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사순절에 제일 특별하게 떠오르는 기도가 ‘십자가의 길’이다. 평상시에 바치는 분들도 많지만 사순절에는 크고 작은 공동체로 함께 묵상하고 기도하게 된다.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에서 수난과 고통을 묵상하고 따라간다는 것이 점점 쉽지 않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런 것은 피하려고 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이 요즘의 흐름이지만, 그만큼 누군가에 무언가에 억눌려서가 아니라 내가 받은 사랑 안에서 삶의 의미를 더 깊이 묵상하며 스스로 우러나서 삶의 어려움을 나누고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기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대교회 때부터 꾸준히 이 길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발전시키며 이어 왔다는 것이 우리 삶의 근원에 그것이 담고 있는 힘과 의미를 보여 준다.

오늘날은 많은 곳에서 15처, 주님 부활까지를 묵상하는데도 우리에겐 당연하게 14처로 알려져 있는 십자가의 길이지만, 14처, 그리고 새로이 15처까지 묵상을 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 주님 가신 길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의미를 재조명하고 보완해 온 과정이 있었다.

신학적 성찰에 앞서 예수님이 이 세상 “마지막 가신 길”을 따라 걸으며 그 길에 지고 가신 것을 기억하고 자신들의 상황에 담아 따르고자 했던 신앙인들의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 예루살렘의 고난의 길.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초기 공동체 신자들부터 이곳을 찾았다. 예루살렘, 판결을 받은 빌라도의 집, 안토니아 성으로부터 골고타, 십자가 죽음을 맞은 곳까지 걸으며 그 고통스러운 수난의 길 안에 역사를 담고 있는 장소에서 발길을 멈추고 머물러(statio) 묵상하고 기도했다. 초기에는 엠마오로 가는 길처럼 시작과 종착지, 두 개의 처에서 시작했다. 그 사이 길을 걸으며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로 듣고 그려 보며 자신의 삶의 길, 특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들에 연결해 현재화했다. 시간이 흐르며 가능하면 그 수난의 길을 단계 단계별로 좀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며 따라가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다. 그래서 로마 각 처의 성당 수처럼 7처로 했다가 14처로 세분되었다. 심지어 이탈리아의 몬테사크로라는 곳에서는 45처를 만들어 두기도 했다.

▲ '여성들의 십자가의 길'.(1996)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십자가의 길 각 처는 성서적 전승에 따른 것도 있지만 십자가를 지고 세 번 쓰러지시는 예수, 베로니카,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가신 뒤 어머니 품에 안기시는 것과 같이 그 수난의 길에서 겪었을 인간적 고통들에 대한 성찰과 전승에서 오는 묵상처들도 있다.

황제권과 교황권이 나뉘고, 동서교회가 분열하고,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고.... 기근과 질병이 창궐하던 중세 중기, 어려움 속에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심판자이신 하느님 상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며 그럼에도 인간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사랑이 강조되기 시작하고, 사랑이 강조되는 만큼 여러 형태로 어머니와 같은 따스한 사랑이 또 강조되던 12세기에 십자가의 길 묵상처에도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의 모습이 도입됐다.

유럽에 십자가의 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인 듯하다.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순례했던 많은 이들이 고향에서도 성지에서 깊이 체험한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다. 예루살렘과 비슷한 지형에 주님 수난의 길에서 있었던 일들을 형상화해서 십자가의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간을 위해 겪으신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의 길을 체험하고 성찰하며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고 이웃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책임을 깨우치도록 하려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의 노력이 십자가의 길 기도가 유럽에서 자리를 잡고 널리 퍼지게 되는 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4세기부터 유럽에서 대중적 신앙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대부분 7처의 십자가의 길이었다.

