장'. 20여 종류 견본이 게시판에 붙어 있다. ⓒ이상호(blog.naver.com/day3737)

정리해 보면, 강복장은 집의 거실 등에 걸어 둘 수 있는 장식성을 가진 일종의 기념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구입하면 됩니다. 기념품도 구하고 그 구매행위를 통해 어려운 이웃도 도울 수 있으니 한층 더 기분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어느 교구에서는 교황님 강복장을 벤치마킹해서 주교님 축복장 같은 것을 판매한다고 합니다. 그런 거 만들어 판다고 언짢아하실 분들이 계실 듯한데, 교회의 그런 행위에 대해 경기를 일으키기보다는 먼저, 이 축복장에서 얻게 된 수입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확인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 수익이 공동선을 지향하는 실천에 보탬이 되는 것이라면, 주교님 축복장은 애교 넘치는 아이디어가 될 것입니다. 꼭 그런 식으로 모금하지 않아도 기부를 할 수 있는 다른 경로를 아신다면, 그 경로를 활용하셔도 됩니다. 축복장을 집마다 다 걸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이런 강복장 혹은 축복장을 일종의 부적처럼 여기시는 분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걸 걸어 놔야 가게가 흥할 것이라는 식의 믿음은 우리의 신앙과 관계 없는 것이고 사회적 연대 안에서 이웃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순수한 우리의 이상을 훼손시킵니다. 우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고자 노력하는 이들이니까요.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