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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수도자가 바라본 교회와 사회]
이지현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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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6  13: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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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끝자락. 매년 이맘때쯤 학교에서는 고3 학생들과 함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수능시험을 보고 나와 교문을 나서면서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던 아이들. 지난 12년간 학교를 다닌 것이 이 하루를 위해서였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는 한 학생의 나눔에 같은 반 친구들은 깊은 공감을 하였습니다.

19년이라는 삶을 살면서 많은 사람이 불러 주었던, 그리고 이제는 성인으로서 책임을 지고 함께해야 할 내 이름을 종이 위에 커다랗게 써 보았습니다. 긴 시간 그 이름으로 불리고 대답도 해 왔지만 막상 내 앞에 놓인 이름은 꽤 낯선 듯했습니다. 불이 꺼진 깜깜한 방에서 학생들은 마무리 되는 자신들의 청소년기를 떠나보내며 선물로 받은 초에 불을 켜 자신의 이름 위에 놓았습니다. 진지하게 초를 들고 각자의 이름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내려놓는 학생들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부르신 “빛”인 듯했습니다. 그 작은 빛들이 하나하나 모여 큰 방을 환하게 비추는 모습에 마치 세상이 다 환해진 듯했습니다.

손을 잡고 각자의 이름 위에 환하게 빛나고 있는 촛불을 보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순간의 침묵, 그 고요함에서 아이들 마음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창세기 1,2-4)

하느님을 처음 알게 될 때, 우린 천지창조 이야기를 만납니다.

창세기 1장을 열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없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느님. 깜깜했던 어둠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많은 것들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완성해 가셨습니다. 창조물 하나하나 온 마음을 다해 만드신 하느님을 우린 경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순간에도 잊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며 세상을 만들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의 사회는 또다시 어둠입니다. 긴 시간, 희망이 없어 보이던 이 어둠은 심연을 덮고, 꼴을 갖추지 못했지만 하느님의 영은 여전히 우리 위에 감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말씀하십니다. “빛이 생겨라.”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빛을 지니고 태어났을 겁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내도록 파견 받은 것이지요. 하지만 내 안의 그 빛을 의식하지 못한 채 내 주변의 어둠을 탓하고 두려워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끝없는 어두움,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 끝에서 우린 어렴풋이 또 한번 소리를 들었습니다. “빛이 생겨라.”

   
▲ 고3 학생들과 함께 손 잡고 각자 이름 위에 빛나고 있는 촛불을 보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지현

짙은 어둠을 가장 밝게 밝히는 것은 아주 작은 빛 한 자락입니다. 우리는 그 빛을 보았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여의도 국회 앞에서, 광주, 대구,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의 광장에서 그리고 영국, 미국, 일본, 독일 등 외국에서까지.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습니다. 그 장소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소명의식이 구현되는 장”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세상은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창세기 1장이 빛이 생기면서 시작하였듯, 우리의 지금도, 원래 질서 있게 지어졌던 그 하느님나라가 다시 지어질 것입니다.

“작은 별들의 은하수”

얼마 전 고등학생들이 직접 대본을 써서 공연한 성탄극의 제목입니다. 망가져 버린 교육 시스템 때문에 힘든 고등학생,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모든 것을 잊고자 게임 중독자가 되어 버린 백수 등이 주인공입니다. 이 시대 많은 약자들의 한숨 소리와 기도에 걱정이 되셨던 예수님께서는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십니다. 마침 참석하게 된 촛불 집회에서 세상의 희망을 보셨다며 하늘로 다시 올라가시는 내용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순수한 눈은 백만 촛불이 모여 만들어 낸 그 장관을 작은 별들이 만들어 낸 은하수로 보았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많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고, 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두려움은 커져 갔고 기득권의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이용했습니다. 마치 우리 안의 빛이 애초부터 없었던 듯 부정당하며 긴 세월을 지나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작은 별들의 은하수를 보았습니다. 그 은하수가 있기에 모든 것은 새로 시작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제 종류대로 지으신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태초에 받아 태어난 그 빛이 꺼지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고 보듬어 줍시다.
그리고 지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냅시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창세기 1,3-4)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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