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교회와 사회]

“이놈의 세상! 바뀔 수 있을까?” 젊은 시절 한탄하듯 내뱉던 이야기.

그래도 그때까지는 학생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간간이 데모라는 것이 있던 시절. 그러나 무언가 모를 깊어지는 무기력에 ‘변화, 개혁’ 이라는 단어는 천상의 언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 돈 벌기에 혈안이던 시절. 퇴근길 맞닥뜨린 광화문 광장의 차벽은 “명박 산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내 안의 무기력을 굳건히 할 뿐 그 어떤 징표도 될 수 없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지나 마치 타임슬립이라도 하듯 (타임슬립(time slip)은 판타지 및 SF의 클리셰로,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집단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을 거슬러 과거 또는 미래에 떨어지는 일을 말한다. 사고에 가까운 초상현상이라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머신을 이용한 시간여행과는 구분된다. 출처-위키백과)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곳은 광화문 광장 한복판이었다.

“또 여기네요. 젊었을 때 이 근처에서 최루탄을 피해 여기저기 도망 다니던 것이 생각나요.” 회상에 잠겨 말씀하시는 선배 수녀님들을 보며 희망이라는 단어 또한 천상의 언어일 뿐이란 생각을 굳건히 할 수 있었다. 벌써 몇십 년째다. 역시 이놈의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난주 수업 시간,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진지하게 답변을 적어 내려가는 학생들을 보며 울컥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무엇을 저리 진지하게 고민하고 적어 가는 걸까, 예전의 나처럼 무기력에 빠지면 어쩌나, 도대체 어떤 현실을 말해 줘야 하는 걸까.

▲ 수도회 식구 수녀님 중 한 분이 그린 세월호를 건져올린 그림이다. ⓒ이지현
실력을 인정받는 사회,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는 평등한 사회, 배려가 있는 사회, 최저임금이 1만 3000원이 되는 사회,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랑은 거리가 있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였다.

“그럼 이 사회는, 이 세상은 변할 수 있을까?” 혹시 나에게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가장 두려운 질문에 학생들의 대답은 힘이 있었다. “네, 세상은 분명히 변할 수 있어요. 좀 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요.”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저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너의 후손에게 저 땅을 주겠다.’ 하고 맹세한 땅이다. 이렇게 네 눈으로 저 땅을 바라보게는 해 주지만, 네가 그곳으로 건너가지는 못한다.” 주님의 종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곳 모압 땅에서 죽었다.(신명 34,4-5)

모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그 땅의 입성을 위해 온갖 수고와 고난을 넘어왔음에도 그의 삶은 거기까지였다. 대체 하느님께서 주신 그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약속 받은 땅에 들어가지 못했을까?

모세의 역할은 그랬다. 하느님으로부터 약속받은 땅을 바라보는 것. 그곳을 끊임없이 바라보며 다른 곳에서 고통 받으며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그 땅을 바라보게 하고 그곳을 향해 길을 떠나게 하는 것이었다. 비록 그 자신은 꿈꾸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모세로 하여금 수많은 이스라엘 민족들은 힘을 얻고 그곳에 들어가게 된다.

지난 세월, 많은 고통과 수난 속에서 정의를 외치고, 평등과 인권을 주장하며,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바라보며 앞서 살아 오신 많은 분들이 없었더라면, 지난 6개월의 시간을 거쳐 탄핵이라는 결과가 있었을까? 변화의 발걸음을 떼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서 구체적인 꿈을 꾸는 청소년들이 생길 수 있었을까? 지난 6개월의 시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물론, 변화의 시작 한복판에 있는 한국을 바라보며, 걱정의 목소리도 크다. 혼란, 갈등, 용서, 화합 등의 단어로 지금 상황을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안에서 우린 희망을 발견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길게만 느껴지던 그 6개월은 청소년들에게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 준 살아 있는 교육이 되었으며, 그들은 정의, 평등, 실력 인정, 안전이라는 단어를 현실의 단어로 그리고 사회와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경험한 그들은 이제 세상을 조금씩 바꿔 가며 살아갈 것이다. 3년의 기다림 끝에 떠오른 세월호를 통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현실의 끝을 경험한 아이들은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 일에 거침없이 그리고 끈질기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놈의 세상, 이젠 바뀔 수 있을까?” 라며 지금 당장의 변화를 꿈꾸는 내게 모세라는 인물이 말을 건넨다. 우리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그저 순례의 삶을 사는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역할이라고.

당장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회란 거대한 시스템이라 조금을 움직이더라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기성세대들이 목숨을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이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 주어진 길을 희망을 가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것이 아마 모세가 말하는 그 순례의 삶일 것이다.

여기저기 각자의 자리에서 모세의 삶을 살고 계신 어른들!
지금을 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젊은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잘 걸어가 봅시다.
좌절하지 말고 힘을 냅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입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젊은이들이 꿈을 이루어 약속받은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p.s 수련반~ 우리가 꿈꾸는 그 사회를 만들려면, 지금 우리가 이루고 있는 사회 안에서 먼저 시작해야겠죠? 교실 안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경쟁 없이, 서로를 배려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보려 노력한다면, 아마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좀 더 빨리 만들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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