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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수도자가 바라본 교회와 사회]

광화문 광장에 LED 초를 들고 나가 절대 꺼지지 않을 우리의 마음을 외치던 그때로 혼란은 끝인 줄 알았다. 탄핵이 발표되고 구속이 이루어지며 이제 곧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희망해 보기도 했다.

“장미 대선”이라는 낭만적 단어를 휘감은 채 우리는 또 한 번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대선 후보들의 발언에 예전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반응한다. 어떤 때에는 격하게 극단적으로, 또 어떤 때에는 냉소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혼돈 그 자체다. 새로운 것은 없다. 두려움은 극적이다. 당장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외신이 한바탕 흔들어 댄 후엔 몇 년 전처럼 외국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걱정스런 연락을 받았다. 달라진 것이 없다.

마치 광야에서 아우성치는 이스라엘 백성이 된 기분이다. 이럴 줄 몰랐다. 그저 거기에서 빠져나오면 안정되고 행복한 나라를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국가 경제를 비롯한 우리의 삶은 더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광야의 한복판에 서 있다. 대다수의 국민의 생각과 힘으로 변화를 이끌어 암흑의 시기에서 탈출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새 세상을 위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곳이 광야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광야는 ‘텅 비고 아득하게 너른 들’ 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진 것처럼, 정말 아무것도 없는 막연한 곳이다. 어쩌면 더 나빠질 곳도 더 도망갈 곳도 없이, 있는 그대로 날것의 모습을 서로 대면할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다. 어떠한 주저함 없는 확고한 결단이 요구되는 장소인 것이다. 우린 지금 그 광야에서 새 시대를 열어 갈 결단을 준비하고 있다.

광야에서의 시간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 하지 않으며, 청소년들은 ‘교복을 입은 민주 시민’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우리를 현혹시키는 두려움들과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많은 현상들을 이젠 어렴풋이나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진정한 탈출은 단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마 우린 앞으로 여러 번의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것도 황량한, 어떠한 가리움 없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견뎌 내야 할 광야에서 말이다. 의지할 것 하나 없는 광야에서 오직 하느님만을 믿고 걸어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그 기간을 맞닥뜨리고 있다.

   
ⓒ성심수녀회 박소연 로사 수녀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다서 다정히 말하리라. 거기에서 나는 그 여자에게 포도밭을 돌려주고 ‘아코르 골짜기’를 희망의 문으로 만들어 주리라. 거기에서 그 여자는 젊을 때처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올 때처럼 응답하리라."(호세 2,16-17)

그 여자에게 광야는 무엇이었을까? 하느님의 보호를 체험했던 첫 만남의 장소다. 그 강렬한 기억을 부정할 수 없기에, 그분의 크신 사랑을 다시금 기억하며 응답할 수밖에 없는 장소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거기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무슨 힘으로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잊지 않는다면, 처음 가졌던 믿음을 의심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신뢰를 가지고 간다면, 우리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이 광야는 하느님의 보호를 체험했던 첫사랑의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이 광야의 시간은 기약 없이 길어질지도 모른다. 이 시간 안에서도 고통받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은 그 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새롭게 볼 눈을 가지게 되었으며, 우리가 어딜 향해 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절대 흔들리지 않으실 하느님께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절대 버리지 않으실 거라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외로움에 괴로움에 몸부림치도록 그저 두시지 않을 것이란 믿음.

“세월호참사 유가족 분들께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잘 커서 이 나라를 바꿔 보도록 노력할게요. 힘내세요!”

세월호참사 유가족 분들에게 보낼 엽서를 열심히 쓰던 아이들은 노란 리본을 만들어 이름표, 학생증 등 눈에 띄는 소지품에 붙이며 제법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들의 글이 혹여 유가족 분들에게 아픔을 드리진 않을까 걱정하는 질문을 하며 한 글자씩 정성스레 써 내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하느님의 크신 선물로 보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주시어 갈 길을 비춰 주신 것처럼 우리에겐 아이들을 선물로 주신 것 아닐까? 길을 잃고 광야를 헤매지 않도록....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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