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5월 성모성월이다. 봄의 절정,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가장 아름다운 꽃" 성모님을 찬미한다. 성당마다 '성모의 밤', 성모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특별히 아름답게 기억되는 기도 시간. 그런데 요즘은 예전에 비해 이 '성모기도'에 대한 관심이나 열기가 줄어들고 있는 인상을 받는다. 시대의 징표에 따른 의미를 찾지 않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성모님 공경이 성모성월로, 그리고 특별한 성모님 기도 전례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과 의미를 돌아보며 오늘날 우리의 삶에 일깨우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 구원의 봄을 상징하는 성모성월.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영성적으로 성모님은 봄이 지닌 생명을 긍정하는 힘과 풍성한 생산력을 위한 상징으로 이해되며 봄의 여왕으로 공경받아 왔다.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띄우는 새벽 동과 같이 하느님 구원 작업의 시작에 서 있으며 그래서 “구원의 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교 이전 봄의 풍습들, 이 시기에 수확하는 열매와 밭을 축복하는 축복 행렬과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청하는 기도들이 그리스도교화되면서 성모님의 축제와 기도로 연결되었다.

성모신심의 중심에는 'humus', 곧 땅과 밀접하게 가깝게 있는 humilitas, 겸손이 자리 잡고 있어서 역사의 흐름과 함께 5월 봄 축제에 이런 성모신심의 특성이 더 깊이 새겨지면서 말씀으로만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에 연결해서 인지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더 분명하고 깊이 있게 성모님의 삶과 도움의 힘을 느끼고 이해하며 공경하게 된 것이다. 

전례력에 여러 성모 축일이 있지만, 예컨대 예수성심, 위령, 수호천사, 성모님을 묵상하는 기간 등 중세에 이미 한 달간 특정한 신심 내용을 전면에 놓고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묵상하는 관습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특별히 5월을 성모성월로 해서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특별히 집중적으로 성모님의 삶을 기리며 묵상하는 것은 이렇게 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모님의 달이 '봄'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계절적으로 반대인 남반구에서는 5월이 아니라 그쪽에서 봄인 11월에 성모의 달을 지내거나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인 12월 8일에 성모기도 전례를 드린다는 것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성모성월을 통해 성모신심이 지속적으로 심화, 확대되었다. 다양한 기도와 묵상, 꽃 장식과 행렬, 음악과 예술, 청원과 축복 등 다양한 풍습이 이루어졌는데, 일부 수도원들이 장려하기도 했지만, 많은 부분이 하느님백성 안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산업화로 인한 인구 이동과 노동 조건으로 개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했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시기에 가장 깊이 뿌리를 내렸다.

▲ 알텐베르거 대성당의 양면 성모. (이미지 제공 = 박유미)
1974년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 Marialis Cultus'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네 가지 점에 유의해서 성모신심을 쇄신하도록 권고하였다. 전례와 교회력의 정신을 더 강하게 지향하고, 성서에서 더 많이 이루어 내며, 교회일치와 관련해서 고려하고, 현대의 인류학적인 알텐베르거 대성당의 양면 성모 문제 설정, 특히 여성 문제에 영감을 받도록 함으로써 성모기도와 전례가 인류의 오늘에 현재화(Aggiornamento)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가정과 교회에서 드리는 성모기도가 묵상의 길이 되고 아주 단순하고 대중적 형태의 성모 '일상 피정'으로 발전했다.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에 대해 눈이 열리고 하느님의 모성을 보고 느끼며 신자들이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도록 이끄는 것이다.

12세기 빙엔의 힐데가르트의 성모찬가들에는 이미 '성모님 공경'에서 권고하는 성격이 들어가 있다.

"....오 새벽 동이여/ 그대 품에서/ 새로운 태양이 솟아오르니/ 에와의 모든 죄과가 사하여졌도다.
그대를 통해 축복이 밀려들어 와 / 그 축복, 이제 넘치고 또 넘치는도다. / 에와가 우리 인간에게 가져다 준 그 모든 재해보다.

오 그대, 구원자여/ 이 세상 인간에게 그대 새로운 빛을 선사했어라./ 그러므로 이제 구하노니/ 당신 아드님의 지체들이/ 천상 합창들의 교향악으로 모이게 하소서!" - '오 새싹이며 왕관이여' 중에서

▲ 프튜이스카 고라 대성당의 망토를 펼친 성모. (1410년경)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우주적 구원의 중재자로서 마리아의 모습을 노래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적 구원자의 의미를 지니듯이 마리아는 우주적 구원의 중재자다. 그리고 세상 모든 당신 아드님의 지체들이 하느님의 창조를 찬미하는 천상 합창의 교향악에 모아들인다. 14-15세기에 많이 그려진 망토를 펼치신 성모님과 같은 의미다. 누구라도 망토를 펼쳐 감싸면 자식으로 보호할 수 있었듯이 세상 모든 연령 모든 계층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주변의 자연까지도 당신 보호의 망토를 펼쳐 악에서 막아 주는 마리아.

"여인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죽음/ 그 죽음을 이긴 맑고 투명한 여종- ;
이제 천상의 축복 여인의 형상에 깃들어/ 태초의 축복 여성의 본질에서 온다.
한 처녀에게서/ 홀로 사랑받은 이 행복한 여인에게서/ 하느님 인간이 되셨기에-"

▲ 아시시 성 미술관에 있는 성모. (이미지 제공 = 박유미)
그리고 "여성의 본질에 담긴 축복(Quia ergo femina)"이라는 이 노래에서처럼 이미 창조의 근원적 상태에서부터 모든 창조물을 품어 안으시려는 하느님 사랑의 뜻을 담아 주신 여성의 존재, 마리아의 응답으로 그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을 힐데가르트는 그 품에서 태양이 솟아오르는 새벽 동으로 노래한다. 인류를 위해서만 아니라 모든 창조물에 담아 주신 생명의 힘, 비리디타스를 생동하게 하는 태양으로, 모든 우주의 구원자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낳은 존재, 마리아를 통해서 온 세상에 축복이 넘치게 밀려들어 되었다. 이미 심어 주신 사랑에 깊이 응답함으로써, 곧 은총에 응답하는 인간의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마리아는 이 세상의 가능성을 넘어 영의 힘으로 새로운 탄생을 보여 주었다. 세상 인간에게 창조의 협력자로서의 책임에 응답하도록 일깨우는 새로운 빛을 선사하며 마리아는 "모든 창조물을 밝히는" 은총의 과제를 받았다. 모두를 새로운 빛으로 일깨워 모든 지체가 창조의 질서 안에서 우주적 조화의 교향곡, 천상 합창의 교향악으로 모아들이도록.

힐데가르트의 마리아론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에 응답해서 구세주를 세상에 오게 하셨던 성모 마리아로 인하여 모든 여성 안에서 '생명의 어머니'로 세우셨던, 에와의 과오로 잃었던 본질적인 축복,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하게 하는 여인의 본질에 담긴 축복이 되살아났다고 찬미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명을 담고 키우고, 생명을 향하고 이어 주는 삶 안에서 펼쳐지는 그분의 축복!

힐데가르트의 성모찬가를 통해서 본 성모신심의 모습은 이 성모성월에 우리 공동의 집 지구만이 아니라 우주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또 그 안에서 여성의 본질적 축복을 되살리는 어머니 마리아를 새로이 되새겨 일깨우도록 우리 마음을 두드린다.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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