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 해인사 (이미지 출처 = Pixabay)

목탁 치는 엠마오

- 닐숨 박춘식


향적 스님* 자랑을 하였더니
그림 공부하는 이들이, 당장 가자 해인사로 가자
하여 가야산을 오르는데
아침안개가 우리 먼저 계곡에 앉아
산수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십 년 전에 군복을 입고
진승(眞僧)으로 불이사(不二寺)를 품었던 그가 지금
가야산의 우뚝 솟은 거송(巨松)이 되어
한 글자 새길 때마다 세 번씩 절했다는
팔만대장경을 껴안고 있었다
프랑스 어느 천주교 수도원에서 거의 일 년
그레고리오 성가를 목탁으로 담아온 기이한 이력의 향적


밤안개의나무같은-물안개의기도같은-길안개의허밍(humming)같은-해인사의향적스님께-합장하던그날은-엠마오(Emmaus)*길을나섰던그날은-아침안개로-낮안개로-밤안개로-녹녹해진모든소리가-향적의목탁안으로-숨어드는날이었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7년 4월 24일 월요일)


*향적(香寂) 스님 - 현 해인사 주지 스님
*예수님께서 부활 후,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루살렘 북서쪽에 있던 마을

오십오 년 전, 종교에 대하여 강의하던 교리신학 박사가, 자연종교 중에 가장 훌륭한 종교는 불교라는 말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즈음 무슬림을 보면서, 우리 조상들이 불교를 신봉하였다는 사실은 진심으로 고마운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군 복무할 때 만났던 스님이 해인사 주지가 되었다고 자랑을 하였더니 그림 공부를 함께 하는 불자들이 갑시다 갑시다 하여, 바쁜 일정 중에 큰스님이 잡아준 날이 부활 대축일 다음 날, 해인사 엠마오가 되었습니다. 묘한 인연으로 큰스님에게 가는 해인사 길은, 가는 길 돌아오는 길 내내 안개 가득한 길이여서 이 또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 편의 시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향적 스님이 프랑스 한 수도원에서 일 년 가까이 수도생활 체험을 하였다는 그리고 프랑스 말로 된 "프랑스 수도원의 고행"의 프랑스어판 "L'Éveil n'a pas de frontières(깨달음에는 국경이 없다)" 책을 보고는 ‘보통 스님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야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모든 종교가 서로 존중하면서 포용의 화합을 노래할 때 세상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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