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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오월 광주가 된 이들김종태, 김의기, 홍기일, 강상철, 최덕수, 김태훈

문재인 대통령은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죽은 이들 이름 넷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불렀다.

조성만의 아버지 조찬배 씨는 이를 보고 문익환 목사가 1987년 이한열의 추모식에서 “○○○ 열사여!”라고 부르짖었던 장면을 떠올렸다.

"전태일 열사여! 김상진 열사여! 장준하 열사여! 김태훈 열사여! 황정하 열사여! 김의기 열사여! 김세진 열사여! 이재호 열사여! 이동수 열사여! 김경숙 열사여! 진성일 열사여! 강성철 열사여! 송광영 열사여! 박영진 열사여! 광주 2000여 영령이여! 박영두 열사여! 김종태 열사여! 박혜정 열사여! 표정두 열사여! 황보영국 열사여! 박종만 열사여! 홍기일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우종원 열사여! 김용권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조성만(요셉, 당시 24살)은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자신의 배를 찌른 뒤 투신할 당시 서울대 화학과 학생이었고, 명동성당 청년연합회 소속 ‘가톨릭민속연구회(가민연)’에서 활동했다.

조성만 평전 “사랑 때문이다”에 따르면 투신하기 하루 전, 그는 가민연 회원들과 ‘광주민중항쟁 계승 마구달리기’ 행사를 준비했다. 다음 날 가민연은 마구달리기에 앞서 풍물을 치며 길놀이를 했고, 조성만은 길놀이를 이끌었다. 사람들은 마구달리기를 하려고 줄을 맞추며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그가 확성기를 들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투신하면서 그는, 문재인 대통령 연설에 나오는 대로 “광주학살 진상규명 노태우를 처단하자” 외에도 “조국통일 가로막는 미국놈들 몰아내자”, “분단상황 고착화하는 미제놈들 몰아내자”, “올림픽 공동 개최하여 조국 통일 앞당기자”고 외쳤다.

그가 투신하면서 뿌린 자필 유서에는 ‘한반도 통일, 미군 철수, 군사정권 반대,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의 열망이 담겼고, 그의 죽음은 통일운동의 대중화에 불씨가 되었다. 그간 그는 주로 "통일 열사"로 기억돼 왔다.

   
▲ "열사여"를 외치는 문익환 목사. (사진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은 조성만 외에도 박관현, 표정두, 박래전의 이름을 불렀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 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조성만의 아버지 조찬배 씨는 대통령에게 감사하면서도 이름이 불리지 않은 다른 열사들의 유가족이 혹시 서운하지 않을까 마음이 쓰였다고 했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그 시절 “광주”를 말하며 죽어간 이는 여럿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뒤로 광주 밖에서 맨 처음 광주의 진실을 외치며 목숨을 끊은 이는 김종태(당시 22살)다. 그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공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교회 청년들과 전태일 추모회를 열고, 동일방직사건을 지원했으며, 노동운동의 정치화를 위해 노력했다. 1980년 6월 9일 이화여대 앞 사거리에서 분신했다. 유서 “광주시민의 넋을 위로하며”를 남겼다. “내 작은 몸뚱이를 불 싸질러 광주 시민, 학생들의 의로운 넋을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서강대생이었던 김의기(당시 22살)는 1980년 5월 30일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5.18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린 뒤 떨어져 사망했다. 그가 유인물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직접 타이프 쳐서 인쇄한 것은 확인되었으나 그가 떨어질 당시의 정황은 밝혀지지 않아 자살인지 타살인지 분명하지 않다.

   
▲ 올해도 서강대 학생들은 김의기를 추모하는 37기 의기제를 준비했다. 의기제 기획단이 만든 카드 뉴스 중 일부분. (이미지 제공 = 서강대 의기제 기획단)
서강대 학생들은 매년 그를 추모하는 의기제를 연다. 올해도 의기제 기획단을 구성해 5월 23일부터 28일까지 제사와 광주기행 등의 행사를 마련했다. 

홍기일(당시 26살)은 1985년 8월 15일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장소인 전남도청 앞 차도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불길에 휩싸인 채 그는 “광주시민이여! 침묵에서 깨어나라”, “학원안정법 반대투쟁에 결사적으로 나서자”, “민주주의 만세, 민족통일 만세”를 외쳤다. 그로부터 일주일 만인 22일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해 총상을 입기도 했다.

강상철(당시 22살)은 1986년 6월 6일 목포역 광장에서 민주화운동 탄압 중지와 5.18 규명, 직선제 개헌 단행을 촉구하는 양심선언을 외치며 분신했고, 26일에 사망했다. “80년 5월의 민중항쟁의 무참한 학살로 들어선 전두환 정권의 비정함이 정국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으며 각 민주단체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1968년에 태어난 최덕수는 1988년 5월 18일 “광주항쟁 진상규명”, “국조권(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권) 발동”을 외치며 단국대 시계탑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하루 전 그는 교내 광주영령 추모식에서 광주항쟁 성명서를 낭독했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져서도 “광주는 아직 살아 있다”, “나는 괜찮으니 돌아가 투쟁하라”고 동료에게 당부했고, 26일에 세상을 떠났다.

“나찌의 유태인 학살에 가슴이 찢어졌다는 무수한 리버럴리스트의 나라 미국은 어째서 80년 한반의 광주학살에 동조한 것인가? 이러한 행위를 한 우방은 누구의 우방인가? 그것은 분명하다. 독재정권의 우방임이!!!.... 80년 이후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먼저 가신 이들에게 크나큰 빚을 진 우리는 뜨거운 마음으로 반동세력과의 계속적이니 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글의 일부다.

매년 천주교 열사 19명의 합동추모미사가 봉헌된다. 김태훈(다두, 당시 22살)도 그 천주교 열사 중 한 명이다. 고향은 광주다. 그가 다니는 학교 서울대에서도 학내 시위가 잦았다. 1981년 5월 27일 김태훈은 도서관 창 너머로 침묵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이 경찰과 사복형사들에게 맞으면서 끌려가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는 도서관 6층에서 “전두환 물러가라”를 세 번 외치고 투신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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