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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이 어쩌다 학사로 불리게 된 거죠?[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교구 사제로 활동하는 후배가 뜬금없이 물어 왔습니다. 왜 신학생을 학사라 부르냐고요. 속풀이를 열심히 읽어 주는 것은 고마운데.... ‘학사’라는 호칭은 사실 교구 본당이나 신학교에서 통용되는 용어로 알고 있는 제게 그런 것까지 물어 오니 좀 난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교구에 파견되어 활동한 경험이 있는 공동체의 몇몇 형제 신부님들에게 어떤 근거가 있는지를 물어 보긴 했습니다. 뾰족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신학생. 동네 성당에서 부활을 앞둔 성삼일 동안, 그리고 여름과 겨울 방학에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면 아마도 우리 본당 출신 신학생일 겁니다. 본당마다 미래의 꿈나무인 신학생들이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신학생을 보유한 본당의 신자분들은 그들을 더욱 애지중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 신학생(사제품을 준비하는 신학교 학생이란 뜻으로 영어로는 통상 seminarian이라고 합니다)들을 쉽게 '학사'라고 불러 왔습니다. 한자로 표기하면 배울 학(學) 선비 사(士). 좀 더 예우를 갖춰서 '학사님'이라고 ‘님’을 붙이곤 합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성당 소속 예비 사제인 신학생을 학사님으로 불러 온 분들에게는 그런 호칭이 별로 이상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대학을 마치고(즉, 학사학위를 받고) 신학교를 다시 간 경우에 해당하지 않은 신학생에게도 우리는 관습적으로 학사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학사는 대학을 졸업한 이들에게 주는 학위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어쩌다가 신학생을 부르는 말이 되었는지 따져 보는 것은, 우리가 초점을 잘못 맞춘 추측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성당에서 우리가 쓰는 학사라는 호칭은 사실상 학위와는 관계없는 용어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 영어에서 '학위로서 학사'를 의미하는 배철러(bachelor, 이 말에는 미혼남자라는 뜻도 있습니다)가 아니라, 철학과 신학을 배우는 사람을 가리키는 스콜라스틱(scholastic)과 관련 있는 용어라는 게 설득력 있는 의견입니다. 중세에 철학과 신학 체계를 연구하는 일과 관련 있는 단어이며, 불가분으로 보이는 이 두 학문을 연마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또한, 학교(school) 혹은 교육(education)과 연관된 말이니 만큼 우리 말로도 ‘학사'가 적절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결국 중세의 학문 전통에서 온 용어가 ‘학사’라는 우리말로 대치되어 불리게 되었다고 봅니다.

   
▲ 2014년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참사 희생자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대전가톨릭대 신학생 ⓒ배선영 기자
중세에서 철학과 신학은 사실상 우주의 이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모든 지식체계의 기초였습니다. 그래서 이 두 학문을 다루는 곳이 대학(university)이 된 것입니다. 우주(universe)가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학교는 대부분 베네딕토회나 아우구스티노회, 프란치스코회와 같은 규모가 큰 수도회가 운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대학은 기숙사가 딸린 곳이었습니다. 먹고 자고 연구한 것이 철학과 신학이었습니다. 스콜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논리와 초대교회 교부들의 저술을 바탕으로 발전해 온 것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그런 학자연한 분위기를 보여 주는 스콜라, 철학과 신학을 연마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스콜라스틱이란 말들이 생겨났습니다.

좁은 의미에서 스콜라스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예수회의 연학수사들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연학수사는 철학과 신학을 연마하는 수도자라는 의미입니다. 보통, 사제품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예수회 수사들을 이릅니다.(예수회 안에서는 엄밀히, 최종서원을 하지 않은 사제들까지 포함한 호칭입니다)

‘학사’라는 호칭에는 분명 그와 같은 배경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누군가 신학생을 가리켜 처음으로 그 말을 사용했고 그 뒤에 많은 이들이 사용하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수도회 소속 신학생은 그냥 수사라고 부르면 됩니다. 하지만 수도회 소속이 아닌 교구 신학생들에게는, ‘학사’라는 말이 없다면 그냥 ‘신학생'이라는 일반적 범주의 호칭밖에는 없습니다. 누가 처음 썼는지는 몰라도 ‘학사’라는 호칭은 교구 신학생들에게 잘 어울리는 말로 보입니다. 철학과 신학을 연마하고, 사제품을 준비하는 이들이니까요.

신학생이라는 긴 단어보다도 훨씬 실용적입니다. 그리고 그 말 자체에 신학생들을 존중해 주고 아끼는 마음도 스며 있습니다. 자칫, 학사라는 말의 부정적인 의미인 ‘아는 체 하는 자’가 안 되도록 조심한다면, ‘학사님'들은 예수님을 닮아 양 냄새 나는 참 목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신자분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며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는 이로서 그 본분을 충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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