▲ 독일 힐데스하임 개신교와 함께 하는 '창조물의 십자가의 길', 인간의 광채와 비참, 천연 자원의 정의, 쓰레기를 생산하는 사회.... 등을 각 처로 한다.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신비주의 시대와 15세기 특히 독일과 프랑스에서 상연되었던 수난극들이 그림과 조형물로 십자가의 길 장면들을 표현하는 것을 풍요롭게 했다. 1600년 경부터 프란치스코회 수도자 안토니오 다짜가 십자가의 길을 14처로 완성하고 같은 회 수도자 마우리치오의 레오나르도의 “십자가의 길 기도” 안내를 통해 이 기도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1700년 경부터 야외에 세워졌던 십자가의 길이 수도원 성당 벽에, 그리고 또 일반 성당 안에 자리 잡고 “함께 드리는 십자가의 길 기도”가 전례로서 보편화되었다.

전례 개혁의 흐름과 함께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거치며 십자가의 길 마지막에 15처 “예수 부활하심”을 묵상하는 곳들이 많아졌다. 주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경축하는 전통적인 부활신앙을 반영한 것이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당신 스스로 – 끝까지 - 가신 길이다. 이 길의 목적지는 고통과 아픔과 죽음이 아니라 생명, 구원, 부활이다.

현대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의 의미와 발전

십자가의 길은 수난극과 달리 관객으로서가 아니라 예수 수난의 길에 함께 가며 예수의 몸과 영혼이 겪은 고통과 함께 사랑으로 그 고통을 극복하는 것도 알게 된다. 인간으로서의 무력함과 한계를 느끼면서도 끝까지 그 길을 가심으로써 우리에게 해방과 구원의 길을, 그리고 새로운 삶의 관점을 열어 주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십자가의 길의 목표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이며 생명이다. 그래서 고통에 무너지지 않고 사랑으로 충만한 삶으로 열어 주는 희망의 길이기도 하다. 인간을 향하는 길이며 인간의 길로서 예수를 향하는 길, 가난하고 약하고 병든 이들을 향하며 그들 안에서 예수를 만나고, 그렇게 다른 이들의 삶을 깊이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주변의 시선에 흔들림없이 꼭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일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은 이제 믿는 이들에게 생명의 길이요, 빛의 길이 된다.

따라서 십자가의 길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체험과 성찰이지만 불의한 사회 정치적 관계 안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예수를 보고 따르며 빛을 향하도록 하는 책임을 강화하는 사회적 차원을 지닌다. 이런 점에서 최근 들어 청년들의 십자가의 길 기도가 활발해지기도 했다.

여성들의 십자가의 길, 생태환경을 위한 십자가의 길, 팽목항 십자가의 길, 또한 고통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십자가의 길 등, 현재 처한 여러 어려움과 위기에 주님과 함께 가는 십자가의 길을 만들고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그리스도인들이 함께하고 있다.

▲ '십자나무 십자가의 길', 카린 E 라이터, 구가톨릭 여사제. 주님 지고 가신 십자가 나무의 입장에서 십자가의 길을 묵상했다. 모든 창조물의 구원을 위해 오신 주님, 그래서 자연도 주님 십자가의 길에, 그리고 부활에 함께하며 반응함을 묵상하게 한다.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전문 https://drive.google.com/file/d/0B4V_U9f_Uw0qc0ViMWVaMTFKac/view?usp=sharing

생태 문제, 사회불의 등 사회적 주제를 떠나 내게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십자가의 길이 있다. 위의 <십자나무 십자가의 길>이다. 암 투병을 하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죽음을 맞는 이들을 동반하자는 용기가 생겨 구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사제 서품을 받은 여사제가 텍스트를 쓰고 그린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가 지고 간 십자가 나무로서 그 길에 함께하며 말한다.

자신의 죽음도 새로운 시작으로 바라보며 창조물로서 이웃에 대한 사랑의 길을 열정적으로 갈 수 있었던 희망의 십자가의 길.


나의 죽음

- 카린 E 라이터

내 눈은 닫힐 것이다. / 꽉 채워진 곳간 문처럼.
당신이 내 눈을 닫아 주시겠고/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해 쓰기 시작한다.
깊은 시들의 시간/ 하느님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당신 내 눈을 닫아 주실 것이고/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해 그리기 시작한다.
땅을 위한 하늘에 대한 그림들을
내 입은 침묵할 것이고 / 내 영혼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죽음은 충직하다. / 죽는 것은/ 죽음의 그 부르심보다 낫다.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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